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없이 파고드는 감염병의 위협, 열대질환 샤가스병
[권신혁 기자]
▲ 샤가스병 매개체가 되는 침노린재와 사람 혈액 속에서 관찰된 '크루즈 파동편모충'의 모습 |
ⓒ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
증상없는 감염병은 무섭다. 국경도 없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팬데믹(pandemic)을 겪고 난 후 감염병의 범국가적 이동은 경계 대상이 됐다.
교통의 발달로 지구'촌'이 된 이후 풍토병이라 불리던 지역 감염병이 대륙을 넘나들고 있다. 중남미를 중심으로 발생한 '샤가스병'은 무증상에 가까운 감염병이다. 이것도 국경을 넘었다. 2019년 4월 미 질병통제센터(CDC)에 따르면 미국 샤가스병 감염 사례를 30만명 이상으로 추정했다. 유럽질병통제센터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 Eurosurveillance > 2011년 9월호는 중남미 이민자가 가장 많은 스페인에서 최대 8만6000명, 이탈리아는 최대 1만2000명으로 보고있다고 발표했다. 국제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는 2020년부터 4월 14일을 세계 샤가스병 인식의 날로 지정해 국제적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느리지만 조용히 전파되는 샤가스의 위험
WHO가 인식의 날까지 지정한 샤가스병, 도대체 무슨 질환일까? 이것은 중남미에서 주로 발견된다. '크루즈 파동편모충'이라는 기생충에 의한 감염질환이다. 감염자 10명 중 3명은 심각한 증세를 보인다. 만성 샤가스병이 발병한 질환자 중 일부는 거대 식도증 내지 거대 결장증을 앓는다. 대다수는 심부전 등의 심장질환이 발병해 기대수명이 20-30년가량이 낮아진다고 알려져 있다.
▲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연방 대학교에서 국가별 발생현황 통계를 취합했다. 중남미 풍토병 지역에서 북미, 유럽, 오스트레일리아와 일본 등지로 감염자 이동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프론티어스 인 퍼블릭 헬스, 2019) |
ⓒ Lidani 외 6명 |
그렇기에 샤가스병은 속칭 부자 국가라고 하는 미국, 유럽 등의 지역에서는 관심 밖 일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점점 달라지고 있다. 해외 여행이 많아지고 이민자가 증가하면서 점차 발생 범위를 확장했다. 프론티어스 인 퍼블릭 헬스(Frontiers in Public Health)에 실린 샤가스병 연구자료(2019)를 살펴보면 중남미의 샤가스병 유병률은 감소하는 반면 비풍토병 지역의 발생 사례는 급격히 증가해 세계적인 공중보건 문제로 대두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WHO와 범아메리카 보건기구(Pan American Health Organization, PAHO)에서도 경계의 목소리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이제는 국제적으로 관리해야 할 감염병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 6월 미국에서 <키싱버그 : 가족, 벌레, 치명적인 샤가스병의 국가적 방치에 대한 진실>을 출간한 데이지 에르난데스는 샤가스병이 방치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감염학계가 인종차별적이며 세계 주요 보건당국과 관련 기관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소외된 이민자들과 저개발 국가들이 처한 의료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관계당국이 좀 더 높은 수준에서 감염병 관련 의료 인프라 구축과 관련 연구개발 지원이 이뤄져야 함을 시사했다.
전염 경로는 일상생활 속 벌레물림이나 배설물을 통한 감염말고도 여러 종류가 있다. 그 중에 가장 주목해 봐야할 곳은 병원이다. 감염은 의료환경에서도 나타나는데 미보건당국과 관련 연구기관은 수혈 감염을 우려했다. 미국혈액은행협회에 따르면 2007~2013년 샤가스병 선별검사가 수행된 혈액 약 24만 건 중 1900건에서 감염원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미국, 프랑스, 스페인 등은 샤가스병이 유행하는 지역에서 태어났거나 거주한 이력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헌혈과 장기이식 시 샤가스병 감염 검사를 별도로 실시하고 있다. 만성 감염자 94-96%가 자신의 감염 상태를 모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안전 시스템을 마련한 것이다.
국내 인식과 대비는 어느 수준?
국내는 상대적으로 중남미 이민자의 영향이 거의 없는 지역이다. 하지만 중남미 지역과의 인적 교류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해외여행자, 장기 해외봉사자(코이카, NGO 등) 등을 통한 샤가스병 유입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샤가스병의 국내 발생 사례는 아직까지 보고된 바 없다.
▲ 2020년까지 중남미 28개국가에서 6,193명이 활동하고 국내로 귀국했다. (통계자료 = 한눈에 읽는 2020년 WORLD FRIENDS KOREA 주요통계) |
ⓒ 그래픽 : 권신혁 |
중남미 지역 장기 해외봉사자들이 많았던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봉사단의 안전 실태를 취재한 결과 귀국 단원들에 대한 건강검진 항목에서 샤가스병 진단 항목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전세계가 위드코로나로 접어들며 국제 교류가 재개되는 시점에서 코이카도 봉사단 재파견을 앞두고 있다. 이에 샤가스병에 대한 위험성을 인식하고 샤가스병 진단 항목 추가를 검토한다고 밝혔다.
헌혈된 혈액 관리 전반을 담당하는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문의한 결과에선 현재는 의료기관이나 개인에 의해 샤가스병 확진이 인지됐을 경우에만 감염 혈액이 걸러질 수 있었다. 스웨덴의 경우 위험성이 있는 기증자를 배제하며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는 헌혈 전 문진으로 선별해 감염 위험성 있는 헌혈자를 중심으로 선별검사를 실시한다. 국내는 아직 관련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다.
샤가스병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전문인력이 현미경으로 혈액 내 기생충을 직접 찾아야 한다. 혈액 전수 검사가 힘들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유럽에서도 사전에 문진을 통해 감염 예상자를 찾고 별도로 관리하는 것이다. 만성 잠복기 질환자는 기생충들이 혈관에 분포하기보다는 심장, 대장 등 장기로 보금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
▲ 브라질 원주민 청년에게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는 모습이다. |
ⓒ 판아메리카 보건기구(PAHO) |
샤가스병같은 기생충을 통한 전염병은 말라리아, 리슈만편모충 등이 있다. 세계 여러나라의 바이오 업체들과 연구소에서는 기생충 감염병 진단 키트를 개발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6월 AI진단기기 스타트업체인 노을(주)과 한국파스퇴르연구소가 기생충 전염병 진단 키트 연구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노을(주)의 임찬양 대표는 언론에 "의료 자원의 제한을 뛰어넘어 진단을 효율화하고 의료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진단 키트 개발과 PCR 기술은 민간 업체의 노력에 정부의 지원이 합쳐져서 가능했다. 샤가스병 진단도 정부와 적십자사 등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 부분이다.
사전에 해외 감염병을 인지하고 진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코로나 방역을 통해 우리는 2년 동안 뼛속깊이 깨달았다. 더불어 개발역량이 부족한 저개발국의 열대 감염병 퇴치에 기여해야 한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의 공포 때문에 다시 특정국가에 대한 입출국 규제를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부자 국가의 책임이 크다.
지금까지 백신 공급은 부국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 때문에 저개발국가에서 변이바이러스가 생기고 다시 부자국가들은 새로운 백신을 개발해야 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샤가스병은 저개발국의 전염병을 부국 중심으로 전세계 국가가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징적인 전염병이다. 앞으로 세계적으로 퍼져나갈 지역 풍토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끼워야 하는 첫단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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