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규칙의 유효기간
K는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이다. 게임에 빠져 부모를 감쪽같이 속이고, 학원을 빠지고 PC방에 다니다가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의 지갑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빵과 담배를 훔치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부모는 매우 정직하고 바르게 키우고 가르치려고 노력했는데 이럴 수 있나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부모는 K가 어릴 때부터 텔레비전은 아예 없앴고, 컴퓨터 게임도 할 수 없도록 교육하였다. 초콜릿이나 사탕, 과자나 인스턴트 음식 등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은 입에도 댈 수 없게 가르쳤다. 유아기에는 어느 정도 이를 지켜왔다. 하지만 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친구들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 텔레비전에는 너무도 재미있는 것이 넘쳐나고, 컴퓨터 게임의 세계는 너무나 환상적이고, 초콜릿이나 사탕의 맛도 너무 달콤하다는 것을.
하지만 부모는 ‘일관성’을 갖는다며 여전히 이 모든 것을 금지하였다. 아이도 잘 따라 준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성장하는 K는 거짓말을 해 교묘히 부모님을 속일 수 있는 법을 터득하여, 부모님이 정해 놓은 한계나 금지의 구역을 넘나들었다. 금단의 구역에는 너무나 유혹적이었지만 K는 그 유혹을 스스로 경계하거나 한계를 지킬 힘을 키우지 못한 상태에서 무절제하게 빠져들었다.
K의 이런 변화를 부모가 조금만 더 일찍 알아차렸어야 했다. 하지만 부모는 아이와 대화를 해보려 하지 않고 일방적인 자신들이 정한 규칙을 ‘일관성 있게’ 고수하였다. 아이의 거짓말과 변명의 기술도 갈수록 늘어났다. 부모는 아이의 ‘천연덕스럽고, 능숙한 거짓말’에 경악하며 분노했다. 부모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느껴져 아이와 힘의 우위를 따지는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아이의 마음에는 아예 문을 닫아버리고, 점점 권위적으로 되어갔다.
아이들에게 한계와 규칙이 주어지는 것은 아이의 몸에 잘 맞는 옷을 입혀주는 것과 같다. 어떤 시기에는 잘 맞는 옷이라고 하더라고 아이가 성장하면 같은 옷을 계속 입게 할 수는 없다. 두세 살 유아에게 칼이나 가위는 만지면 안 되는 것이지만 다섯 살 정도가 되면 가위를 쓰는 법, 칼을 다루는 법을 익히고 스스로 그것을 사용하게 하는 것처럼 연령에 따라서 아이들의 자율성의 범위는 조금씩 확대되어야 한다.
부모가 정한 한계를 넘어가면 언제나 안전하지 못하다는 전제를 가지고 아이를 통제할 때, 아이는 가위를 다루는 법을 익히지 못한 채 가위를 사용하고, 수영을 배우지 못한 채 바다에 뛰어든다. 이는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규칙에는 유효기간이 있는 것과 유효기간이 없이 끝가지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약자를 보호해야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한다’는 것은 유효기간이 없는 규칙이지만 대부분의 규칙은 아이의 성장에 따라 새롭게 수정되고 보완되어야 한다. 아이에게 정해준 규칙이라는 울타리는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치워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인데, 그 울타리가 아이가 그것 없이도 안전감을 느끼고 잘 지낼 수 있는 나이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면 아이는 그 울타리를 부수고 탈출을 시도할 수 있다. 위험한 일탈을 감행하는 거다.
어느 정도 아이의 자발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여유 있게 쳐진 울타리는 아이를 보호하지만 지나치게 좁게 쳐진 울타리는 감옥이고 성장을 옥죄는 굴레가 되어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해 볼 기회를 차단한다. 한계를 넘어가는 행동에 의한 결과를 스스로 체험해 볼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 받는다면, 아이의 성장은 멈추어버리거나, 궤도를 이탈해 버린다.
한계를 넘는 소소한 일탈 행동의 결과를 몸으로 경험한 아이들은 자율성의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행동을 스스로 통제하지만, 그런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한 아이들은 외부적인 감시와 통제가 없는 상황에서는 자신을 조절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새로운 행동만을 골라서 하게 되고, 이른바 ‘비행’의 악순환에 빠진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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