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주52시간 잘 지키는데 드라마는 왜 안 지키죠?"
[이상길 기자]
▲ 촬영 현장 |
ⓒ 플리커 |
"영화는 1주 52시간 잘 지키잖아요. 만드는 방식은 똑같은데 왜 드라마는 안하는지 이해가 안돼요."
"영화도 다 그렇게 법을 잘 지키는 건 아니다. 그래도 드라마보다는 훨씬 좋지."
주로 영화만 했던 스태프와 방송드라마만 해던 스태프가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장시간 촬영에 시달리며 했을 법한 대화다. 정작 영화촬영과 방송드라마촬영에서 제작사와 스태프의 고용 및 지휘감독 관계는 차이가 없다. 그리고 만드는 방법도 차이가 없다.
유일한 차이라면 촬영하는 속도에서 드라마가 상대적으로 빠른 편이다. 두 영역을 오가며 일하는 스태프는 물론 영화와 드라마 모두 제작하는 다수 제작사도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드라마 제작사는 오직 '드라마'라는 이유로 다른 계약, 다른 근로시간 기준을 적용할 것을 스태프에게 요구한다.
"드라마는 영화랑 다르다, 그래서 3.3%(용역계약) 쓰지 근로계약 안쓴다."
"1주 52시간? 그럼 드라마는 못하겠네, 영화나 그렇지..."
"드라마는 다 그래요, 다른 스태프도 다 이 (용역)계약서로 서명했어요."
영화제작에 주로 참여했던 스태프가 방송드라마 참여할 때, 제작실장이나 프로듀서가 계약서 협상 자리에서 스태프에게 할 법한 얘기다. 불안정한 단기 계약직인 것은 영화나 드라마가 차이가 없기에 대다수 영화 스태프는 일단 회사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다. 스태프가 그나마 알고 있는 노동상식으로 법 기준을 내세워봤자 계약이 결렬되고 일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제작사에 '까다로운 녀석'으로 찍이거나 일하는 부서 감독에게 '앞으로 계속 같이 해야지'라는 암묵적인 압박에 직면하고 심지어 다음 프로젝트에서 부서 감독과 결별하게 되기도 한다. 영상촬영 작업은 팀 단위 능숙한 협업이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오랜기간 일했던 부서감독이 아닌 다른 감독과 원하지 않지만 일하게 되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그나마 최근 OTT 등 플랫폼 중심의 영상산업의 성장으로 제작이 많아졌고 일자리가 많아졌기 망정이지 한동안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생계유지에 어려움에 시달릴 수도 있다.
영화제작 현장의 근로계약 작성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영화와 드라마를 소비하는 패턴의 변화와 더불어 제작환경도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영화산업 내 필름 사용이 사라지고 영화와 방송드라마의 카메라 등 각종 장비의 차이가 사실상 없어지면서 영화와 방송드라마 간 스태프의 인적인프라 공유가 시작되었다. 최근 다양한 온라인 상영 플랫폼 중심의 산업이 커지면서 전문 스태프 수요가 급증하여 영화스태프도 방송드라마 제작에 참여가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조합원이나 일반 영화스태프가 노동조합(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으로 드라마촬영 현장 관련한 문제로 문의와 제보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영화산업에서 근로계약에 익숙해진 스태프가 드라마촬영 현장에서 경험하는 문제를 상담하다보면 6~7년 전 영화촬영 환경과 크게 차이가 없다. 하지만 동일한 방식으로 일하는데도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제작하는 드라마 노동환경을 스태프들이 또 다른 노력을 들여 고쳐야한다는 것이 답답할 노릇이다.
법기준 노동시간이 지켜져서 부럽다는 영화제작현장의 근로계약 작성과 노동환경 개선은 '영화산업 노사정 이행협약'이 그 출발점이었다. 직접 고용주(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에 단체협약으로 압박할 수 없었던 투자배급사를 '노사정 협약'의 틀로 묶어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국정감사는 물론이고 시기별 정치 지형에 따라 투자배급사에게 왜 근로기준법 등 법준수가 필요한지 회유와 설득을 시도하여 2012년 1차 한국영화산업 노사정 이행 협약 체결, 2013년 2차, 2014년에는 3차 체결을 할 수 있었다. 3차 체결에 이르러서는 CJ E&M, CGV, 롯데, NEW, 쇼박스, 메가박스, 노조, 제협, PGK, 한독협, 영진위(문체부)까지 영화산업 내 대다수 주요한 주체가 참여하였다.
협약의 주요 내용은 4대보험 적용, '표준근로계약서' 사용, '영화산업 단체협약' 준수, '표준임금가이드라인'공시, 임금체불 등으로 분쟁중인 제작사의 투자 및 배급·상영 금지 등이다. 당시 노동 관행과 비교할 때 획기적인 변화였다.
이와 동시에 영화비디오법 개정으로 법제도 개선도 있었다. 2015년 11월 19일에 개정된 영화비디오법이 전면시행 되었고, '영화근로자', '표준근로계약서'의 보급 의무 등이 법 조항에 추가되었다.
▲ <국제시장> 촬영 당시 윤제균 감독 |
ⓒ JK필름 |
지금 보면 제작사가 할 법한 말이지만 여러 제도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많은 스태프의 인식은 이 말처럼 과거 노동환경에 익숙해져 있었다. 영화인재교육 시스템을 마련하고 업무 재교육 이외에 '구시대의 제작관행'을 당연시하는 스태프 스스로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동기초교육도 진행했다.
그렇게 2015년 초 영화 <국제시장>에서 첫 영화산업 표준계약서가 사용되었다. 하루 12시간 이상 촬영 제한, 12시간 넘길 시 초과수당 지급, 일주일에 1회 휴식일 보장, 4대 보험 가입'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물론 지속적인 감시활동은 병행해야 했다. 근로계약 보급 초창기에는 노조가 영화마다 법과 노사정 이행협약 등을 지키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일부 스태프는 노조로 연락해 '예전의 방식이 좋다, 왜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냐'는 항의를 하기도 했지만 조금씩 근로계약 사용이 늘기 시작했다.
"우리가 좋은 뜻에서 협조적으로 근로계약하고 그런거다, 스태프 고생하고 그러니까..."
"영화스태프가 법상 '근로자성'이 있긴 한가? 근거가 없잖아."
"너희는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인 근로자가 아니고 프리랜서다."
영화산업 표준계약서 사용 사례가 늘수록 제작사(사용자)의 반발도 조금씩 늘어났다. 제작사는 법을 지키라는 스태프의 요구에 '스태프가 법적용 대상이 맞는지 의문이다'라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부정하며 오히려 정부단체를 압박했다. 당시 영화진흥위원회조차 표준계약서 사용을 떠나서 근로자성은 다퉈볼 사항이라고 한 기억이 난다.
하지만 영화스태프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받은 대법원의 두 판결을 만들어 냈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된 이 재판은 다수 스태프가 용역계약서를 작성한 현장에서 체불 건이 있었는데, 이를 근로자성을 다투는 임금체불로 진행한 건이었다.
같은 작품 내에서 일반 스태프 19명 중심으로 한 건, 감독급 스태프 포함된 7명 중심으로 한 건 각각 진행했다. 영화의 각 부서 소속 스태프가 골고루 소송인으로 참여했고 부서별 감독급까지 포함되어서 영화제작현장 전체스태프의 '근로자성'이 인정된 것과 다름없었다. 당시까지 남아 있던 용역계약을 계속하는 제작관행에 경종을 울린 판결이었습니다. 그렇게 '근로자성'은 더이상 거론되지 않게 되었다.
이런 6~7년의 과정을 지나 겨우 제작현장의 사용자(제작사)와 노동자(스태프)는 근로계약 작성, 4대 사회보험 가입은 물론 근로기준법을 지켜야한다는 것을 당연한 의무와 권리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직 상대적으로 소규모 프로젝트에서 예산 및 제작 여건을 핑계로 근로계약에 저항하는 경우는 있지만 원칙적으로 권리와 의무를 더 이상 부정하지는 않는다.
영화제작사도 드라마를 만든다
"드라마는 안바뀌는 거 아니냐."
현장 스태프에게서 흔히 듣는 말이다. 자신은 '영화와 다름없이 드라마촬영장에서 일하는데, 근로계약도 1주 52시간도 없다'며 '노조에서 뭐 쫌 해보라'고 한다. 영화에서 확인된 제작사의 의무와 스태프의 권리가 드라마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런데 이 당연한 것을 위해 영화산업에서처럼 6~7년에 버금가는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할 것 같아 불안하다.
드라마는 극장에서 상영되는 1편, 2편 만들어나가는 시리즈를 한꺼번에 만드는 것과 같다. 요즘 '넷플릭스 영화'라는 것이 있다. 애초에 개봉을 온라인 플랫폼에만 하는 것이다. 그 영화가 같은 플랫폼에 올려져 있는 시리즈물인 '드라마'와 뭐가 다른가?
영화제작사도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평소 근로계약을 당연하게 사용하다가 드라마 제작 때는 동일한 영화스태프와 용역계약서를 작성한다. 방송드라마 제작사의 관행은 이렇게 영화산업 주체들인 제작사와 스태프에게 노동환경 후퇴를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관행이 당연시되지 않도록 시급한 조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작 핵심은 근로감독만 잘 되면 노사정 협약이나 법 개정 없이도 근로계약 정도는 얼마든지 현장에 보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드라마 스태프가 무슨 대단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근로감독만 잘 이뤄지면, 동일하게 일하는 영화현장에서 이미 확인된 근로자성과 법을 드라마에서도 지키자는 당연한 요구에 스태프가 일자리를 걸고 목소리 내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한국영상산업이 세계적으로 한국문화를 공유하는 매개가 되었고 국가 차원에서도 경제적 효과를 떠들어대고 있지만, 정작 그것을 만드는 드라마 제작 스태프의 노동환경은 모른 척하고 있다. 아동노동 착취로 만들어진 유명 초콜릿처럼, 스태프를 착취해서 만든 드라마가 진정 어떤 '한국문화'를 수출하고 있는지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한다. 드라마 스태프와 한국영상산업을 위해서라도 방송국과 제작사의 조속한 법 준수와 정부의 제대로된 근로감독을 다시 한번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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