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후보, 광주에 가벼운 용서는 필요없다
[나호선 기자]
▲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2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 참배를 마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11.28 |
ⓒ 연합뉴스 |
11월 28일 광주의 5·18 국립 민주 묘지를 찾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지난 23일 사망한 전두환씨에 관한 분노의 감정을 멈추고, 죄와 사람을 구분하여 용서할 의무에 대해 강조했다. 또한 그는 차기 정부가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계승하자는 내용을 삽입할 것을 주장하면서도, 광주 민주화 운동을 정치세력의 이용 수단으로 만들지 말자는 내용을 덧붙였다.
평소 '특정 세력의 5·18 정신 독점'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온 안철수 후보의 주장을 대략 살펴보면, 이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공인된 역사적 사실로 국가적으로 인정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그치자는 상식적인 주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필자는 안철수 후보의 요청과 달리 죽은 전두환과 살아생전 전두환이 지은 죄를 분리해달란 말은 손쉽게 할 수 없는 말이며, 5·18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주장에도 섣불리 동의할 수가 없다. 그가 저지른 죄는 법으로 씻어주거나 스스로 주워 담기 어려울 수준으로 방대하며, 5·18에 대한 정치 공방은 가해자들이 그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기회주의적 독재자가 대한민국에 지은 죄
육사 11기로 군복을 입은 그는 최초의 '4년제 정규 육사 출신'이라는 자부심으로 노태우를 비롯한 몇몇 엘리트 군인들과 사사로이 군내 사조직을 만들었다. 이들과 함께 전두환은 고작 대위 시절부터 5.16 군사 쿠데타를 옹호하는 정치 데모를 주도하였으며, 일찌감치 박정희의 신임을 얻어 요직에 오르며 정치군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10. 26 사태 이후 김재규와 정승화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발생한 권력의 공백을 틈타, 12.12 군사 쿠데타를 벌여 정권을 찬탈하였다. 서울역 회군 이후 전국적인 동시 시위가 무산되자, 광주는 고립되고 말았다. 그 틈을 탄 전두환의 신군부 정권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려 들고 일어선 고립된 광주시민을 참혹하게 학살하였다.
뿐만 아니라 재임 내내 민주화 운동가들을 용공세력으로 몰아 고문하였고, 사회정화사업이라는 미명 하에 애꿎은 재야 운동가, 노동운동가, 무고한 시민, 지적 장애인들을 삼청교육대에 집어넣어 국가 폭력을 자행하였다. 기업에 뇌물 상납을 요구하며 각종 비리를 일삼았다.
그의 사조직 '하나회'는 6공의 민간 관료들과 치열한 권력다툼을 일으켜 새로운 공화국의 발목을 잡았으며, 김영삼 정부의 대대적인 숙청작업이 있기 전까지 정치군인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했다.
한마디로 그는 기회주의적인 독재자였다. 그가 낳은 정치는 지울 수 없는 원죄처럼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에 심각한 손상을 가했다. 이것이 간추린 역사적 사실이다.
▲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2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2021.11.28 |
ⓒ 연합뉴스 |
전두환씨에 대한 용서를 주장하는 안철수 후보의 주장과 달리, 전두환씨는 그가 내란모의로 몰았던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이미 한번 죄를 뉘우칠 기회를 얻었다. 국민통합의 명목을 얻어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국민적 지탄 대상이 된 이유는 자신의 책임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도리어 광주 민주화 운동을 무장 내란으로 매도하는 적반하장식으로 일관하였으며, 추징금 또한 제대로 내지 않는 등 용서받을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며 통합이 아닌 분열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익히 눈으로 직접 보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전두환씨는 사망하였지만 여전히 광주는 아프다. 그가 책임지지 않고 떠넘긴 정치적 빚 때문이다. 전두환씨의 부인인 이순자씨는 상을 치르며 "남편의 재임 중 고통받고 상처받은 이들을 위해 대신 사과한다"고 말했지만, 금세 그의 측근은 "이순자 여사의 발언이 5·18을 말한 것이 아니다"라며 덧붙이며 여전히 무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동시에 일부 극우 커뮤니티와 그에 호응하는 젊은 사람들은 전두환을 우상화하며, 광주 시민과 유족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데서 자신들의 재미를 발견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두환이 경제발전을 이뤘기 때문에 민주화의 토대를 만들어주었다며 민주헌정을 또다시 쿠데타로 파괴한 그를 무리하게 옹호하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어떤 용서는 정치적 상황과 압력에 의해 떠밀려 법의 이름으로 사면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용서의 문제는 결국에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지 않은 사람이 버젓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명백한 진실을 왜곡하며 자신의 부정을 감추려는 이들에게 면죄부로 작용할 여지만 터주는 것일 뿐이다.
정치적으로 광주를 독점하려는 시도는 없다. 광주를 부정하는 이들이 있을 뿐이다. 5·18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존재하며 모욕을 가하는 상황에서, 그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을 '정치적 이용'으로 바라볼 때, 용서는 쉽게 말해지고 쉽게 의무로 둔갑되는 것이다. 광주의 진실은 양비론이 자리잡기엔 너무나도 명백하다.
전두환에게 분노만 하며 살 수 없다는 말은 결국에 과거를 덮자는 말과 다름없다. 뉘우치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버젓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것은 오히려 그 분노 속에서도 역사적 화해를 위해 자신의 아픔을 속으로 삭였던 광주 사람들의 무수한 노력을 손쉽게 부정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진실에 힘을 실어주지 못할 용서는 그렇게 쉽게 말해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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