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주15시간 미만 노동자 퇴직금 적용 제외는 합헌"
주당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에게 퇴직급여를 보장하지 않는 현행법이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29일 나왔다. 헌재가 초단시간 근로자의 근로 조건에 대한 헌법 위배 여부를 판단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모든 노동자에게 퇴직급여 지급하는 건 사용자에 지나친 부담”
한국마사회에서 시간제 경마직 직원으로 일한 A씨는 퇴직 후 퇴직금 지급소송을 냈지만 기각됐다. A씨의 1주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이었기 때문이다. 한 사립대학에서 철학 담당 시간강사로 근무한 B씨 역시 같은 이유로 퇴직금을 받을 수 없었다. 이들은 각각 헌재에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이 자신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냈다.
헌재 재판관 6명은 초단시간 근로자를 퇴직급여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이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헌법 제32조 제3항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한다. 6명의 재판관은 근로조건을 법률로 정하도록 한 것이 근로자와 사용자들 사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는 사항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법으로 퇴직급여제도를 만들 때 근로자 보호 필요성과 사용자의 부담 능력, 소요되는 경제ㆍ사회적 비용, 다른 사회보험제도의 활용 및 보완ㆍ대체 가능성을 두루 따지고, 그런데도 퇴직급여제도가 현저히 불합리해서 헌법상 용인할 수 있는 재량을 벗어났는지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
법정 의견은 “근로조건 보장은 근로자의 두터운 보호만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효율적인 기업 경영 및 기업의 생산성 측면과 조화를 이룰 때 달성 가능하다”며 헌법의 취지를 설명했다. 사업주들이 근로자가 일시적, 임시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지에 관계없이 퇴직급여 지급 의무를 부담케 하는 것은 지나치게 과중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법이 15시간이라는 기준 시간을 만들어 둔 것은 근로자의 사업장에 대한 전속성ㆍ기여도가 전제돼야 퇴직급여제도가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고, 소정근로시간 15시간은 그 객관적인 기준으로 적절하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반대의견 "초단시간 근로자야말로 사각지대 놓여"
반면 3명의 재판관(이석태·김기영·이미선)은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은 초단기간 근로자가 처한 현실 상황에 주목했다. 주당 15시간 미만 일하는 근로자들이야말로 임금 수준이 열악하고, 고용보험이나 국민연금 등 다른 사회보장제도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큰 근로자들인데 퇴직급여제도에서도 제외된다면 결과적으로는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4주 평균 1주당 소정근로시간 15시간’을 퇴직급여 지급 기준으로 삼은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고 봤다. 사업장에 대한 전속성이나 기여도를 평가할 때 소정근로시간이라는 단일한 기준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다.
만약 1주에 15시간씩 근무하며 10년을 근속한 근로자와 1주에 20시간을 일했지만 2년을 근속한 근로자가 동시에 퇴직한다면 전자는 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후자는 퇴직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전자의 기여도가 후자의 기여도보다 적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게 반대의견의 주장이다.
사용자 부담에 대한 평가도 달랐다. 초단시간 근로자에게 퇴직금이 지급된다면 다른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산정한 비율에 따라 액수가 정해진다. 근무하는 시간이 짧으므로 퇴직급여액도 크지 않아 사용자에게 중대한 수준의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이에 더해 반대의견은 현실에서 사용자들이 퇴직급여 보장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부러 초단시간 근로자를 고용하는 ‘일자리 쪼개기’ 편법을 쓰거나 소정근로시간과 실제 근무시간을 달리 적용하는 꼼수가 이미 적지 않다는 점을 꼬집기도 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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