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의 시시각각] 윤석열과 '자리 사냥꾼'
윤 후보는 물론 참모 역량 문제 있어
새 인물 더 널리 구하고 고민해야
“우리가 사람들을 배치하고 적절한 자리에 임명하는 사안에 4시간씩 사용하지 않는다면 아마 우리의 실수를 처리하느라 400시간을 소비해야 할 거고, 나에겐 그럴만한 시간이 없다.”
GM의 전설적 최고경영자 알프레드 슬론이 인사 문제에 대해 “우리가 실수를 적게 한다는 건 잘 판단해서가 아니라 신중하기 때문”이라며 한 말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의 최근 선대위 인선을 보며 떠오른 얘기다.
우선 직능총괄본부장에 임명됐다가 며칠 만에 사퇴한 김성태 전 의원의 경우다. 그는 한국노총 사무총장 출신으로 정치적 수완이 좋다. 원내대표로 단식하며 드루킹 특검을 끌어낸 게 그 예다. 반면 딸 특혜채용 논란이란 길고 짙은 ‘그림자’도 있다. 캠프는 처음엔 버티려고 했다. 당연직(중앙위의장)이라 기용됐다고 했고 본부장 회의 뒤엔 “지금 대법원 3심을 다투고 있다”고 했다. ‘끼리끼리’ 의식이었다. 윤희숙 의원의 사퇴로 높아진 '국민의힘에 대한 기대치'도 간과했다.
결국 김 전 의원이 물러나면서 야당은 '비판에 반응한다(responsive)'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본질적 의문은 남았다. 왜 지금 기용하려 했느냐다. 윤 후보가 “(채용 의혹) 사건이 좀 오래돼 잘 기억을 못 했다”고 했던데 윤 후보의 남다른 사람 기억력을 고려하면 난처한 해명이다. 외려 정치적 민감성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간과했을 가능성이 있다. 윤 후보의 정치 이력을 감안하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더한 의문은 지근거리의 참모들은 뭐 했느냐다. 인지하지 못했어도, 인지했는데도 후보에게 알리거나 후보를 설득하지 못했어도 문제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의 정책총괄본부장, 이준석 대표의 홍보미디어총괄본부장 기용도 생각 거리를 던진다. 대선 예비주자인 원 전 지사가 정책을 도맡게 된 데엔 윤 후보의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정책역량은 단기간 배양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론 “원 전 지사 사람들이 정책본부에 많이 들어올 수 있게 됐다”(한 당직자)고 한다. 일종의 근거지다. 이준석 대표에겐 ‘돈’이 걸렸다. 지난 대선 때 국고보조금이 500억 원대였는데 70%가 홍보비로 나갔다고 한다. 이번엔 500억 원대 중반에 80%라고 한다. 이 대표가 400억 원대 집행을 주도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 대표가 윤 후보를 종종 ‘디스’할 만큼 자기 정치 욕구가 강한 데도 말이다.
윤 후보가 알았든 몰랐든 의도했든 안 했든 정치사에서 드문 권한 이양이다. 그런데도 김종인이냐, 김병준이냐, 김성태냐만 부각됐다. 인사는 메시지라고 했는데, 메시지에서 실패한 것이다. 상대 후보는 포장을 너무해서, 윤 후보는 너무 안 해서(못해서) 탈인 격이다. 윤 후보 주변의 역량이 처진다고밖에 볼 수 없다.
실제 윤 후보의 인선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양태는 세 가지다. 개인적 친분(의리) 중시 또는 검증했나 싶을 정도로 무신경, 그리고 정무적 판단 부족(미비)이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과거 이회창 후보가 단기필마로 정계에 입문했다곤 하나 한 명(황우여)은 있었다. 대통령 후보가 된 건 2년 후였다. 몇 달 만에 수직상승한 윤 후보로선 더 외롭고 낯설 것이다. 오랫동안 신임하던 법조계 등 지인들과는 각종 수사로 연락조차 어렵게 됐다. 누군가는 “안테나를 잃었다”고 했다. 이에 비해 여의도 사람들은 신뢰하기도, 능력을 알기도 어렵다. ‘자리 사냥꾼’이 모였다고 비난한 사람들조차 ‘자리 사냥꾼’일 수 있다. 서초갑 조직위원장 자리를 두고 이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가 벌인 이전투구를 보라. 앞뒤 분간조차 어려울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는 피할 수 없는 조건이다. 분명한 건 정치적으로 압축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될 윤 후보에게 지금 ‘편한 사람’이 장차도 편할 사람이냐는 것이다. 더 널리 듣고 구하고 더 깊게 고민해야 한다. 윤 후보마저 ‘헌 사람’ 되는 건 금방이다.
고정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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