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르던 고양이가 총 맞아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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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봉 기자]
"꽝!"
바로 앞 개울 건너 길모퉁이에서 귀청을 찢어놓을 듯 총소리가 났다. 여음이 온 산골마을을 뒤흔들었다.
"이게 어디서 난 소리야?"
카페에서 일하던 아들이 놀라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카페 건너편 길모퉁이를 돌아 낯선 트럭 한 대가 천천히 이동하는 게 보였다. 사냥꾼인 듯했다. 오후 세 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저녁나절이 되자 총소리가 났던 밭두렁 근처엔 까막까치가 떼로 날아들었다.
몸에 총알이 관통
또랑이는 아침이 되어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 녀석이 추운데 또 어디서 한뎃잠을 잤어?"
아들은 밥그릇에 한가득 사료를 부어놓고 발돋움을 하며 울타리 너머 빈 밭을 휙 둘러보고 있었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또랑이는 보름이 카페에서 사는 고양이다. 지지난 해 젖을 뗐을까 말까 한 어린 길냥이를 데려와 보살폈다. 주로 카페 안에서 지내는데 가끔씩 바깥나들이를 하기도 한다. 개울 건너 내가 농사짓는 밭에서 반갑게 만나기도 한다. 녀석의 행동반경은 꽤 넓어서 멀리 점돌이 형 농막에서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한번 나가면 하룻밤 자고 오기도 한다.
"아버지. 밭에 또랑이 안 보이던가요?"
"왜. 또 나갔어? 안 보이던데."
"자식이 이리 추운데 어딜 나간 거야."
내가 마늘과 양파 모종 심은 밭을 살펴보고 올 때까지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아들이었다.
바람이 어지럽게 불었다. 눈발이 날리다 햇살이 났다 다시 눈발이 날리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였다. 이웃집 사랑방에 모여 민화투를 치다 집으로 돌아가는 어둑어둑한 시각이었다. 멀리 개울 건너 어지러이 눈발이 날리는 밭에서 아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거기서 뭐해?"
크게 고함을 쳤다. 아들이 뭐라 답을 하는데 심한 바람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들이 있는 밭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고욤나무가 있는 길모퉁이에서 돌아오는 아들을 만났다.
"또랑이가 죽었어. 저기 밭두렁 아래 묻었어."
▲ 불법사냥꾼에 희생된 또랑이 |
ⓒ 김석봉 |
굳은 표정의 아들이 또랑이 묻힌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 또랑이가 왜?"
"어제 그 총소리 있잖아. 총에 맞은 거 같아."
"어쩌다가 총에 맞아. 어디서."
"저기 밭두렁에 그대로 주저앉은 채 죽어 있는데 몸에 총알이 관통했더라고"
발을 동동거리는 아들을 바라보니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자꾸 출몰하는 불법 사냥꾼
"꽝!"
지난해 이맘때였다. 아랫집 사랑방에 이웃과 함께 모여 노는데 총소리가 커다랗게 들렸다. 마치 담 밖에서 쏘는 듯했다.
나는 헐레벌떡 밖으로 나와 담 밖을 내다보았다. 개울 건너에 트럭이 서 있고, 누군가가 내려 덤불 속으로 걸어들어가더니 무언가를 손에 들고 나왔다. 꿩인 듯했다. 집에서 백 미터 될까 말까한 거리였다.
그런 광경을 보자 속이 다 상했다. 파출소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관은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더니 현장으로 나오겠다고 했다. 꿩을 실은 트럭은 천천히 마을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마을과 이리 가까운 곳에서 총질을 해도 되는 겁니까."
한참을 기다린 끝에 도착한 경찰관에게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내질렀다.
"거 참. 총기 반출을 할 때마다 주의를 주는데 어느 놈이 이러나? 강력하게 주의를 줄 테니 앞으로는 이런 일이 안 생길 겁니다."
"주의를 줘서 되나요. 법을 어겼으면 처벌을 해야지."
"이게 뭐 처벌 대상도 아니고. 조사를 해 봐서 주의 주고 알려드릴게요."
경찰관은 그런 말을 남기고 돌아가 버렸다.
"꽝! 꽝! 꽝!"
몇 년 전이었다. 저녁밥을 먹고 어둠이 짙어진 뒤 밖으로 나왔는데 건너편 언덕바지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추수가 끝나 군청에서 운영하는 유해조수포획단도 해체되었을 거고, 우리 마을이 수렵허가구역도 아니어서 야간에 총소리가 날 일이 없었다. 게다가 일몰 이후엔 총기를 반납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분명 불법 사냥꾼이었을 거였다.
파출소에 전화를 걸었다.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던 경찰관은 곧 현장으로 오겠다고 했다. '불법 사냥꾼 잘못 건드렸다간 총 맞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던 나는 어두운 길목에서 홀로 기다리기가 두려웠다. 집으로 들어와 마당에서 울타리 너머로 사냥꾼의 불빛을 살피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냥꾼은 서치라이트를 끄고 급히 마을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건너편 언덕바지는 다시 어둠과 정적만 남았다. 그때였다. 마을 입구 쪽에서 경광등을 요란하게 번쩍이며 경찰차가 마을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전화한 게 언젠데 이제 오면 어떡합니까."
유유히 사라진 사냥꾼을 생각하니 억울해서 볼멘소리를 냈다. 늦게 도착한 경찰관이 밉고 한심해서 분하기까지 했다. 경찰관이 돌아가고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 자리에서 야생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그때 앞에 앉은 지인이 우스갯소리로 하던 말이 생각났다. '경찰관과 사냥꾼은 밤이면 고라니 고기 구워 함께 먹는다.' 내가 신고를 하기 무섭게 사냥을 즐기던 사냥꾼은 황급히 마을을 빠져나가고, 경찰관은 늑장으로 출동해 하나마나한 소리나 늘어놓고.
"사격연습을 한 거네"
"이거 이대로 덮어둘 일은 아니지. 또랑이 죽은 자리가 어디야?"
내 단호한 목소리에 아들은 눈을 번쩍 떴다. 일이 커지고 복잡해지는 것을 싫어하는 아들이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그래. 그렇다고 집과 이리 가까운 곳에서 총질을 해?"
아들이 앞장서고 밭두렁을 따라가니 피가 흥건히 고인 자리가 있었다. 밭두렁 끝 양지바른 자리였다. 또랑이는 마른 검불에 엎드려 졸았을 거였다.
"봐라. 저쪽 밭 입구 쪽 길에 차를 세워두고 쏜 거야. 그렇겠지? 이 앞은 밭두렁이 높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거든. 그러니까 저쪽에서 쏜 거지."
"그러면 총구가 저기로 향했다는 건데 우리 또랑이 맞지 않았으면 카페로 총알이 날아들었겠네."
"그렇지. 마을방향으로 총을 쏜 거야."
"그러면 왜 고양이에게 총을 쐈을까?"
"또랑이가 삼색이잖아. 알록달록하니 이게 오소리나 너구리쯤으로 여겼을 수도 있어. 또랑이 몸집이 워낙 크잖아."
아들과 나는 어느새 수사관이 되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밭 입구에서 여기까지 이십 미터밖에 안 되는데 그걸 구별하지 못했을까?"
"그러네. 너무 가깝네. 그러면 고양인 줄 알면서 총질을 했다는 얘긴데."
나는 밭으로 들어온 또 다른 발자국이 있나 살펴보았다. 밭 입구 쪽 길에서 밭으로 들어와 밭이랑이나 밭두렁을 따라 난 발자국은 찾을 수 없었다. 총을 쏘고 밭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는 셈이다. 오소리로 오인했다면 밭으로 들어와 확인했을 것이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여서 발자국이 또렷이 남을 거였다.
"야. 이것 봐라. 이 놈이 아주 사격연습을 한 거네. 사격연습을 한 거야."
"우리 또랑이를 앞에 놓고 사격연습을 한 거라고?"
"그놈이 고양인 줄 뻔히 알면서 쏜 거야. 그러니까 사냥감을 확인도 하지 않았지."
▲ 우리집 마당에서 마당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길냥이들 |
ⓒ 김석봉 |
경찰관이 도착했다. 아들은 그간의 정황을 길게 설명했고, 찍어두었던 또랑이 주검 사진을 경찰관에게 제출했다. 지금이라도 묻은 또랑이를 꺼내 오라면 꺼내 오겠다고 했다.
경찰관은 그럴 필요는 없다면서 내 주소와 생년월일만 수첩에 적었다. 고작 물어본다는 것이 '공기총이었느냐 엽총이었느냐'는 질문이었고,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 '몸을 관통했으니 엽총 아니었겠느냐'고 답변해 준 것이 대화의 전부였다.
"총기 관리를 파출소에서 하니까 총기 소지자 인적사항은 가지고 있을 게고, 마을 입구 방범용 시시티브이(CCTV)가 있으니 그것만 확인하면 그 시간대에 드나든 차량정보를 알 수 있으니 그것으로 상황 끝이네요."
내가 친절하게 그 사냥꾼 잡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조사 잘하셔서 법을 어겼으면 처벌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행정처분이라도 해서 이런 놈에게 더 이상 총을 맡기지 마세요."
아들은 친절하게 처리방법을 알려주었다.
경찰관은 긴가민가하는 표정을 남기고 현장을 떠났다. 경찰관은 알고 있을까.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2조 ②항 누구든지 수렵장 외의 장소에서 수렵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69조 ①항 12호 제42조②항을 위반하여 수렵장 외의 장소에서 수렵한 사람에게는 2년 이하의 징역,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것을.
"잘 될까?"
"잘 되면 위대한 대한민국이지."
"그렇겠지?"
"식용견이 따로 있다는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는 나라잖아."
번쩍번쩍 경광등을 뽐내며 경찰차가 마을 입구를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아들과 나는 쓴 입맛을 다시며 밭을 빠져나왔다. 천박한 생명관이 지배한 나라에서 이 사건이 올바르게 처리되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직감하고 있었다. 또랑이 총 맞은 곳에서 카페까지는 정확히 백이십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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