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여, 김대중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2021. 11. 2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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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엉뚱한 곳 찾아가 엉뚱한 말을 하다

[김종성 기자]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2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 참배를 마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11.28
ⓒ 연합뉴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28일 오전에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사과도 반성도 없이 떠난 사람을 용서하기에는 더 많은 시간과 세월이 필요할 것"이라며 "전두환이라는 이름 석 자에 분노만 하며 살 수는 없다"는 말로 전두환에 대한 용서를 촉구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우리는 남을 용서할 의무가 있고, 또 사랑은 못하더라도 용서는 할 수 있다"는 말을 인용해 "용서와 화해, 국민통합과 역사 발전, 그 중심에 광주가 있어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이러면서 그는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자는 의견도 함께 제시했다.

안철수 후보의 발언은 전두환이 사과·반성 없이 떠난 점을 지적하는 것이면서도, 전두환에 대한 용서의 필요성을 좀 더 강조하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전두환을 비롯한 5·18 학살 세력이 용서를 빌어야 할 의무를 강조하기보다는 피해자와 국민들이 용서를 해야 할 의무를 강조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안철수는 김대중의 말을 근거로 했지만, 안철수의 발언이 김대중의 생각을 제대로 반영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용서와 화해를 강조하고 몸소 실천한 것은 사실이지만, 안철수처럼 가해자의 참회할 의무보다 피해자의 용서할 의무를 쉽사리 거론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지난 5월 17일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이 공개한 연설 동영상에 따르면, 김대중이 강조한 5·18 해법은 광주의 한(恨)을 푸는 것이었다.

그는 그 한을 보복이나 복수의 방법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고 외쳤다. 5·18 학살 3년 뒤인 1983년 3월 5일 필라델피아 템플대학에서 '민중의 한과 우리 세대의 사명'을 주제로 가진 강연회에서 "민중의 한은 원한이 아닙니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복수로써 풀리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민중의 한을 가장 잘 대표하는 것이 우리나라에 있는 판소리"라면서 <춘향전>·<심청전>·<흥부전>의 주인공이 한을 푸는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춘향이의 한은 결코 자기를 그렇게 괴롭히고 감옥에서 들어가서 곤장을 때리고 수청 안 든다고 박해한 신관 사또 변 사또에게 보복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라며 "춘향이의 한은 자기를 사랑하는 이 도령과 맺어짐으로써 풀립니다"라고 해설했다.

어사출도(御使出道) 뒤 이몽룡은 변학도에게 응징을 가했다. 김대중은 이 응징이 불필요하거나 과도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이것을 사적인 보복이나 과도한 복수로 이해하지 않았다.

"이몽룡은 춘향을 석방시킨 후에도 변 사또에 대해서 춘향이로 인해서 보복하지 않습니다"라며 "탐관오리로서의 조건 때문에 봉고파직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남원부 창고를 봉해 변 사또의 접근을 차단하고 그의 파면을 건의한 것은 변학도에 대한 합당한 응징이었지 결코 사적 보복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뒤이어 김대중은 심청이의 한은 인당수에 몸을 던진 뒤 황후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으로 풀리지 않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것으로 풀린다고 말했다. 또 흥부의 한은 제비가 갖고 온 박씨로 인해 가난에서 해방됨으로써 풀리는 것이지 못된 부자 형에 대한 보복으로써 풀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사적인 보복을 경계하면서 김대중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광주의 한을 풀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리는 광주의 민중들이 가슴에 품고 죽었던 그 한,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에 살고 싶다, 인간이 인간 대우를 받는 나라에 살고 싶다, 내 자식들을 위해서 이런 죄악 된 나라를 후손에게 남겨주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 죽어간 그 광주 한을 민주 회복을 통해서 풀어주는 것만이 오늘의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 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정부와 국민 모두가 다 같이 구원받고 서로 화목하고 서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나는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싶습니다.
  
 전두환 심판 국민행동본부가 23일 오후 6시경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정문 앞에서 전두환씨를 규탄하는 회견을 열었다.
ⓒ 손가영
 
민주주의의 성취를 통해 다 같이 구원받고 서로 화목하고 서로 평화롭게 사는 것이 5·18의 한을 푸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제2의 전두환이 출현해 국민들을 짓밟는 일이 없도록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그가 말한 5·18 해원(解冤)의 초석이다.

그는 무조건적 용서를 제안하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뒤 서로 화목하고 서로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화해를 위한 쌍방의 노력을 강조한 것이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용서해주는 것이 아닌, 용서를 빌고 용서를 해주는 것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대통령 재임 중인 2000년에 그는 '5·18광주민주화운동 제20주년 기념식 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서도 "이제는 우리가 살아남은 사람들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할 때"라며 "무엇보다 우리는 광주항쟁의 정신을 받들어 인권을 더욱 신장시키고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데 노력을 다해야 하겠습니다"라고 한 뒤 "화해와 대화합의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지역 간, 계층 간의 모든 분열과 대립을 종식시켜야 하겠습니다"라고 역설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완성을 추구하면서 화해와 용서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민주주의의 완성에 필요한 조건 중 하나가 김영삼 정권 시절에 강조됐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을 상당 부분 계승한 김영삼 정권이 주도해서 만든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5·18특별법)'에 그 조건이 드러나 있다.

이렇게 지극정성 다한 피해자들이 또 있을까

김영삼 정권의 의지뿐 아니라 당시 국민들의 의지가 크게 반영된 이 법률의 제정 취지는 공소시효와 관계없이 전두환·노태우 등을 처벌하는 데 있었다. 전·노 처벌을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는 목적과 관련해 이 법 제1조는 "헌정질서 파괴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정지 등에 관한 사항 등을 규정함으로써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민주화를 정착시키며 민족정기를 함양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선언했다.

전두환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민주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5·18 책임자 처벌이 민주화에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책임자를 가려내기 위한 진상규명 작업도 당연히 민주화에 필요할 수밖에 없다. 또 책임자를 가려냈다면 그를 상대로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과 5·18 특별법 등을 종합하면, 진상규명을 통해 책임자를 찾아내 처벌하고 사과·반성을 요구하는 과정이 한국 민주주의에 필수 불가결하며 이것이 화해와 용서 및 대화합으로 나아가는 5·18 해법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제까지 광주시민과 우리 국민들은 대체로 그런 해법을 따라왔다. 전두환과 그 집단을 상대로 물리적 보복을 가하지 않고 진상규명과 합법적 처벌을 추진했다. 또 그들이 용서를 빌고 그들에게 용서를 해주기 위해 끊임없이 그들을 소환하고 그들에게 다가가려 노력했다. 40년간 이 정도의 지극정성을 다하는 피해자와 피해 국민이 역사에 또 있었을까. 그 정도의 눈물겨운 과정이 그간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서 가해자나 피해자를 상대로 뭔가 촉구해야 한다면, 그것은 응당 가해자 쪽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피해자는 지난 40년간 절절히 노력해온 반면, 가해자는 조금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가해자의 대표인 전두환은 설악산 백담사로, 고향 합천으로 달아나는 모습만 보여줬다. 사면·복권을 받고 석방된 1997년 12월 22일에도 교도소 출소 소감을 묻든 기자들 앞에서 대국민 사과 한마디 없이 "여러분은 들어가지 마시오"라며 전과자가 되지 말라는 말을 던지고 사라졌다. 또 다른 대표인 노태우 역시 사과 한마디 없었다. 아들 노재헌씨가 광주에 가서 대신 무릎 꿇고 참회했을 뿐이다. 장세동을 비롯한 그 추종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 까치 앉은 5.18구묘역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는 5·18구묘역. 2015.5.27
ⓒ 소중한
 
이런 상태에서 전·노가 한 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전·노가 할 일을 하지 못하고 떠났기 때문에, 지금 해야 할 일은 가해자를 계승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살아남은 자'의 역할을 촉구하든가, 아니면 피해자들을 찾아가 마음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5·18 해결과 관련해 뭔가 촉구할 게 있었다면, 그는 응당 가해자의 집 앞으로 갔어야 한다. 연희동이 아닌 광주로 갔다면 '용서할 의무가 있다'고 말할 게 아니라 피해자들과 한 마음임을 보여줬어야 한다. 그는 엉뚱한 곳을 찾아가 엉뚱한 말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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