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사태는 선진국 탓..백신 불평등에 변이 쏟아졌다"

박형수 2021. 11. 2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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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새로운 변종인 오미크론의 출현으로 세계가 다시 코로나19 공포에 사로잡혔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새로운 변종인 오미크론(Omicron)이 세계를 다시 코로나19 공포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강력한 변이 출현이 ‘백신 사재기’를 지속해온 선진국의 자업자득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백신 쏠림이 변종 출현의 토대”


2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오미크론의 출현은 코로나19 발병 초기부터 지금까지 지속된 백신의 불평등한 보급에 대한 경고”라면서 “백신 쏠림이 바이러스의 진화와 확산 토대를 마련해줬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가 ‘위험한 사이클’로 들어서고 있다”며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 가난한 나라에서 출현한 새로운 변종 때문에 부유한 나라가 부스터샷(추가 접종)을 위해 더 많은 백신 확보에 나서면서 백신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미크론은 지난 11일 보츠와나에서 최초 발견된 뒤, 26일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델타 변이와 동급인 ‘우려 변이’로 지정됐다. 프랑수아 발루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유전학연구소 교수는 오미크론을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등으로 면역 체계가 약해진 만성 질환자의 몸 안에서 ‘폭발적 변이’를 일으킨 결과물”로 보고 있다. 면역력이 약한 환자가 백신을 맞지 않은 상태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됐고, 코로나19가 이 환자의 몸 안에서 자유롭게 변이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원 교수를 지낸 에릭 딩 미국과학자연맹(FAS) 선임 펠로우는 27일 자신의 트위터에 “새 변이(오미크론)가 (델타보다) 5배 더 감염률이 높을 가능성이 있다”는 글을 게재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한 여성이 화이자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오미크론의 출현은 선진국이 그동안 백신 제공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탓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6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주요 7개국(G7)이 공동으로 잉여 백신을 제공해 ‘전 세계 집단 면역’을 이루겠다고 약속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월 “12월까지 최빈국 92개국의 백신 접종률이 40%에 도달할 수 있도록 백신을 제공하겠다”고 말했지만 모두 지키지 않았다. 생명과학 데이터분석회사 에어피니티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25일까지 기증하기로 약속한 백신의 25%만 제공했다. 유럽연합(EU)은 19%, 영국은 11%, 캐나다는 5%만을 제공하는 데 그쳤다. 이에 대해 가디언은 “창피한 수치”라고 표현했다.


부유한 20개국이 백신 89% 독점


뉴욕타임스(NYT) 역시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관료의 말을 인용해 “서방의 백신 비축이 오미크론 사태를 불러왔다”면서 “전 세계인에 대한 백신 접종 노력이 실패한 결과 이번 변이가 등장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제약사에서 생산되는 백신 총량의 89%를 주요 20개국이 독점해왔다. 현재 생산 중인 백신의 71%도 이들 나라와 이미 계약돼있다. 가디언은 “부유한 20개 국가가 백신의 대다수를 독점해 자국에 쌓아두는 바람에 WHO 등이 주도하는 백신 공동 구매·배분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는 빈곤국에 제공할 백신 20억 개 중 겨우 3분의 1만 확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일 5~11세용 코로나 백신 접종 승인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신 보급 불평등은 접종 양극화로 이어졌다.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아프리카 대륙의 백신 접종 완료율은 7.15%에 불과하지만, 소득 수준 중상위 이상의 국가의 백신접종률은 60%를 넘어선다. WSJ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이지리아는 2억600만 인구 중 단 1.7%만 백신 접종을 완료했고, 내전을 겪고 있는 에티오피아의 백신 접종완료율은 1.2%”라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은 전 국민의 59.1%가 백신을 완전 접종했고 11.3%가 부스터샷까지 맞았다. 영국(접종 완료율 69.2%)은 20%, EU 27개국(68.4%)은 6.9%가 부스터샷을 맞았다. WHO는 “매일 가장 빈곤한 국가에서 이뤄지는 백신 최초 접종량보다 부유한 국가의 부스터샷이 6배 더 많다”고 비판했다.

“백신 불평등 지속되면 인류는 변종에 끝없이 쫓길 것”


현재 오미크론 확진 사례는 남아공과 보츠나와 등 아프리카 국가, 영국과 독일·이탈리아·벨기에·체코·덴마크 등 유럽 국가, 홍콩 등 아시아 국가에서 확인됐다. 미국 뉴욕주는 오미크론 확산 가능성에 대비해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이스라엘은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오미크론이 처음 보고된 남아공을 포함해 보츠나와·짐바브웨 등 아프리카 8개국에 대한 여행 경보를 가장 높은 4단계로 올렸다.

이에 대해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백신 지원에 실패한 결과, 전 세계인이 더 치명적인 코로나 변종의 위험에 노출됐다”며 “오미크론의 등장은 전 세계에 평등한 백신 공급이 왜 긴급한 문제인지를 상기시켜주는 계기”라고 말했다. 하버드 공공의료보건대학원의 면역학 교수인 키즈메키아 코르벳은 “하나의 변이가 감지될 때, 다른 변이가 이미 우리의 레이더 망 밖에서 순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지구의 어느 한 곳이라도 백신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는 불평등한 상황이 지속되면 우리는 끝없이 변종에 쫓겨다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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