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사기극' 탄소 배출권 거래 사기의 모든 것

김형욱 2021. 11. 2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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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사기의 제왕>

[김형욱 기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사기의 제왕> 포스터.
ⓒ 넷플릭스
 
1997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3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중요한 의정서가 채택된다. 이른바 '교토의정서'로, 온실가스 감축이 주된 목적이었으며 2005년부터 발효되었다. 2021년부턴 기한 없는 '파리협정'이 발효되었는데, 모든 면에서 교토의정서의 상위 호환 버전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교토의정서의 주요 목적이기도 한 온실가스 감축의 일환으로, 선진국 간의 오염물질 배출권 거래제 이른바 '탄소 배출권 거래제'가 제시되기도 했는데 2004년 영국을 시작으로 2005년 유럽연합 25개국이 배출권 거래를 시작했다. 오염물질 배출권은, 오염물질 배출 허용량을 정해 잉여 배출량의 기업은 팔 수 있고 초과 배출량의 기업은 사야 하는 제도를 뜻한다.

융통성 있고 효율적이며 획기적이기까지 한 오염물질 배출권 거래제는, 그러나 누군가에게 구멍이 숭숭 뚫린 먹잇감에 불과했다. 사기꾼들한테 말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사기의 제왕>은 '세기의 사기극'이라 불리는 탄소 배출권 거래 사기의 막전막후를 상세히 들여다본다. 당사자 중 하나인 마르코 물리가 직접 출연해 사건의 하나부터 열까지 거의 모든 걸 풀어낸다.

탄소 배출권 사기

파리의 가난한 구역 출신인 마르코 물리는 상류층으로의 사다리를 타길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그가 그곳으로 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그가 택한 건 범죄의 길이었는데, 뛰어난 언변과 에너지 넘치는 마당발 스타일로 사기업계를 점령하다시피 했다. 자그마치 5만 명이 피해를 본 허위광고 사기로 유죄를 받기도 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그때 그 얘기를 하는 마르코의 입에서는 뻔뻔하기 짝이 없게도 '몰랐다'라는 말만 반복될 뿐이다.

1997년에 그레고리 자위를 만난 마르코, 곧 동업자가 되어 함께 일하기 시작한다. 둘은 휴대폰 회사를 차려 부가가치세 사기를 시작하는데, 영국에서 대량으로 들여온 휴대폰을 프랑스에서 팔려 할 때 세금이 붙는데 세금을 신고하지 않고 중간에서 가로채 버린 것이다. EU 내에서는 검문도 하지 않고 또 세금도 없이 물건을 마음대로 들여올 수 있지만, 국내에서 다시 세금이 붙는 시스템을 악용한 범죄의 일환이었다. 여기서 영감을 얻는 그레고리는 2005년부터 시작된 탄소 배출권 거래제도에도 똑같은 구멍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레고리로부터 영감을 얻은 마르코는 사기 범죄를 제대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다. 외국인 브로커를 찾아 부가가치세 범죄의 토대를 마련했고, 사미 수이에드가 이스라엘에서 원격으로 작전을 실행했다. 사미가 마르코와 함께하게 된 결정적 요인이 있었는데, 바로 진정한 상류층의 일원이자 어마어마한 부자였던 아르노 미므랑이 마르코의 뒷배에 있었다. 돈과 머리와 실행력과 시스템까지 갖춘 사기 집단이 탄생한 것이었다.

사기의 종말

아르노의 두둑한 밑천, 외국에서 원격으로 모든 일을 조종하는 사미, 언변과 실행력으로 사람과 일을 끌어모으는 마르코까지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사기 집단은 세계 각지에 페이퍼 컴퍼니를 마련해 국가에 내지 않은 어마어마한 부가가치세를 은폐한다. 마르코의 경우 탄소세의 '탄' 자도 몰랐지만 어마어마한 돈이 덩쿨째 들어온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아는지라 문제되지 않았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흥청망청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쓰는 등 인생 최대의 축제에 몸을 실은 동안, 그들을 주시하고 있던 이들의 시야에 뭔가가 들어오고 있었다. 탄소세를 거래하기 위해선 반드시 '블루넥스트'라는 곳을 경유해야 했는데, 2008년 10월 경부터 시장 상황과 맞지 않는 거래가 계속되는 걸 파악했던 것이다.

결국 덜미를 잡힌 마르코 일파, 2009년 이후 급격히 와해된다. 2010년 사미 수이에드는 괴한들에게 피살당하고, 아르노가 주범으로 의심되었으며, 마르코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탄소세 사기에서 시작되어 살인에 얽히기까지 하며 일파만파 커진 사건, 결국 마르코와 아르노는 이런저런 혐의로 감옥에 간다.

사기의 제왕

마르코는 땡전 한 푼 없다고 한다. 그런데 공식적 피해액이 2억 8300만 유로에 달하고 프랑스에서만 16억 유로 그리고 유럽 전체에서 60억 유로에 달하는 피해액을 양산한 사기 집단의 핵심에게 돈이 없다는 게 말이 될까? 그의 말을 믿기 힘들다. 가석방되어 잠시 집에 들른 그에겐 개인 비서 같은 스타일리스트도 있고 수억에 달하는 페라리도 소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관계자 누군가의 말마따나, 마르코에겐 아직 풀어놓지 못한 비밀이 많을 테다. 거기엔 돈 그리고 살인에 관련한 정확한 이야기도 담겨 있을 테고 말이다.

거의 모든 범죄가 그렇듯, 이 사기 집단의 범죄도 언젠가 꼬리가 밟힐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왜 사기를 저질렀던 걸까. 하다 못해 적당히 해 먹다가(?) 빠진 사기꾼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말이다. 그들은 당국의 눈길을 피해 잘 먹고 잘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런 이들에 비해 이들은 바보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한편으론 욕망에 충실한 인간상 또는 짧은 인생에서 더할 나위 없게 즐길 때를 아는 인간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싶다. 사기 범죄를 다루는 한계를 너무나도 잘 아는 인간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사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엔 결함이 있기 마련이다. UN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오염물질 배출권 거래제도를 마련해서 호기롭게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데, 제대로 정작되지 못한 초반에 세기의 사기 사건으로 믿을 수 없이 큰 피해를 봤다. 그런데, 이 작품이 나오기 전까진 어디를 찾아 봐도 관련된 사항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눈 뜨고 코 베이는 황당한 사건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기가 차기도 하면서 흥미롭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면서 분노가 차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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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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