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상가 물려주고 싶은데..'불효자 먹튀' 막는 방법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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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SOS]
최근 2년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노후 대비를 위해 사둔 상가가 50억원이 넘자, A씨(64)는 고민에 빠졌다.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아들(34)에게 증여하고 싶지만, 상가에서 나오는 임대 수입 외에는 다른 소득이 없어서다. A씨는 “세금 부담 등으로 증여를 하고 싶은데, 아들이 상가만 받고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않을까란 걱정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가치가 급등하면서 ‘증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증여재산가액은 43조6134억원으로 2019년(28조2500억원)보다 54.4% 늘었다. 이 중 주택·아파트·상가 등을 포함한 ‘건물’의 증여재산가액(19조8696억원)은 1년 전(8조1413억)보다 144% 급증했다. 높은 양도세를 부담하고 남에게 파느니 차라리 증여세를 내고 자녀에게 물려주겠다는 다주택자가 늘어난 영향이다.
불효자 먹튀 걱정…증여 신탁 관심 늘어
증여하려고 마음을 먹어도 결정은 쉽지 않다. A씨처럼 이른바 ‘불효자 먹튀’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자녀가 재산을 받은 뒤 부모 봉양 등의 의무를 저버릴 경우 재산을 되찾기가 매우 어려워서다.
이런 걱정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가 ‘증여 신탁’이다. 신탁이란 금전이나 유가증권, 부동산 등 재산의 소유자가 어떤 이유로 그 재산을 운용할 수 없을 때 신뢰할 수 있는 개인에게 그 재산의 관리 또는 처분을 맡기는 제도다.
증여 신탁은 일반적으로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대신 자녀(위탁자)와 금융회사(수탁자) 간 신탁 계약을 체결하도록 조건을 건 조건부 증여다. 자녀가 재산을 받은 후 효도 등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신탁계약 체결 및 유지를 어기면 부모가 계약을 해지하는 식이다.
“1년에 6번 가족식사” 등 ‘효도 설계’ 가능
자녀에게 부여하는 계약 조건은 다양하게 설계할 수 있다. ▶생활비를 매월, 얼마씩 지급할 것 ▶부모님 댁을 1년에 몇회 이상 방문할 것 ▶치매 등 치명적인 질병 진단 시 최고급 요양원 입소 ▶건물의 소유권을 주지만, 부모가 사망할 때까지는 건물 임대료의 일부를 지급할 것 등 설계하기 나름이다.
‘증여 재산의 처분이나 담보 설정 시 부모 동의가 필요하다’는 조건을 넣어 부모가 재산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권을 가질 수도 있다. 신탁 계약서 내에 '조건부 증여 해제 시 신탁 계약 해지 후 증여자에게 소유권을 이전시킨다'는 특약을 넣으면 자식이 부모(증여자)에게 제대로 효도를 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소유권을 되찾아 올 수도 있다.
A씨도 신탁을 통해 아들에게 상가를 증여하면서 증여계약 내용에 신탁계약의 체결 및 유지조건 넣었다. 아들이 상가를 처분하거나 담보를 설정하려면 계약을 맺은 증권사가 A씨의 동의 여부를 확인한 뒤 동의해야만 처분 및 담보 설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소득이 없는 A씨의 노후를 위해 매달 상가 임대료 중 일부(300만원)를 지급하는 의무도 부여했다.
오영표 신영증권 패밀리헤리티지본부장은 “최근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상승해 증여 계획을 미리 세워놓고자 하는 인식이 퍼졌다”며 “올해 초부터 지난 10월까지 증여 신탁 계약 규모가 지난해 전체 기간보다 4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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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계약서’와 차이점은?
신탁까지 하지 않더라도 증여 이후 자식들의 '변심'으로 힘든 노후를 보내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다 보니 '효도계약서'를 쓰는 경우도 늘었다. 부모와 자식 간 효도 계약을 맺고 이를 어기면 재산을 반환하는 것이다.
다만 효도계약서를 두루뭉술하게 작성하면 해석상 법률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주 1회 부모님 댁 방문을 조건으로 계약했고, 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언제 집에 오지 않았는지 등의 증거를 통해 입증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다.
법무법인 소백의 최원재 변호사는 “효도계약서와 증여 신탁은 효도 의무 이행을 조건으로 하는 부담부증여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면서도 “효도계약서는 소유권이 완전히 자녀에게 넘어가 이를 해제하려면 증여 무효확인 소송 등 별도의 민사소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증여받은 사람이 증여한 사람에게 범죄행위를 하거나 부양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증여를 해제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증여를 해제하려면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때로부터 6개월 안에 해야 하고, 해제하더라도 이미 증여한 재산은 소급 적용을 받지 않아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
증여는 ‘부자’만의 문제?…표준형 신탁도 있어
신탁 상품은 보통 계약할 때 기본 보수를 1회 지급한 뒤 매년 운용 보수를 낸다. 맡긴 자산의 종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첫 계약 시 1000만원을 낸 뒤 매년 자산관리 수수료로 100만~300만 원을 내는 식이다. 신탁의 조건을 세세하게 설계할 수 있는 ‘맞춤형’ 증여 신탁은 재산의 0.5%를 수수료로 내기도 한다.
이처럼 높은 비용 때문에 신탁을 통한 증여를 부자만의 전유물로 여겼지만 비교적 저렴한 ‘표준형 신탁’ 상품을 이용할 수도 있다. 맞춤 설계한 계약서가 아닌 표준화한 고객 수요만 보장하는 상품이다. 예를 들어 ‘치매에 걸릴 경우 병원비를 지급할 것’ 등과 같이 특정한 상황만 보장하는 것이다.
원종훈 KB국민은행 WM투자자문부장은“표준형 신탁 가운데 재산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월 1만 원대 상품도 있다”고 설명했다. 장애가 있는 자녀에게 증여 신탁을 통해 증여할 경우 세금 공제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원 부장은 “장애가 있는 자녀를 대상으로 한 신탁을 자녀 사망 시까지 맺을 경우 5억 원까지 증여세 비과세 혜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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