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피부 동경하지 마!" 대통령이 대놓고 뜯어말리는 나라
#1. 대학 동기들과 함께 인도네시아 중부에 위치한 프람바난 사원을 찾은 인도네시아인 다이애나(27)는 관광을 위해 사원에 들른 백인들에게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백인을 처음 본 건 아니었지만, 그들의 신체적 특징이 신비해 보였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선 “미스터!”를 외치며 백인에게 사진 촬영 요청하는 일이 낯설지 않다.
#2. 지난 2013년 봉사활동을 위해 베트남을 찾은 한국인 박모(27)씨는 길거리에서 현지 중학생들에게 사진 촬영 요청을 받았다. 염색한 금발과 유독 하얀 피부가 호감을 주는 듯 했다. 이후 유학차 2015년 인도네시아를 찾았을 때도 종종 사진과 사인을 요청하는 현지인에게 둘러싸이는 경험을 했다.
오늘날 지구상에선 인종적 편견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보편적이지만, 내심으로는 백인의 신체적 특성을 동경하는 문화가 종종 목격된다. 특히 인도네시아 등에선 같은 아시아 인종이라도 피부가 더 밝은 톤인 사람을 선호하는 현상을 보인다.
최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이같은 현상을 지적하며 이를 ‘식민지적 사고방식’에 연관시켰다고 21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위도도 대통령은 국민민주당(Nasdem) 창당 10주년 기념식에서 “이미 76년 전에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했지만, 많은 국민은 아직 피부가 하얀 서양인들이 더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 국민이 서양인을 만날 때 마치 중요한 사람을 만난 것처럼 느끼는 현상은 나를 슬프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우리가 열등하다는 사고방식, ‘내륙인 정신’(inlander mentality)을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도네시아가 350년 동안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제는 자신만만하게 대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내륙인(inlander)은 지난 1619년 네덜란드인들이 인도네시아를 식민화할 당시 원주민을 불렀던 말이다. 촌락과 마을에 산다는 의미이지만 이게 일종의 ‘피식민 의식’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앞서 지난 1957년 수카르노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도 “인도네시아가 더 높은 수준을 이룩하기 위해선 내륙인 정신을 벗어나 움직여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인도네시아대 사회학 교수 데비 라마와티는 “여전히 우리 중 많은 수는 피부가 그을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뾰족한 코를 갖고 싶어하며, 피부가 하얀 배우자를 갖는 것에 집착하고 있다”며 “백인스러운 것이 정상적이라는 위험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에선 고급 식당을 입장할 때 현지인에겐 드레스 코드를 요구하지만, 백인일 경우 반바지를 입어도 입장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인도네시아뿐만의 일이 아니다.
21일 미 CNN은 인도 전역에서 많은 여성이 베타메타손 스테로이드 연고를 ‘피부 미백제’로 오용하다 농포·홍조·다모증 등 심각한 피부 트러블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2014년 인도 델리 남서쪽 구루그람 지역에서 한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는데, 가족들은 CNN에 “남편으로부터 피부가 검다고 엄청난 멸시와 학대를 당해왔다”고 털어놨다. 앞서 뉴욕타임스(NYT)도 “일부 인도 가정에선 피부가 검은 며느리에게 경멸적인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피부가 짙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더 자주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고 보도했다.
SCMP는 “아시아에선 어두운 피부와 가난을 연결 짓고, 창백한 피부는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문화적 관념이 뿌리 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13년부터 아시아 지역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해왔던 박모씨도 “인도네시아 외에도 베트남과 몽골 등에서도 피부색에 따른 차별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데비 교수는 SCMP와 인터뷰에서 “대중문화를 통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국의 예시를 통해 당당하게 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앞서 세인트앤드루스대학 영화학과 명예교수 리처드 다이어의 1997년 발표작 『화이트:백인 재현의 정치학』을 번역한 박소정 연구자는 “K-뷰티 등 한류가 미백 중심의 미를 생산하고 있는 것 역시 인종주의적 위험을 내포하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홍범기자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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