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뷰] "CEO 평가, 회장이 안한다" 계열사 인사 거리둔 SK 회장
최태원 SK 회장 "이사회 역할 강화..독립적 결정해야"
회장·총수 의중 반영하는 국내 실정과 대비
최재원 부회장 경영복귀 계열사도 관심↑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조직을 쉽게 장악하기 위해서는 돈줄과 목줄을 잡고 있어야 한다. 한정된 재원을 어느 곳에 쓸지, 누군가를 어떤 자리에 앉힐지 권한을 갖고 있는 게 조직운영에서 중요하다는 얘기다. 신입 사무관의 선호도는 예전만 못하다고는 하나 중앙 행정부처를 기준으로 기획재정부나 행정안전부의 위세를 높게 쳐주는 것도 그래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올 들어 부쩍 강조하고 있는 이사회 중심의 회사 경영은 다소 생경한 인상을 준다. SK는 당장 올해부터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후보를 추천하는 것을 비롯해 연말 평가·보상을 각 이사회에서 하도록 했다. 최 회장이 찬성한 해외 투자 안건이 다른 이사진 반대로 이사회에서 통과하지 못한 일도 있었다.
우리 사회는 회장을 정점으로 한 지배구조가 곧 의사결정구조와 같다는 걸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왔던 터라, SK의 이러한 움직임이 익숙지 않은 게 현실이다. 최근 계열사 CEO 인사를 냈던 한 재벌 대기업에서는 보도자료 중간에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점을 명시하기도 했다.
최 회장 본인도 한 회사의 최고의사결정기구로서 이사회를 내세우는 게 통념상 낯설다는 점을 알고 있다. 최근 열렸던 지배구조 워크숍에서 최 회장은 "상법상 이사회가 갖는 권한과 현재 국내 기업의 현실을 보면 갭(차이)이 있다"며 "그간 묵인하고 간과했던 갭을 해소하지 않고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사회 안건 99.8%가 통과하고 ‘거수기’ ‘마네킹 이사회’ 지적을 받는다면 글로벌 투자자의 투자를 꺼리게 만들 것"이라며 "이사회의 역할을 강화하고 각 계열사마다 의사결정 구조도 훨씬 더 독립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말 인사철을 맞아 주요 그룹사 인사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SK의 인사에 관심이 몰리는 건 이런 배경때문이다. 회장 스스로 계열사 인사에 거리를 두겠다고 공언한 만큼, 회사 안팎에선 곧 나올 인사결과를 두고 최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겠느냐고 짐작하는 이유다.
최재원 부회장 계열사 경영 맡을까
그룹 내 재무·기획·글로벌 업무능력 인정
SK 후계구도와 맞물려 재계 관심↑
SK 인사의 또 다른 관전포인트는 최 회장의 동생 최재원 수석부회장의 경영복귀가 반영될는지다. 앞서 2016년 가석방으로 출소한 뒤 5년이 지나 본격적인 경영참여가 가능해졌다. 최 수석부회장은 그룹 지주사인 SK㈜와 SK E&S 미등기이사로 이름이 올라가 있다. SK그룹의 모태격인 SK네트웍스에서는 9월 말께 미등기이사에서도 물러났다.
최 수석부회장은 학창시절 물리학·재료공학을 공부한 뒤 입사하고나서 MBA를 거치며 파이낸싱을 집중해 판 것으로 알려져 있다. SK가 90년대 후반 통신사업을 키워내 안착시키는 과정에서 주식교환·외자유치 등 당시로선 흔치 않은 방식이 눈길을 끌었는데 당시 최 수석부회장이 진두지휘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SK그룹 차원에서 힘을 싣는 자동차 배터리도 그의 관심분야다. 미국 내 첫 전기차배터리 생산거점인 조지아공장을 짓는 과정이나 완성차업계와의 협의 때도 물밑에서 적극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나이로 예순이 가까워진 최 수석부회장의 경영복귀는 SK그룹의 후계구도와도 맞물린다. SK의 지배구조는 투자사업을 겸하는 지주사 SK㈜와 그 아래 여러 중간지주사를 갖춘 형태다. SK㈜의 최대주주가 최태원 회장이며 개인기준으로는 최 회장의 동생인 최기원 이사장, 최 수석부회장이 그 다음으로 지분이 많다. SK는 1998년 선대 최종현 회장이 타계하면서 최태원·재원 형제와 사촌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오너가와 전문경영인의 공동경영으로 회사를 이끌어왔다.
최창원 부회장이 이끄는 SK디스커버리는 SK케미칼·SK가스 등 일부 계열사를 둔 중간지주사 형태지만 SK㈜와는 지분관계가 없어 계열분리가 가능한 형태다. 이번에 최 수석부회장이 복귀하는 계열사가 앞으로 SK 지배구조 향방을 가늠할 단초로 볼 수 있는 배경이다.
다만 오너 일가나 경영능력이 있다고해도 특정 계열사를 점찍어 위에서 CEO를 임명하는 구도를 만들지 않겠다고 최태원 회장이 공언한 터라, 실제 최 수석부회장이 계열사 경영을 맡기 위해서는 계열사 이사회 차원에서 최 수석부회장을 추천해 데려가는 모양새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최 수석부회장이 미등기이사로 있는 SK E&S는 최근 사외이사를 한명 충원했다.
이밖에 주요 계열사 의사결정을 돕는 수펙스추구협의회 인선도 관심이다. 수펙스협의회는 주요 계열사 CEO와 간부 위주로 구성돼 있는데 SK 안팎에선 수펙스 의장을 그룹 2인자로 꼽는다. 조대식 의장이 처음으로 3연임을 성공한 데다 계열사 전반에 걸쳐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시 갖추고 있어 한번 더 자리를 맡을 것으로 내다보는 이가 많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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