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범재의 미래를 묻다] 디지털·현실세계 연결된 통합 메타버스 시대 온다
가상공간의 미래
2018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SF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무대는 2045년. 주인공들은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HMD)와 수트를 착용하고 3차원 가상세계인 오아시스에 접속한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 3개의 미션을 먼저 완수하고 이스터 에그(부활절 달걀·개발자가 숨겨놓은 메시지나 기능)를 찾으면 막대한 운영권과 지분을 상속받게 된다. HMD는 3차원 가상현실을 보여준다. 사용자는 자유자재로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바꿀 수 있는 자신의 아바타로 다른 아바타들과 함께 자동차를 몰고, 춤을 추고, 미지의 지역을 탐험하고, 로봇을 제작해 악당들과 전쟁을 치른다. 수트는 사용자의 동작을 읽어서 아바타가 그대로 따라 움직이게 한다. 가상현실 속의 통증과 감각도 수트를 통해 실제 피부로 느낄 수 있다.
■
「 SF영화, 메타버스 미래 세상 힌트
가상현실서도 감각 느낄 수 있어
10년 뒤엔 가상·현실 구분 어려워져
연구 투자 넘어 법·제도도 구축해야
」
메타버스는 초월·가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이다. 1992년 SF소설에서 처음 등장한 ‘여러 사용자들이 아바타의 모습으로 함께 참여하여 서로 소통, 상호작용하는 3차원 가상공간’은 기술적으로 먼 미래의 세상으로 여겨졌다. 수천만 원대의 착용형 헤드셋은 연구개발 정도로만 제한적으로 사용됐고, 가상세계를 구현할 수 있는 그래픽 하드웨어 역시 일반인들로서는 좀처럼 접근하기 힘든 고가였다. 하지만 2016년, 가상현실용 HMD 제품이 100만~300만 원대에 출시되고 고성능 그래픽카드 가격 역시 대중화되면서 메타버스 산업화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높아졌다. 현재의 HMD 제품은 PC에 연결하지 않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서 가상현실 콘텐트를 실행할 수 있을 만큼 발전했다. 가격도 스마트폰보다 부담이 적은 50만 원대까지 낮아졌다.
이렇게 휴먼 인터페이스 기기와 네트워크 인프라, 그래픽 기술과 콘텐트의 급성장에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변화하는 사회상이 중첩되며 메타버스는 비로소 거대한 잠재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혹자는 최근의 이런 메타버스 열풍이 과거의 싸이월드나 요즘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쇼핑, 커뮤니티 활동과 다른 게 무엇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맞다. 앞으로도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서비스들은 계속해서 유지되고 발전할 것이다.
다만 주목할 점은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등의 SNS, 줌과 구글 미트 같은 화상회의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제공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모임이 어려워지고 재택근무가 보편화해도 만남과 소통이라는 인간의 기본적 필요와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메타버스가 유독 더 큰 관심을 받는 것은 기존의 서비스들로 채울 수 없었던 관계 맺기의 ‘몰입감’이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다. 급격한 기술 발전으로 이제 각자의 공간에서도 다른 이들과 함께 일하고, 회의하고, 쇼핑을 하고,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현실감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3차원 채팅 프로그램에 가상현실 건축 기술을 접목한 ‘다다월드’(1999), 인터넷 기반의 가상세계인 ‘세컨드 라이프’(2003)도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서비스로 초창기 많은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기술적 한계로 콘텐트와 사용자 만족도가 충분하지 못했고 결국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의 기술 수준을 되돌아보면 ADSL 모뎀 통신의 네트워크 속도가 10Mbps 이하였고, 1GHz 싱글코어 CPU가 탑재된 개인용 컴퓨터, 지포스2 칩셋을 사용한 그래픽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1028×768 해상도의 아날로그 CRT 모니터가 일반적이었다. 낮은 컴퓨팅 속도와 그래픽, 네트워크 성능이 가상현실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려웠고 실시간 동시 접속자 수도 제한적이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온다』(2007)라는 저서를 통해 이렇게 예측한 바 있다. ‘2020년대 후반이 되면 가상현실은 진짜 현실과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교해질 것이다. 오감을 충족시킴은 물론 신경학적 방법으로 감정을 자극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30년대가 되면 인간과 기계, 현실과 가상현실, 일과 놀이 사이에는 그야말로 하등의 경계가 없을 것이다.’
어느새 연말 분위기가 느껴지기 시작한 2021년, 그의 예측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세계적인 걸그룹 블랙핑크의 메타버스 팬 사인회에는 전 세계에서 4600만 명의 팬들이 몰려든다. 공연장 최대 수용인원 10만 명의 460배가 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다. 미국 팝가수 아리아나 그란데도 메타버스 콘서트로 관객을 만나고,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인기 게임을 이용한 메타버스 선거 캠페인으로 MZ세대의 표심을 자극했다. 로블록스와 제페토 등의 메타버스 기반 게임 플랫폼에는 하루 평균 4000만 명 이상이 접속해 최대 570만 명이 동시에 게임을 즐긴다. 최근에는 화제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온라인에서 구현한 100여 개의 메타버스 게임방이 전 세계 젊은이들의 핫한 놀이터가 되고 있다.
메타버스 플랫폼의 또 다른 폭발적 인기의 비결은 참가자들이 스스로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게임들이 개발자들이 제공하는 환경 내에서 주어진 미션을 수행해 레벨을 올리며 즐거움을 찾았다면, 메타버스는 사용자들이 직접 새로운 콘텐트를 제작해 실행하거나 가상의 의류와 소품들을 만들고 판매하는 활동이 가능하다. 이렇게 활동하는 게임 개발자가 전 세계적으로 700만 명, 크리에이터는 70만 명이 넘고 이들에게는 수억 달러의 보수가 지급되고 있다. 거래 가능한 게임 아이템이 200만 개가 넘을 만큼 메타버스를 통한 수익창출이 빈번해지며 개인뿐만 아니라 구찌와 나이키 같은 브랜드들도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메타버스를 직업으로 삼는 운영자와 판매자들이 여기서 얻은 이익을 현금화해 사용하는 빈도가 늘면서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경제 동조화 속도 역시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의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메타버스 서비스와 사업화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페이스북이 개발 중인 호라이즌 홈(Horizon Home)은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소통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메타버스 소셜 플랫폼을 목표로 하고 있다. 파티를 열 수도 있고 세계 어디로든 여행도 할 수 있으며 콘서트와 스포츠 경기 같은 라이브 이벤트의 역동성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메쉬(Mesh)’는 혼합현실 헤드셋을 이용하는 홀로그램 기반 원격 협업(Remote Collaboration) 플랫폼이다. 섬세한 3차원 홀로그래픽 아바타를 통해 기존 화상회의에서는 개인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어렵고 정보 공유와 공동 작업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단점을 해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형태의 메타버스 서비스들은, 아바타로 대표되는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연결하는 관문이 될 ‘웹 3.0’을 기반으로, 가상현실-혼합현실 기술을 활용한 거대한 하나의 메타버스로 연결, 통합될 것이다.
헤드셋과 수트만 착용하면 함께 일하고, 공부하고, 여행하고, 병원 상담과 진료까지 가능한 상상의 세계. 이런 메타버스 세상에 단점은 없을까. 앞서 언급했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현실세계가 있다”는 대사와 함께 일주일에 이틀이 ‘오아시스’의 휴식일로 지정되어 있는 모습이 등장한다. 중독성 강한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괴리감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에 대한 구분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면, 나와 상대방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 성적 정체성 혼란 등으로 인한 부도덕한 관계와 일탈, 지나친 집착과 중독으로 정신적으로 불안해지고 실제 인간관계가 왜곡되어 충격을 받거나 죄의식을 느껴 현실생활이 불안정해지는 일들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기업은 어떻게 메타버스 세상을 준비해야 할까. 정부는 메타버스 산업화를 대비해 네트워크·표준화·플랫폼 등의 제반 환경 구축과 함께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 투자를 적극 확대해야 한다. 스마트폰의 대중화에는 애플리케이션과 콘텐트 발전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국산 스마트폰과 네트워크 기술이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정보통신혁명의 세기를 주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메타버스의 시대에도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창의성 높은 콘텐트와 혁신적인 휴먼 인터랙션 장치의 개발 역량이 동반 상승해야 한다. 페이스북과 마이크로소프트가 헤드셋과 인터랙션 기술의 자체 확보에 주력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함께 메타버스 세상의 도래에 한발 앞서 변화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고 문제 발생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인프라 구축에 나서야 할 것이다.
■ ◆유범재
「 서울대 제어계측공학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전기와 전자공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터보테크 기술연구소 연구실장을 거쳐, 1994년부터 KIST에서 근무하고 있다. 인지로봇연구단 단장을 지냈고, 2010년부터 실감교류 인체감응 솔루션연구단 단장을 맡고 있다. 네트워크 기반 인간형 로봇 가사도우미 ‘마루-Z’와 공존현실 4D+ SNS를 개발했다. 과학기술 포장(2016)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
유범재 KIST 실감교류인체감응 솔루션연구단 연구단장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노무현 빼곤 역전 없던 대선 D-100 민심…"이번엔 예측 어렵다"
- "집값 폭등·격무 시달려"…외신이 본 한국 '멍때리기'가 슬픈 이유
- 중앙일보 - 네카라쿠배 성장의 비밀
- 'BTS 곱창' 먹으려 5시간 줄 섰다…LA 발칵 뒤집은 BTS 효과
- "할리우드인 줄"…결별 10년된 김혜수·유해진 뭉친 이유
- 장제원 '장순실''차지철'에 발끈…진중권 "풉, 고소하세요"
- [단독] 내동댕이쳐진 4살… CCTV 본 엄마 가슴 찢어졌다 (영상)
- 수퍼카 17대 보유, 집 없이 모텔 생활…'카푸어 끝판왕' 유튜버
- 비행기 바퀴에 숨은 남자, 영하 50℃ 견디고 기적 생존
- 최고 지휘자 자리 준다는데 "왜요?"…세계 홀린 당돌한 한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