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보호소에선 말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요"

고기복 2021. 11. 29.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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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르포 :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사람들] 난민 신청자들

한국에서 이주자는 살아 숨 쉬는 자인가. 존 버거는 <제7의 인간>에서 이들을 가리켜 "불사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라 했다. 오직 노동하는 몸으로 기능하기를 요구받고, 표류함이 당연시 여겨지고, 존재할 권리를 국가의 허락에 구해야 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와 난민의 현주소이다. 체류권을 '허가'받은 이주민들조차 한국 사회의 성원권을 제대로 획득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국가는 잔혹하고, 사회는 무심하다. 그럼에도 사람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계속되는 일. 한국사회에서 살아 숨 쉬는 이주민들의 삶을 르포르타주로 담고자 한다. <편집자말>

[고기복 기자]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터키 정부로부터 국가 모욕죄 혐의를 받고 기소되기도 했던 엘리프 샤팍(Elif Shafak)은 그의 저서 <이스탄불의 사생아>에서 "일어서서 항거할 수 없는 사람이나 반대할 능력이 결핍된 사람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저항 안에 삶의 열쇠가 들어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권력은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항거하는 이들을 불온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권리를 주장하는 이가 외국인일 경우 더욱 그렇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국제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주장하다 외국인보호소에서 고초를 겪은 이들이 있다. 외국인보호소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소속 기관이다.
 
 화성외국인보호소
ⓒ 고기복
 
난민 신청자들에게 뭔가를 묻는 일은 그들이 겪은 아픔을 들쑤시고 상처를 후비는 일이다. 설령 난민 지원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질문이라도 그렇다.

올 가을 두 사람에게서 묻지도 않은 난민 신청 사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우연히도 그들은 모두 정치적 박해를 피해 한국에 왔다가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된 일로 심리적 외상을 겪고 있었다.

그들이 먼저 말을 꺼낸 이유는 난민 신청 중 강제 퇴거 명령을 받고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갇혀 있던 M씨가 일명 새우꺾기라는 가혹 행위를 당한 사건 때문이었다(관련기사: "화성외국인보호소는 '한국판 관타나모'" http://omn.kr/1vdfm).

K가 외국인보호소에 대해 말 아끼는 이유

공중파 방송에서 관련 뉴스가 처음 나간 다음날 K는 방송 영상 링크와 함께 문자를 보내왔다(기자주: 난민 신청자들은 신분을 밝히면 안 되기 때문에 익명 처리했으며 신분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담지 않았다).

"내가 전에 말했잖아요. 말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고."

K를 이주노동자쉼터에서 연초에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꺼냈었다. 외국인보호소 이야기였다. K는 자신이 어떤 형사 사건이나 범죄에 연루되어 구금되었던 게 아니었음을 설명하고자 했다. 그런데 정작 외국인보호소에서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보호소에 있던 기간이 길지 않아서 할 말이 없어요."
"2년 9개월이 길지 않다고요? 다른 사람에 비해서 그렇다는 건가요?"

"거기엔 몇 년 동안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어요. 네. 저는 짧게 있었죠. 제 인생을 봐도 그렇고, 한국에 있던 날들과 비교해도 그래요. 불평할 일은 아니라고 봐요."
"2년 9개월이면 제가 군 생활했던 기간보다 길어요. 우린 그곳에서 평생 이야기할 일들을 갖고 나와요. 당신은 어떤가요?"

"저라고 할 말이 없겠어요? 다만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뿐이죠."

다른 사람이나 본인 인생을 봤을 때 2년 9개월은 짧은 기간이었다는 말로 그는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 반백에 가까운 그의 나이에 비하면 2년 9개월은 그리 긴 세월이 아니라고. 그러면서도 외국인보호소에서 말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말로 그는 떨치고 싶은 기억이 있음을 암시했다.
 
 외국인보호소 내 가혹행위를 규탄하는 시민들
ⓒ 고기복
 
2021년 6월 말 기준으로 국내 외국인보호소에 '보호'라는 명목으로 3개월 이상 구금된 이들은 98명이다. 외국인보호소 새우꺾기 관련 뉴스와 시민단체들의 규탄 기자회견이 9월 29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있고 난 후 그는 해외에서도 외국인보호소 관련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제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던 건 (외국인보호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 다르기 때문이에요. 어떤 사람은 좋아요. 친절해요. 하지만 대부분은 항상 화난 얼굴이에요. 외국인들을 핍박하려고 잘 훈련받은 사람들 같아요. 아주 잔인해요. 아, 진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처가 덧났는지 K는 고개를 흔들며 손을 저었다. 그 후로도 그는 외국인보호소에서 자신을 울분에 차게 했던 기억에 대해 털어놓곤 했는데 한 번에 모든 이야기를 하는 적이 없었다. 어떤 심리적 압박이 발생할 때마다 사연을 하나씩 털어놓는 식이었다.

K가 가장 억울해하는 건 난민 신청자인 자신을 거짓말이나 하는 사람 취급하는 외국인보호소
직원들의 고압적 태도였다.

"왜 내 말을 못 믿는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돈을 벌겠다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 정착하겠다는 것도 아니라고요. 내 나이를 봐요.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하겠어요? 난 단지 안전을 원할 뿐이에요. 내가 정치적 핍박을 받았다는 증거를 외국인보호소에서 모아야 했어요. 인터넷이나 전화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편지로 모으라고요? 증거를 달라고 했으면 밖에 나와서 준비할 수 있도록 허락해야죠."

K는 본국에서 대학을 졸업했으면 고수익을 보장받는 전문직이 될 수 있었다. K가 귀국했을 때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한 이유는 반정부 시위로 몇 차례 체포되었고, 반정부 활동가들과 함께 단체 활동을 했던 이력 때문이었다.

"외국인보호소를 관할하는 법무부 출입국 직원들은 뭔가 묻지 않고도 다 안다고 생각해요. 출입국이 법원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제가 하지 않은 말들, 제 형편과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있는 경우가 있어요. 난민 신청자들 모두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서류를 그렇게 만드는 거예요.

변호사가 잘못 기록된 부분을 지적하면, '아, 그거 실수예요'라고 말하고 쉽게 지나가요. 그런데 제가 흐릿한 기억 때문에 '그랬을 거 같다'고 했다가 나중에 말을 바꾸면 무조건 거짓말이라고 하죠. 아주 큰 죄를 지은 사람을 다루듯이 실수를 하나라도 찾기 위해 작정하고 달려드는 질문에 답하고 나면 진이 다 빠져요. 제가 어떻게 말해요."

출입국은 자신들의 기록 오류는 실수라고 치부하면서도 K의 미묘한 진술 차이는 거짓말이라고 단정했다. 한국어가 서툰 K는 모국어가 아닌 제2외국어로 진술해야 했다. 그 내용이 통역을 통해 전달되는 과정에서 '아, 다르고 어, 다른' 일들이 일어나는 건 본인 의도가 아니었는데도 출입국이 거짓 진술이라 할 때마다 K는 말문이 막혔다.

"(외국인보호소에) 오래 있었다고 (나쁜) 일 많은 것도 아니고요. 짧게 있었다고 일 없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군인도 아닌데 보호소에서는 유니폼을 줘요. 누구도 그 옷을 함부로 벗으면 안 돼요. 잘 훈련받은 군인들이 신병들을 훈련시키는 것 같아요. 고분고분한 사람은 그냥 놔둬요. 국가인권위에 전화하고 편지 쓰는 사람, 나처럼 난민 신청한 사람을 외국인보호소 직원들이 싫어해요. 자꾸 그냥 나가라고 해요. 안전이 필요한 사람에게 말이에요. 그게 외국인보호소예요. 아, 진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어디서 배웠는지 서러움이 잔뜩 묻어나는 '아, 진짜'라는 말을 내뱉는 K는 끝내 속내를 다 털어놓지 않았다. 그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외국인보호소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었다.

사다르가 투쟁을 자청한 이유

국경은 물리적으로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사람을 통제한다. 특별히 폭탄이나 탄환이 날아드는 분쟁 지역일 경우 국경은 긴장을 놓을 수 없고 비정하고 강력한 통제를 요구받는 현장이다. 그런 국경을 목숨을 걸고 넘는 사람들이 있다. 난민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 분쟁 지역으로 잘 알려진 카슈미르에서 자치권 획득을 목적으로 무장독립운동을 하던 사다르는 2013년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었다. 파키스탄 정보 당국에 끌려갔던 동료들이 죽고, 곧바로 그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된 직후였다.

카슈미르해방전선 지역 당대표였던 사다르가 고향을 등지고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서 아프가니스탄 등의 국경을 넘어가고자 했던 나라는 뉴질랜드였다. '신변 안전'을 위해 출국한 사다르가 환승을 목적으로 2013년 1월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출입국은 여권에 문제가 있다며 그를 화성외국인보호소로 보냈다.
 
 사다르
ⓒ 고기복
 
그에게 외국인보호소는 악몽 그 자체였다. 매일 아침마다 외국인보호소 직원들은 그에게 귀국을 회유했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난민 신청을 했는데,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반복하는 외국인보호소 직원들에게 '돌아갈 나라가 없다'는 말은 씨알도 안 먹혔다.

"자기 나라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면 왜 다른 나라에 가나요? 아무 데도 갈 필요가 없죠.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니까 그곳에서 계속 머물게 하는 거예요. 화성외국인보호소 옆이 교도소예요.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형기가 정해져 있어요. 형사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기한이 되면 교도소를 나가요. 그런데 외국인보호소는 그런 희망이 없어요. 몇 년? 죽을 때까지? 최악이에요. 수감 기간이 끝나고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없어요."

외국인보호소 직원들은 수용 중인 난민 신청자들을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존재를 규정해 버렸다. 사다르는 국가가 한 인간의 존재를 불법으로 규정했을 때 얼마나 비인간적인 일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지 실례를 들었다.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들은 하루에 한 시간 야외에서 운동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보호소에서는 1주일에 30분 정도 보호소 건물들 사이 공간에 나가게 해요. 운동장이 아니에요. 그 시간에 보호소 직원들은 외국인들이 뭔가 숨기지 않았는지 방 검사하고 신체검사를 해요. 배식하는 직원 실수로 국을 쏟았을 때 다시 떠 달라고 했더니 '오늘은 더 이상 줄 수 없다'고 해요. 개에게 음식을 던져주듯 하면서 먹든지 말든지 하라는 거였죠.

외국인보호소 직원들이 외국인들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쓰레기 취급하도록 훈련받았는지 모르지만 직원들 태도가 그랬어요. 그래서 단식했더니 독방에 집어넣어요. 그런 문제를 외부에 알리기 위해 팩스 발송을 요구하다가 또 독방 생활을 하기도 했고요. 사나흘, 열흘, 열하루... 18개월 동안 단식 투쟁을 56일간 했어요."

사다르는 외국인보호소 직원들이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고, 권리 투쟁을 하면 독방에 가뒀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생명의 안전을 추구했던 사다르에게 대한민국은 야만의 얼굴 그 자체였다.

그중에는 외국인들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으로, 인격적으로 대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는 만나고 싶지도, 떠올리기도 싫은 직원들이 더 많았다. 그들은 수감 중인 난민 신청자 등 장기 구금자들을 불편하게 하고, 말로 위협해서 어떻게든 빨리 나가게 하려고 했다. 그에 대해 사다르는 단호하게 외쳤다.

"나는 달라요."

그는 위협에 물러설 사람이 아님을 분명히 했고, 싸워서 바꾸겠다며 행동했다. 그 결과 인간적인 모멸감을 겪어야 했다. 출입국에 난민 신청한 처지에서 두려움 때문에 보호소 직원과 갈등을 자처할 이유가 없었지만 그가 투쟁을 선택했던 것은 생명의 안전을 위해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미등록 혹은 서류 미비 외국인들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출입국 관행에 저항했던 그는 한국 입국 후 3년 만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M씨가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새우꺾기 고문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다르는 독립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로 살고 있는 자신이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난 18일 외국인보호소 고문 사건 대응 공동대책위가 마련한 '외국인보호소인가, 강제수용소인가. 외국인보호소 새우꺾기 고문을 비롯한 인권침해 증언대회'에서 자신의 경험을 증언했다.

사다르는 자신의 증언이 외국인보호소 인권 개선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자신이 경험한 보호소보다 더 열악해진 현실에 분노한다고 했다. 

"우리는 인도와 파키스탄으로부터 자치권을 얻기 위해 투쟁했어요. 국적이 없는 인간에게 세상은 정글과 같아요. 독립을 요구한다는 건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싸우는 거예요. 국적 정체성 때문에 체포되고 고문당하는 걸 피하기 위해 난민 신청했어요. '안전'을 위해서요. 그건 범죄가 아니죠. 국제법이 인정한 권리잖아요"

그는 이어서 말한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사연이 있어요. 자기 나라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면 해외로 떠날 이유가 없어요."

사다르는 외국인보호소에 있을 때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할 수 있다며 침묵을 강요하는 분위기에도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투쟁했다고 했다. 독립 투쟁이라는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일어서서 항거하고 반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그는 지금 우리 이웃으로 살고 있다.
 
 난민 인정을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시위하는 시민
ⓒ 고기복
 

*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사람들 _ 이주자의 삶을 기록하다> 연재는 사회적 소통과 대화의 문화를 만들어가려는 익천문화재단 길동무가 주관하고, 12명의 이주인권활동가와 작가들이 함께한다. 필진은 다음과 같다. 고기복(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 대표), 김종필(시인), 반수연(소설가), 부희령(소설가), 우삼열(아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 이경란(소설가), 이란주(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이소연(지구별살롱 대표), 이수경(소설가), 정은주(지구인의 정류장 활동가), 홍주민(한국디아코니아 대표), 희정(기록노동자). (이상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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