[오병상의 코멘터리] 아무도 귀기울이지않는 '손학규 절규'

오병상 2021. 11. 29.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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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29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제20대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2021.11.29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1.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뜬금없이 29일 대선출마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제 출마를 두고) 손학규 저 사람 미쳤나? 대통령병 걸렸나? 노욕 아니냐?..온갖 비난과 야유, 조롱 다 듣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인생,내가 추구했던 가치,내가 겪어온 정치인생을 떠올렸을 때..지금 대선을 그저 멀거니 쳐다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2. 스스로의 예상처럼..야유와 조롱이 빗발칩니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한 명이 대통령 되면 한 명은 감옥에 갈 것이란 말이 나돌 정도로 괴팍한 선거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둡습니다..승자가 모든 것을 얻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 승자독식ㆍ패자전무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그 주범입니다.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3. 아이러니칼하게도..손학규의 캐치프레이즈는 ‘대통령제를 폐지할 대통령’입니다.
손학규만큼 대통령제의 문제를 절감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의 전도양양했던 정치인생이 대통령제 때문에 30년간 꼬일대로 꼬여버렸으니까요..

4. 손학규는 박정희 정권 시절 운동권의 블루칩이었습니다.
경기고등학교 3학년이던 1964년 박정희 정권의 한일국교정상화에 반대하는 6ㆍ3항쟁에 참여해 서대문형무소에 갇혔습니다.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해 고 김근태ㆍ조영래와 ‘3총사’로 불리며 민주화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졸업후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옥살이를 거듭했습니다.

5. 손학규의 인생이 급변한 건..1980년 전두환 군부정권의 등장을 본 고 박형규 목사가 ‘미래 지도자로 보호하기위해’ 외국으로 도피시켰기 때문입니다.
박형규는 한국의 민중신학을 이끌었던 개신교지도자였습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도움으로 영국 옥스포드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습니다.

6. 서강대 교수 시절 잘 나가던 손학규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건..1992년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정치보복을 우려한 김대중이 정계은퇴하고 영국으로 가버렸기 때문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집권후 첫번째 보궐선거(경기 광명)에 신선하고 개혁적인 카드로 손학규를 스카웃했습니다. 당선되자 복지부 장관까지 시키면서 ‘차기’로 키웁니다.

7. 하지만 손학규는 김영삼 정권, 신한국당, 보수와 결이 다른 사람입니다. 오히려 김대중, 민주당, 진보쪽이었습니다.
결국 강경보수인 이명박과 박근혜에 밀려나 민주당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에선 ‘보수’본적이 원죄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정동영과 문재인에게 대통령 후보경쟁에서 밀렸습니다. 이후 대권을 향한 탈당,칩거,복귀..서러운 변방살이를 이어왔습니다.

8. 그사이 손학규가 느끼는 대통령제의 문제점은 더 심화됐을 겁니다.
한국의 정치는 인물중심입니다. 대통령 후보 중심으로 정당간 이합집산이 이뤄집니다. 그런데 3김 같은 거물은 모두 사라지고..국회의원 뱃지도 달아보지 않은 초보들이 대권후보가 됐습니다. 최소한의 금도는 사라지고, 싸움판은 더 비정해졌습니다.

9. 그래서 손학규의 결론은 ‘대통령제 폐지’입니다. 내각제든 분권형대통령제든..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을 하자는 주장입니다.
젊어 16년간 독재정권과 싸웠고, 이어 10여년간 정치학을 연구했고, 이후 30년간 제도권정치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기에..그의 결론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아무도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지만..
〈칼럼니스트〉
202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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