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280만 나라가 대놓고 중국을 반대하는 이유
[박성우 기자]
▲ 지난 18일(현지시각) 리투아니아 빌뉴스의 야신스키오 가트베에 있는 타이완 대표 사무실의 명패. 타이베이는 이날 공식적으로 리투아니아에 대만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의 대사관을 개설했다고 발표했다. |
ⓒ 연합뉴스=AFP |
지난 18일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타이완 대표처'가 공식 개관했다. 중국과 수교를 맺은 국가들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타이완의 외교공관 명칭을 타이완의 수도 타이베이를 앞세워 '타이베이 대표처' 등으로 표기한다. 그런데 리투아니아가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최초로 타이베이 대신 타이완 이름을 사용했다.
당연히 중국의 반발이 따랐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정례 브리핑에서 "리투아니아에 경제 무역 분야의 징벌적 조처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잘못을 저질렀으니,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무역 보복을 언급했다. 그는 "리투아니아는 신의를 저버리고 알면서도 잘못을 저질렀다"며 "공공연히 '하나의 중국·하나의 대만'을 조성해 국제적으로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고 맹비난했다.
이에 이어 중국은 26일 리투아니아 대사관을 외교 기구 중 가장 낮은 등급인 대표처로 개칭했다. 자오리젠 대변인은 "중국의 이번 조치는 리투아니아가 중국의 주권을 훼손한 데 대한 정당한 반격이며 책임은 전적으로 리투아니아에 있다"며 "중국 인민은 모욕당할 수 없으며, 중국의 국가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은 침범될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위구르·중국산 스마트폰... 리투아니아와 중국, 갈등의 역사
리투아니아와 중국간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8월 23일은 '발트의 길' 30주년이었다. '발트의 길'은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 3국 주민 200만 명이 1989년 8월 23일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며 만든 총연장 600km의 인간 띠다. 그날 저녁 홍콩에서도 수십만 명의 사람이 '발트의 길'을 본뜬 60km 길이의 인간 띠를 만들며 중국의 '번죄인 인도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일명 '홍콩의 길' 시위다.
같은 날 빌뉴스에서도 수백 명의 시민들이 '홍콩의 길'을 응원하며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중국인 수십여 명이 '홍콩은 영원히 중국의 일부'라고 외치며 맞불 시위를 열었고 양측 시위대 간의 소동이 발생했다. 맞불 시위를 주도한 리투아니아 주재 중국상공회의소 회장은 리투아니아인들이 가짜뉴스에 의해 선동됐다고 주장했다.
한편 리투아니아 국회의원 만타스 아도메나스는 '중국 대사 셴즈페이가 중국인 시위대를 지휘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이에 리투아니아 외교부는 셴즈페이 대사를 소환했고 리나스 린케비치우스 외교부장관은 '리투아니아 헌법에 명시된 민주적 자유를 침해하고 공공 질서를 교란하는 중국 대사관 직원의 행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중국 측은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러한 리투아니아 측의 입장에 대해 중국 대사관은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았다고 반박하며 대응 시위의 자발적 성격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중국 정부를 실추시키는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고 대꾸했다.
▲ 리투아니아 국방부가 검열 기능이 있다며 공개한 중국산 스마트폰들. |
ⓒ 리투아니아 국방부 |
국회의원 개인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 22일에는 리투아니아 외교부가 "실익은 없고 회원국 간 갈등만 조장한다"며 중국과 중·동유럽 국가간의 '17+1' 경제 협력체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9월엔 리투아니아 국가사이버보안기구(ISS)가 중국산 스마트폰에 '자유 티베트', '대만 독립 만세', '민주주의 운동' 등의 용어를 탐지하고 검열할 수 있는 기능이 내장돼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조사 결과에 대해 마르기리스 아부케비키우스 리투아니아 국방부차관은 "우리의 권고는 새로운 중국 전화기를 사지 않는 것이며, 이미 구입한 전화기는 가능한 한 빨리 제거하는 것"이라 발언했다.
리투아니아의 반중은 역사적·경제적 이유가 커
그렇다면 리투아니아가 중국과 대치하며 타이완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려는 까닭은 무엇인가. 첫 번째로 리투아니아와 타이완은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1990년 3월 리투아니아는 구소련 국가 중 처음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이에 1991년 1월, 소련군이 리투아니아를 침공하여 13명이 사망하고 700여 명이 부상했으나, 리투아니아는 그해 9월에 독립을 이뤄냈다. 이런 역사를 지닌 리투아니아로서는 최근 전랑 외교를 내세우며 타이완을 향해 노골적인 압박을 가하는 중국의 모습에서 자연히 과거 소련으로부터 핍박받은 아픈 상처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경제적 이해관계다. 리투아니아의 레이저 산업은 세계적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피코 초(1조 분의 1초) 레이저 분광기에 관한 한, 리투아니아가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한편 전세계 시가총액 8위(삼성전자가 19위)를 자랑하는 타이완의 반도체기업인 TSMC는 실리콘 광학 분야에 비교적 뒤처져 있다.
타이완 입장에서는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리투아니아의 레이저 기술이 절실하다. 이에 실리콘 광학을 전문 분야로 하는 리투아니아의 대표적인 반도체·광자기업인 브롤리스 반도체와 리투아니아의 레이저 기술 연구소인 물리기술센터(FTC) 산하 레이저기술부(LTS)는 앞으로 타이완과의 협력을 중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리투아니아는 자국에 반도체 관련 공장 유치를 원하고 있다.
전차도 전투기도 없는 군사약소국에 중국에 비하면 인구는 1/500, 경제규모는 1/270에 불과한 리투아니아의 자신있는 반중 행보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까. 과연 최강국 소련으로부터 최초로 독립을 선언해 결국 소련 붕괴에 영향을 끼친 리투아니아의 역사는 반복될 수 있을까. 점점 심각해져가는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사이에서 입장을 잘 세워야 할 한국으로서는 주목할 만 사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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