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중학생 때 시작한 탈모, 그후 10년

김아영 2021. 11. 2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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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탈모 심리 픽션 에세이 '머리카락의 기쁨과 슬픔'

[김아영 기자]

1.충격과 부정 2.고통과 죄책감 3.분노와 협상 4.우울과 외로움 5.전환 6.재구성과 훈습 7.수용과 희망.

위 단계를 보고 누군가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고안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심리 변화를 떠올릴 줄 안다. 하지만 그 모델은 다섯 단계이다. 위 단계는 호주 원형탈모증 재단에서 중증 원형탈모 환자들의 심리를 세분화 한 일곱 단계 모델이다.
 
 '머리카락의 기쁨과 슬픔' 표지
ⓒ 동녘
 
우리 사회에서 탈모가 희화화의 대상이라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빡빡이, 빛나리, 문어, 대머리 등의 지칭은 모두 차별적 시선의 산물이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내기에서 삭발을 내거는 일도 그리 드물지 않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건 탈모로 인한 안면 변형이 아니라, 탈모증이 질병이라는 인식이 부족한 시대상이다. 질병이라기보다는 별것 아닌 미용 문제, 혹은 문제라고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며, 또 그런 사람들이 특별히 상식이나 교양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픽션 에세이로 지어진 〈머리카락의 기쁨과 슬픔〉의 주인공은 중학생 시절, 머리를 감다가 50원짜리 동전 크기의 매끈한 두피를 발견한다. 며칠 후에는 화장실 바닥에 시커먼 머리카락으로 뒤덮일 정도로 탈모가 심해졌고 어느 덧 병변의 크기는 100원짜리 동전만큼 커져 있었다. 그녀는 동네 피부과에서 원형탈모증을 진단받고 스테로이드 주사를 주기적으로 맞았지만 차도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나를 제외한, 머리털이 빠지지 않은 사람들은 흡사 동물원에서 오랑우탄을 감상하는 관람객 같은 태도를 취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구경꾼들의 시선은 즐거움과 호기심으로 번쩍거렸다.
"으아, 쟤 머리 봐라. 밥맛 떨어진다."
"푸하하, 여자애가 대머리? 대박인데."
"진짜 불쌍하다. 탈모가 저 정도면 나중에 결혼도 못 할 거야."
"우리 나이에 탈모라니 진짜 안 됐다. 내가 쟤라면 진심 자살한다."
 
심지어 선생님조차 '그 나이에 탈모냐'는 소리를 했다. 이후 그녀는 미용실에서, 병원 대기실에서, 외출만 하면 '어쩌다가' 하는 눈빛을 받았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와 응원은 기대할 수조차 없었다.

그녀가 대학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40퍼센트 이상의 머리카락이 빠진 상태였다. 의사는 조만간 머리카락이 다 빠질 거라고 진단했다.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는 치료법은 없었다. 그녀는 엄마의 제안에 따라 삭발을 했다. 이후 그녀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머리칼에 시선을 빼았겼다.
  
탈모증은 그녀의 삶을 질적으로 하락시켰다. 쉽게 얘기하면, 그녀는 외부로부터 단절되었다. 사람들의 차별 어린 시선을 피하기 위해 병원과 학교를 제외한 곳에는 가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조퇴를 이용해서 최대한 일찍 집에 돌아왔다.

책 속에 '머리카락의 소멸은 속박을 의미했다.'는 문장이 있는데, 사실 여기에는 '사람들의 시선'의 작용이 생략되어 있다. 탈모증을 희화화하는 사회가 아니라면, 어떻게 머리카락의 소멸이 속박을 의미하겠는가. 탈모증은 생명에 지장을 주는 병도 아니고 거동에도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털의 손실은 포유류의 정신 체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안면부에 위치한 모발은 존재만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소통과 교류를 통해 발달하는 인간에게 털은 자체가 기능인 물품으로, 아동기에서 성인기를 거쳐 노년기까지 심리사회 발달을 이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루 종일 링거를 맞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수시로 의사의 관찰 및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닌데 사회 생활이 극도로 제한되다니. 주인공의 탈모증은 머리에서 그치지 않았다. 눈썹, 팔다리의 털, 음모, 겨드랑이 털까지 완전히 빠지는 전신탈모증으로 진행되었다. 이제 그녀는 가발을 쓰는 것 외에 눈썹까지 그리고 다녀야 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 증세는 더 심해졌다. 그녀는 곧 대학생이 되었다.
 
가발을 바꿔 써야 하는 오티, 엠티는 물론 동아리 활동과 학과 모임에도 불참했으며 날씨 좋은 주말에도 방에만 콕 틀어박혔다. 마치 등껍질로 파고든 거북이처럼 원룸에만 처박혀 있었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생명체의 외모는 젊음과 건강의 지표로 활용되어왔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심리학일 뿐이다. 우리는 탈모가 외관에만 변화를 줄 뿐, 여타 신체 기능에 장애를 일으키는 질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대대로 물려받은 유전자가 머리카락이 없는 사람에 거부감을 일으키더라도 이내 지성으로 자신을 설득하면 그만이다. 그런 면에서 탈모증이 불안과 대인기피증을 야기한다는 말도 다시 생각할 수 있다. 병리학적으로 탈모가 합병증을 일으켜 환자의 정신이 불안을 겪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인식 부족이 불안을 야기한다고 말해야 정확하다.
 
-화장실에서 일어난 조용한 학살에 내 가슴은 쇠망치로 내려친 유리처럼 으깨져버렸다.
-머리카락은 마치 병충해가 확산되는 소나무 숲처럼 속절없이 쓰러져갔고 아침마다 화장실 바닥엔 공동묘지가 세워졌다. 그럴 때면 나는 날카로운 메스로 심장을 긁어내는 듯한 아픔을 맛보았다.
 
이 책에서는 이처럼 심리적 타격을 묘사한 문장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탈모 10년 차를 넘긴 저자이기에 이런 문장들이 가능했으리라.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탈모인들에게 지금 겪는 고통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그리고 두 번째는 비탈모인들이 탈모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여 궁극적으로는 인식을 개선시키기 위해서. 잊지 말자. 탈모의 완벽한 치료약은 아직 미진하지만 인식은 약 없이도 고칠 수 있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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