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연말 IPO 시장..대어급 내년으로, 공모주 펀드도 비실
통상 연말은 새내기 기업들의 증시 입성이 몰리는 IPO(기업공개) 성수기다. 하지만 올해는 지지부진한 증시 상황이 이어지는 데다 수요예측 흥행에 실패한 공모주들이 잇따라 청약 철회에 나서면서 IPO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11월 초 카카오페이를 끝으로 이렇다 할 대어급 상장도 없는 만큼 시장 분위기가 반전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상장을 준비하던 기업들도 줄줄이 2022년으로 IPO 일정을 늦추는 모양새다.
지난 11월 3일 삼라마이다스그룹 해운사인 SM상선은 상장 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올해 영업이익이 사상 최대인 1조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상장 시 기업가치가 3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으나, SM상선과 함께 국내 양대 국적 원양선사인 HMM 주가가 10월 들어 반 토막 가까이 급락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결정적으로 11월 1~2일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두 자릿수의 저조한 경쟁률에 그쳤고, 참여 기관 대부분이 희망 공모가 범위(1만8000~2만5000원) 하단보다 낮은 가격을 써내면서 흥행에 실패했다.
앞서 10월에는 조 단위 대어급으로 평가받던 핸드백 제조사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이하 시몬느)도 상장 계획을 접었다. 마찬가지로 올 상반기 실적이 크게 반등해 기대가 높았지만, 기관 반응은 냉담했다. 수요예측 경쟁률은 수십 대 1 수준에 그쳤고, 대부분 기관이 희망 공모가 범위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 의무보유확약 신청 건수도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수요예측 흥행에 실패한 공모주들이 상장 후에도 주가 부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회사 측은 상장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3월 이후 가파르게 상승하던 증시가 올 하반기 들어 변동성이 커진 데다 공모주 청약 열풍을 일으켰던 초대형 IPO들이 연이어 따상(공모가 두 배에서 시초가 형성 후 상한가)에 실패하면서 투자 심리가 가라앉았다. IPO 시장의 전통적인 성수기인 11~12월에 자금이 몰렸던 과거와 달리 침체된 시장 분위기를 따라 자금이 빠져나가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공모주 펀드 한 달 새 5000억원 유출
확 달라진 분위기는 공모주 펀드 시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올 상반기 IPO 열풍에 큰 인기를 끌었던 공모주 펀드에서 대거 자금이 빠져나가는 중이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1월 25일 기준 최근 한 달 동안에만 공모주 펀드에서 4858억원의 돈이 유출됐다. 배당주와 가치주, 멀티에셋 등 40여개로 분류된 테마형 펀드 가운데 가장 큰 감소폭이다. 1년 전인 지난해 11월 말 총 설정액 3조2825억원 수준이던 공모주 펀드는 올 들어 한때 설정액이 8조원을 넘어서는 등 뭉칫돈이 몰렸으나, 11월 25일 기준 6조7971억원으로 설정액이 감소했다.
공모주 투자 열풍을 이끌었던 ‘따상’도 나오는 빈도가 확연히 줄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하반기 들어 신규 상장한 기업 중 상장 첫 거래일에 ‘따상’을 기록한 기업은 맥스트를 비롯해 원티드랩·플래티어·브레인즈컴퍼니·일진하이솔루스·지아이텍 등 6곳에 그쳤다. 이는 올 상반기 중 따상에 성공한 기업(19곳)과 비교하면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10월 말 상장한 리파인과 11월 초 상장한 지니너스 등은 상장 첫날 주가가 공모가 아래로 떨어진 데 이어 아직 공모가를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공모주 시장 부진은 침체된 증시 상황의 영향이 가장 크다. 지난 6월 25일 3300선을 돌파한 코스피지수는 7월 들어 힘이 빠지면서 10% 이상 하락했다. 기업가치 3조원대로 평가받던 넷마블네오가 대표적인 사례다. 넷마블의 게임 개발 자회사인 넷마블네오는 지난 6월 25일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했으나, 이후 증시가 하락세를 보이면서 공모주 투자 열기가 식자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 11월 상장심사를 철회했다.
나승두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상장한 종목들의 주가 부진이나 상장 철회는 증시를 둘러싸고 있는 대내외적인 환경과 연관성이 깊다.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과 같은 유동성 축소 기류, 기업가치 책정에 부정적인 증시 조정 국면 등이 새내기 종목들의 주가 부진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공모가 부풀리기’ 등으로 신규 상장 기업 주가 움직임에 대한 예측이 어려워진 것도 공모주 투자 열기에 찬물을 끼얹은 요인이다. 연초 일반청약을 진행한 SK바이오사이언스나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경우 청약 증거금이 각각 63조6000억원, 80조5000억원에 달했지만 공모가 고평가 논란에 시달렸던 크래프톤과 롯데렌탈은 청약 증거금이 각각 5조1000억원, 8조4000억원에 그쳤다. 크래프톤과 롯데렌탈은 상장 첫날 공모가를 밑도는 가격으로 장을 마감하면서 투자자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내년 역대급 IPO 장 열릴까 기대
12월 IPO 시장도 가뭄이 예상된다. 코스피 신규 상장은 신한서부티엔디리츠, 미래에셋글로벌리츠 등 리츠를 제외하면 HDC아이콘트롤스뿐이고, 코스닥 시장 역시 IPO가 확정된 기업은 스팩을 통한 우회 상장을 제외하면 3곳뿐이다. 2019년 17개, 2020년 19개와 비교하면 눈에 띄게 감소한 수준이다.
다만 IPO 한파 속에서도 친환경·미래 기술 등 성장성이 높은 기업들은 흥행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 IPO 시장에도 본격적인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1월 10일 증시에 입성한 디어유는 최근 가장 뜨거운 테마인 ‘메타버스’ 관련주로 주목받으면서 수요예측에서 경쟁률 2001:1을 기록했다. 공모가도 희망 가격 범위 최상단인 2만4000원을 8% 초과한 2만8000원으로 결정된 데 이어 11월 25일 기준 주가가 7만7200원으로 고공행진 중이다. 그래프 데이터베이스(DB) 전문기업 비트나인 역시 1662:1의 수요예측 경쟁률을 달성했고, 희망 가격 범위 상단을 초과한 1만1000원에 공모가를 확정했다.
12월 IPO 시장에서 가장 주목되는 기업은 툴젠이다. 유전자 가위 기술을 보유한 코넥스 대장주 툴젠은 올해를 포함해 코스닥 이전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만 4번 청구했지만 앞선 3차례 청구에서는 특허 미등록 등의 이유로 상장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올해 처음으로 상장심사 승인을 받아 증시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수년간 코넥스 시장 시총 1위라는 타이틀을 유지할 만큼 기술력은 인정받고 있어 흥행 성공을 기대하고 있다.
해가 바뀌면 IPO 시장이 다시 달아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시장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초대형 IPO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서다. LG에너지솔루션·현대오일뱅크·현대엔지니어링·CJ올리브영·SSG닷컴·컬리·SK쉴더스(구 ADT캡스)·오아시스·원스토어 등이 2022년 공모주 시장에 등판할 채비를 하고 있다.
빠르면 내년 1월 상장이 예상되는 LG에너지솔루션은 기업가치가 70조~80조원으로 거론되는 역대급 공모주다. 자금을 선점하기 위해 2022년 1호 상장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신년 IPO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전망이다. 창립 20년 만에 IPO에 나선 현대엔지니어링 역시 일정이 예정대로 추진된다면 1월 내 증시 무대에 오른다.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가치는 최대 10조원 수준까지 거론돼 상장 시 건설주 시총 순위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정유회사 현대오일뱅크도 IPO에 속도를 내며 세 번째 도전에 나선다. 기업가치는 최대 10조원 수준까지 거론된다.
[류지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36호 (2021.12.01~2021.12.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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