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읽기] 놀라움의 연속 '펑솨이' 미투 사건
아무도 의심하지 않게 부인 있는 집에서 성폭행 가해
중국은 진실 추적보다 "성폭행 사실 아니다" 부인 급급
진실은 펑솨이가 안전 위해 중국 떠나야 밝혀질 것
내년으로 중국과 수교한 지 30년이 되지만 이달 내내 중국과 세계를 놀라게 한 ‘펑솨이(彭帥) 미투 사건’이 중국에서 처리되는 과정을 보면 우리와 중국은 달라도 너무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1986년생으로 올해 35세인 펑솨이는 2013년 윔블던과 2014년 프랑스오픈 여자복식 우승을 차지하며 2014년 세계 여자복식 랭킹 1위에까지 오른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다. 그런 그가 지난 2일 밤 국가 지도자급 인사한테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을 SNS에 올려 세상을 놀라게 했다.
펑솨이는 ‘죽을 각오’를 하고 글을 쓴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일 수도 또는 불에 뛰어들어 죽음을 자초하는 나방이 될지라도” 사실을 말하겠다고 했다. 목숨을 건 자세다. 중국의 유명 인사가 성폭행 당했다는 고백을 한 사실 자체도 놀라운데 가해자의 신분은 세상을 더 놀라게 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 1기 때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서열 7위 상무 부총리 장가오리(張高麗)가 범인으로 지목된 것이다.
장가오리는 1946년생으로 펑솨이보다 40세가 많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사람으로 분류되지만, 시진핑을 권좌에 앉힌 쩡칭훙(曾慶紅)의 소개로 시 주석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푸젠(福建)성진장(晋江)의둥스(東石)진 농촌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다섯 형제 중 하나로 자란 장가오리가 중국 최고 지도부에 입성까지 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엄격한 자기관리’로 알려진다. 선전(深圳)시 당서기, 산둥(山東)성 성장, 톈진(天津)시 당서기 등 승승장구했지만, 형제와 친지 등 친인척을 전혀 챙기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선전시 당서기일 때 셋째 형이 그를 보러 선전까지 왔지만, 너무 바쁘다며 만나지 않은 것은 물론 “앞으로는 자주 오지 말라”는 전화까지 했다고 한다. 2007년 정치국 위원이 돼 중국 내 권력 서열 25위안으로 진입했지만, 고향에 내려와 조상에 제사를 지낸 건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0년이 돼서였다. 친척들은 “해도 너무 한다”고 했지만, 중국 관가에선 미담으로 여겨졌다. 그런 근엄한 모습의 그가 가해자라는데 놀라고 있는데 더 쇼킹한 건 부인 캉제(康潔)가 남편의 일탈 행위 때 문밖에서 ‘망을 봤다’는 점이다.
부인과 함께 집에 있기에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순간을 노린 범행인 것이다. 놀라움은 계속된다. 세상천지 어디에 남편의 불륜 현장에서 망을 봐 주는 부인이 있을까. 이와 비슷한 경우의 여인을 소설에서 본 기억은 있다. 『살아간다는 것』 또는 『허삼관매혈기』 등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중국 작가 위화(余華)가 2005년 발표한 장편 소설 『형제(兄弟)』에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동 철장’으로 불리는 예순 넘은 남자로 그의 부인은 큰 수술을 받아 몸이 좋지 않다. 성욕을 채우지 못하게 되자 동 철장은 심통을 부려댄다. 부인은 남편이 둘째, 셋째 심지어 여덟째 부인까지 얻게 되면 그동안 힘들게 번 돈을 외간 여자에게 다 뺏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마침내 남편을 유곽에 데려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남편이 상대할 여성을 고른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저 소설 속 이야기이거니 했는데 캉제의 경우를 보며 그는 또 어떤 사연이 있길래 그런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펑솨이의 미투 폭로가 나온 뒤 중국의 처리 방법도 놀랍다. 펑솨이의 SNS 계정을 막은 건 물론 연락도 닿지 않게 했다. 자연히 실종설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자 중국은 언론을 이용해 “펑솨이의 성폭행 피해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펑솨이는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등의 보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펑솨이의 폭로가 있은 지 17일 만의 일이다. 중국 당국은 아마도 이 기간 펑솨이를 만나 대략적인 사태 수습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세상의 의심이 가라앉지 않으며 내년 2월로 바짝 다가선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다급해진 중국은 펑솨이의 사진과 동영상 제공에 이어 토마스 바흐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과 펑솨이 간의 영상 통화를 성사시키며 펑솨이가 안전하게 잘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입장에선 화상을 이용한 바흐-펑솨이 통화로 일단 급한 불은 껐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펑솨이가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줬을 뿐 미투 폭로의 진실 여부를 캐는 노력은 전혀 없다는 점이다. 그저 사태 수습에 안간힘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장가오리에 대한 보도도 없고 펑솨이의 성폭행 피해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왜 그런 글이 나오게 됐는지에 대한 추적 역시 이뤄지지 않는다. 사실이 아닐 경우 장가오리가 입게 된 피해는 누가 또 어떻게 보상할 건가. 중국 공산당의 이미지에 먹칠하는 사건이니 그냥 덮자는 일념만이 작동 중인 것으로 보인다. 진실은 펑솨이가 중국을 떠나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지 않는 한 영원히 묻힐 가능성이 크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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