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불씨를 당겨 강력한 빛을 내뿜는 자이언티와 슬롬 #쇼미더머니10

이경진 2021. 11. 2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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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머니10> 에서 두 남자가 수높은 위대한 밤.
블랙 재킷과 점프수트는 모두 Bourie. 레이스가 달린 셔츠는 Nana. 블랙 슈즈는 Sonshinbal. 선글라스는 Port Tanger. 이어링은 아티스트 소장품.

ZION.T

Q : 어제 저녁에는 부산에서 공연이 있었죠. 오늘 서울에서 한 화보 촬영은 새벽 1시 넘어 끝났고요. 요즘 잠은 좀 자고 있나요

A : 그래도 어제는 공연 마치고 좀 잤어요. 눕는 게 진짜 행복하다는 걸 부쩍 느끼고 있어요(웃음). 적게 자고 많이 일하며 살고 있지만 나름 잘 지내요. 함께 뭐든 하고 싶었던 친구와 방송도 하고, 이 친구가 인정받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하거든요.

Q : 슬롬 말이죠. 개인 유튜브 채널 ‘솔의눈’을 보면 슬롬과 영혼을 공유하는 사이 같아요

A : 너무 잘 맞는 사람이고요, 저는 확신이 있었어요. 프로듀서라는 ‘플레이어’에 대한 대중의 수요가 많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아는 한 김민우(슬롬)처럼 바르고 책임감 강하고 검소하고 멋있는 사람은 없어요. 이렇게 담백한 사람이 유명해지면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죠. 이 친구는 꼭 알려져야 한다는 마음이 컸는데 조금씩 실현되고 있는 것 같아 기대되고 잘해줬으면 하는 욕심도 있어요.

Q : 음악적으로는 그의 어떤 면을 좋아하나요

A : 자신의 길 안에서 자유분방하고 확실한 테이스트가 있는 작곡가예요. 자기다우면서도 예쁜 것을 잘 찾아내죠.

Q : 자이언티가 ENTP, 슬롬이 INTJ. MBTI 성격 유형 검사 결과로도 최적의 합을 이루는 두 사람이 만난 팀 ‘티슬라’의 매력은

A : 깊은 물웅덩이 같은 팀이에요. 바다도 아니고 강도 아니고 작은 호수 같은. 날씨가 안 좋은 적이 없는 잔잔한 생태계죠. 잘 맞는 사람끼리 뭉쳐서 매일 함께 고민하고 건전하게 일하면서 사는데, 이런 분위기가 알려지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해요.

Q : 슬롬에게 ‘자이언티가 음악으로 낳은 아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죠

A : 민우가 대학원에 진학해 학업을 이어가려는 걸 제가 음악 하라고 설득했거든요. 결정이 어려웠을 거예요. 좋은 대학 나와서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인데, 불확실한 세계에 발을 들이라 했으니….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이 친구는 음악을 너무 사랑하니까. “회사에 입사해서 사무직이 되기엔 넌 음악을 너무 잘하고 사랑해.” “너는 아티스트야. 창작자의 삶을 살아야 해.” 이런 말을 했고 민우도 “그건 맞아”라며 부모님을 설득했어요.

Q : ‘솔의눈’에서 본 〈쇼미10〉 첫 방송 대기실 풍경도 재미있었어요. 슬롬은 긴장을 숨기지 못했고 자이언티는 시종일관 여유로워 보였죠

A : 저는 편한 사람과 방송에 나왔기 때문에 유독 편안한 모습으로 촬영에 임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저도 꽤 많이 긴장하고 카메라 앞에서 굳는 사람이에요. 지금도 울렁증이 있어요. 뻣뻣해져요. ‘이렇게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올라가도 다 무너져버리는 편이라 카메라 앞에 선 다음에는 항상 후회해요. 출연한 방송의 대부분을 다시 보지 못하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친구랑 함께하니 서로 놀리고 웃고 떠들면서 모니터하고 있어요.

Q : 음원 미션에서 탈락한 에이체스의 서사에선 이 쇼의 영향력이 느껴져요. 〈쇼미〉에 열 번 도전한 사람이잖아요. 음악에 간절한 사람들의 사연과 재능을 가까이에서 목격하고 프로듀싱하는 일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A : 간절함이라는 감정이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무엇을 좇는 간절함인가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이거든요. 과연 나는 어떤 면에서 간절한지도 생각하고요. 에이체스처럼 자신의 삶과 행동으로 절실함을 증명한 사람에게 무대를 마련해 주는 일이 이 시즌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절실하지만 에너지가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가차없이 물을 수 있어야 해요. 음악을 하려는 이유가 뭐냐, 무엇을 좇느냐.

Q : 그런 질문은 어쩐지 자신에게도 자주 던질 것 같은데요. 본인은 어떤가요

A : 서른 살이 되던 날 첫 일출을 하와이 바닷가에서 맞았어요. 그때 메모 패드에 약간 ‘감성충’인 상태로 써놓은 글을 최근에 다시 봤거든요(웃음). 첫 줄이 이거예요.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가치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해요. ‘이게 가치가 있나?’ 긍정적인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해요. 물론 한 사람이라도 만족할 수 있으면 좋다는 마음으로 음악을 하고 있어요. 누군가를 만족시킬 때 가치를 얻는다고 생각하고, 가치 있는 음악을 할 때 큰 보람을 느껴요.

Q : 그렇다면 지금은 무엇에 간절한 상태인가요

A : 더 큰 가치를 좇아서 신에 괜찮은 ‘기여자’가 되고 싶어요. 특히 플레이어들과 함께 일하는 스태프에게 좋은 환경이 절실히 필요하거든요. 매니저, 엔지니어, 마케터…. 이들도 시장의 일부잖아요. 그들에게 유의미한 비전이나 롤 모델을 지금 시스템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요. 가수나 배우들이 자신만의 힘으로 스타 플레이어가 되는 게 아닌데, 플레이어들은 돈을 많이 벌고 나면 어느 순간 산속에 들어가 쉬면서 지내요. 함께 일한 스태프 중 극소수만 운이 좋아 사장 혹은 이사가 되죠. 환경적으로 축적되는 게 없어요.

블랙 재킷은 Rick Ownes. 블루 셔츠는 anoutfit. 레드 타이는 Prada. 드로잉 패턴이 새겨진 화이트 팬츠는 The Museum Visitor. 메리 제인 슈즈는 La Mer Ma Maison.
화이트 니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선글라스는 Mykita by Oror.

Q : 사실 이 물음에는 좋은 결과물을 내고 싶다는, 본인의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줄 알았어요. 멋진 답변이네요

A : 환경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건 새로운 플랫폼과 세대가 등장했기 때문이에요. 궁극적으로 지금보다 더 좋은 시스템을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저도 최근 꽤 오래 ‘정전’ 상태였어요. 앨범도 더디게 내고…. 제게도 이런 문제가 일부 이유로 작용했거든요. 몸소 느낀 부분이 있어서 많이 싸우며 고민해요. 저희 회사는 소수지만 모여서 그런 생각을 나누고 있고, 많이 좋아지고 있어요(웃음).

Q : 요즘 자이언티의 키워드는 ‘함께’인가 봅니다

A : 지금 10대 초중반 친구들이 주 소비층이 될 때면 시장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변할 거예요. 딱히 의미 있는 움직임 없이도 나름 멋진 그림이 될 수도 있겠죠. 그럼 저처럼 이미 신에 있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은 그래도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일이지 않을까. 그때 제가 노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대도 그 부분을 위해 좀 애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좋은 ‘작품’이 등장하는 걸 많이, 자주 보고 싶거든요.

Q : 조금 가벼운 이야기로 점프해 볼까요. ‘솔의눈’에는 카메라 울렁증이 있다고 대답한 것과 상반된, 극사실주의 콘텐츠가 올라오고 있어요. 심지어 코비드19 자가 검진하는 장면까지 적나라하게 등장해요

A : 출연자를 잘 나오게 하려는 배려가 없죠(웃음).

Q :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A :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에 치여 살면서 마땅한 취미생활도 없는 자신이 너무 불쌍한 거예요. 어느 날 아이클라우드에 쌓인 예전 사진을 보는데, 불과 1~3년 전 시간들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이미 알려진 사람인데 이런 모습도 공유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바쁜 와중에 PD님을 설득해서 시작했어요. 예쁘게 한번 만들어보자고 했는데… 이렇게 PD 마음대로 만들고 있네요.

Q : 개인 앨범 작업은 어느 정도 진행됐나요

A : 원하는 기준을 생각하면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예요. 멋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내고 싶어요. 좀 싱겁더라도.

Q : 이번 앨범은 창작 에너지를 어디서 얻고 있는지

A : 저는 ‘이 말은 해야겠어’ ‘이건 노래가 되어야 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아무런 에너지가 생기지 않아요. 곡을 계속해서 짓는 시기가 있는가 하면 몇 달씩 창작하지 않을 때도 있죠.

Q :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정 시간을 정해놓고 글을 쓴다죠. 그와는 정반대군요

A : 예전에는 그냥 흥얼거리면서 자연스럽게 노래가 됐거든요. 제가 해오던 방식이니 지금도 그런 과정이 이뤄지긴 하는데 나름 숙련돼서 바로 결과물이 예측되는 거예요. 뭘 쓰기도 전에 멈춰버리는 경우도 많으니 점점 더 신중해져요. 이 와중에 ‘이 말만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건 정말 귀한 거잖아요. 그렇게 의미 있는 말만 고르고 골라 담은 앨범을 이번에 내고 싶어요.

Q :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하면서도 본인의 확고한 아이덴티티를 담은 음악을 만들겠다는 것이야말로 많은 뮤지션의 목표인 것 같아요.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 왔나요

A :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가를 아는 방법은 음악을 자주 내는 거예요. 연애하는 과정이랑 비슷하죠. 상대방의 피드백 없이는 그 사람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모르잖아요. 내가 뭔가를 내야만 플레이어로서 실력이 붙는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이제 새로 쌓아가려고요.

Q : ‘솔의눈’에서 래퍼는 섹시해야 한다고 말했죠. 그렇다면 싱어송라이터이자 플레이어인 자이언티는

A : 안 섹시해도 돼요. 허름하고 솔직한 마음을 설득력 있게 전하려고 노력하면 돼요. 퇴폐미 같은 건 오래가지 못해요. 건강한 게 오래가죠. 저도 건강한 에너지를 가지려 노력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단지 멜로디가 아니라 가수의 기운을 듣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자이언티가 입은 파이톤 패턴 재킷은 Burden. 레이어드한 블루 셔츠는 Kanco. 그레이 셔츠는 Emporio Armani. 레드 팬츠는 Nancyboo. 퍼 슈즈는 Coach. 타이와 선글라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슬롬이 입은 브라운 재킷은 Yoon Ki Yoo.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브라운 팬츠는 Nancyboo. 블랙 슈즈는 Don carlos. 골드 스트랩 워치는 Casio. 골드 링은 The Stuff.
화이트 코트는 Intempomood. 블루 롱 머플러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SLOM

Q : 자이언티의 개인 유튜브 채널 ‘솔의눈’을 통해 〈쇼미10〉 프로듀서의 일상이 얼마나 바쁘게 흘러가는지 새삼 느꼈습니다

A : 저희 ‘티슬라’ 팀의 음원 미션 곡 ‘Trouble (Prod. Slom)’ 마스터링 버전을 넘기자마자 곧바로 소코도모의 본선 1차 경연곡 ‘회전목마(Feat. Zion.T, 원슈타인)(Prod. Slom)’를 마무리했어요. 일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곡을 다 만들면 바로 무대 세팅도 해야 하고, 후반 작업에 드는 시간도 무지막지해요. 그래서 ‘본방 사수’는 잘 못 하고 방송 당일에 연락 오는 거 보면서 오늘 무난했구나, 좋았구나, 편집이 이상했구나, 생각하곤 해요.

Q : 성실하게 작업하는 스타일로 알고 있는데 영상에서 “오늘 할 일을 내일의 나에게 맡긴다”란 말을 자주 하더군요(웃음)

A : 그래도 저는 착실한 편인 것 같아요. 그날 할당량을 해내지 못했을 땐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요. 자이언티 형 말처럼 스스로를 많이 ‘태우’며 작업하는 스타일이죠. 형처럼 게임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음악을 듣거나 만드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취미도 없어요. 〈쇼미10〉이 끝나면 삶의 균형을 찾아보려고요.

Q : 힘들 줄 알면서도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A : 워낙 여러 장르의 음악에 관심이 많아요. 그 흔한 시그너처 사운드도 곡의 분위기를 해친다고 생각해 넣지 않고요. 그렇다 보니 ‘슬롬만의 색깔이 뭐야?’ 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저는 이렇게 생겼고, 이렇게 다양한 음악을 좋아하고, 그러니 다음엔 뭘 만들지 궁금해 해달라고 말하고 싶어 출연을 결심했죠. 개인적으로 저음역대에서 오는 울림을 좋아하는 편인데 〈쇼미10〉을 통해 드럼과 베이스 부분에서 조금씩 제 캐릭터가 느껴진다고 ‘캐치’해 주셔서 너무 기뻐요.

Q : 티슬라 팀원들은 자이언티와 슬롬, 두 프로듀서의 밸런스가 특히 좋다고 말했어요

A : 동의하는 부분이에요. 확실히 해솔(자이언티) 형은 큰 그림을 보는 사람이거든요. 형이 ‘이 곡은 이런 얼굴이어야 해’라고 말하는 쪽이라면 저는 ‘그 얼굴에는 이런 미간에, 코는 이렇게 생기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죠. 프로그램 내내 팀원 각자가 지닌 매력이 더 많은 사람에게 설득력을 지닐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했어요.

Q : 사실 지난 시즌에서 자이언티와 기리보이 팀의 메인 트랙메이커로 활약하며 ‘Freak(Prod. Slom)’ ‘적외선 카메라’ ‘내일이 오면(Feat. 기리보이, BIG Naughty(서동현))’ 등을 탄생시킨 주인공이기도 하죠. 당시 작업한 음악이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을 목격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A : 좀 더 나를 믿어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밀고 나가도 되겠다고요. 개인적으로는 오랜 인연을 지닌 릴보이 형이 우승해서 너무 좋았고, 이때 만난 원슈타인과도 성격이 너무 잘 맞았는데 좋아하는 사람들과 작업해서 곡의 시너지가 커진 것 같아요.

Q : 이번 시즌 심사위원 중 절반이 비트메이커라는 점만 봐도 한국 힙합 신에서 프로듀서의 존재감은 여전히 대단합니다. 이런 흐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A : 프로듀서 입장에서는 감사할 따름이죠(웃음). 완성된 음악만 접할 수 있었던 대중이 몇 년 사이 유튜브 콘텐츠나 리얼리티 쇼를 통해 음악이 탄생하는 과정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게 됐어요. 그러면서 음악을 만드는 데 필요한 수많은 역할이 보이기 시작한 것 같아요. 〈전지적 참견 시점〉 통해 매니저의 역할을 인지하게 된 것처럼요. 그런 변화가 분명 기쁘지만 프로듀서가 비트를 뚝딱 만들어내는 천재적인 사람처럼 비춰지는 건 스스로 경계하는 지점이에요.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이 많으니까요.

Q : 남다른 유서와 전통을 자랑하는 쇼를 직접 경험하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A : 저도 〈쇼미〉 세대예요. 이 쇼를 보며 음악을 시작했죠. 1 · 2차 예선에서 1분도 안 되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온갖 기를 다 쓰는 얼굴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히 좀 감동적이더라고요. 프로듀서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진심으로 쇼에 임하는 광경이요. 편집된 장면에 의해 누군가 오해를 사는 게 가슴 아픈 이유예요. 소코도모도 그렇게 ‘외계인스러운’ 사람은 아니랍니다(웃음).

자이언티가 입은 청키한 화이트 니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화이트 팬츠는 아티스트 소장품. 올리브 컬러 슈즈는 Bottega Veneta. 선글라스는 Mykita by Oror. 실버 링은 Seoul Metal. 슬롬이 입은 화이트 코트는 Intempomood. 화이트 팬츠는 아티스트 소장품. 블루 롱 머플러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페인팅 패턴 부츠는 Maison Margiela x H&M. 독특한 질감의 실버 링은 Bamberocksha.

Q : 동료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보여요. 미국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전역 후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중에 꾸준히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신을 이끌어준 사람들 덕분이었죠

A : 맞아요. 시작은 옆 대학교 다니던 DJ 돕쉬 형이었어요. 형의 제안으로 처음 곡을 발표했는데, 그게 2014년에 나온 ‘비가 와도(Feat. 헤이즈)’였어요. 그 후 한국 와서 처음 교류한 아티스트가 릴보이 형이었고요. 제 비트가 여러 뮤지션에게 전해지면서 (박)재범 형과 해솔 형도 만나게 됐죠. 재범 형과의 첫 작업이었던 ‘Into my mood’가 〈사인히어〉라는 큰 프로젝트에 쓰였고, 해솔 형은 〈쇼미9〉 메인 트랙메이커를 맡겨줬어요. 감사한 기회들의 연속이었죠. 이때 성과가 좋았기 때문에 제가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Q : 그런 귀인이 많았다는 건 당신에게도 매력이 있다는 증거일 텐데

A : 제가 표정에서 모든 게 드러나는 편이에요. 거짓말도 잘 못하고요. 투명하게 드러나는 순수한 생각과 진심을 다들 반갑게 봐주는 것 같아요.

Q : ‘Complex(Feat. G-Dragon)’ ‘눈(Feat. 이문세)’을 함께 탄생시킨 자이언티와의 첫 만남은 어땠나요

A : 합정동 작업실에서 만난 자이언티는 너무 예민해 보이고 멋있었어요(웃음). 설레는 마음으로 그때까지 만들어둔 몇십 개의 트랙을 그 자리에서 들려줬죠. 그중 한 트랙을 듣고 형이 즉석에서 허밍하다 나온 곡이 ‘눈’이에요. 이후 해솔 형의 작업방식을 옆에서 지켜보며 많은 걸 배웠어요. 그래서 형의 아들이나 제자처럼 비춰지는 게 전 마냥 좋아요. 훈장처럼 느껴지거든요.

Q : 평소 가장 많은 음악적 영감을 빨아들이는 창구는

A : 언제나 또 다른 음악이죠. 아직도 스스로 많이 모자라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음악적으로 방황하고 존경하는 뮤지션도 자주 바뀌는 편이에요. 어떤 날은 ‘이 프로듀서의 이런 사운드를 너무 갖고 싶다’ 하다가도 다른 날 또 다른 아티스트와 장르에 꽂히죠.

Q : 언제부터 ‘디깅’에 진심이었나요

A : 어릴 때부터 누나를 따라 레코드숍을를 들락거리며 다양한 장르의 추천 명반을 많이 접했어요. 아버지가 꾸준히 모으던 재즈 음반도 자주 들었고요.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첫 MP3를 갖게 됐는데 너무 행복한 거예요. 256MB 용량을 가득 채운 곡들을 매일매일 업데이트했어요. 더 좋은 곡을 발견하면 어떤 곡을 삭제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진짜 좋은 앨범만이 살아남았죠. 그때부터 저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온 것 같아요.

Q :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음반은

A : 보사노바 재즈 뮤지션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Wave〉요. 정말 완벽한 명반이라 생각합니다.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아직도 이렇게 배경으로 설정해 놓고 다닐 정도예요. 지금은 힙합 신 한가운데 있지만 엔니오 모리코네 같은 영화음악도 즐겨 들어요.

Q : 최근 텀블벅 펀딩을 통해 발매한 수민과의 합작 앨범이자 첫 정규 앨범인 〈Miniseries〉는 댄서블한 무드가 물씬 배어나요

A : 정말 좋아하는 것에 집중했어요. 그래서 작업이 더 즐거웠던 것 같아요. 소중한 음악적 동반자 수민 누나랑 ‘우리만 좋아해도 상관없다!’는 자신감을 갖고 내보냈는데, 모금액을 금방 달성했죠.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좋아해줘서 뿌듯했어요.

Q : 〈쇼미10〉에서 프로듀서 공연을 위해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어요. 무대 위의 희열을 느꼈을지

A : 너무 긴장해서 계속 화장실만 찾았는걸요. 해솔 형이 노래는 내가 하는데 왜 네가 긴장하느냐고 어이없어했지만 솔직히 억울하죠. 형은 데뷔한 지 10년이 넘었고, 저는 막 사회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무대를 위해 믹싱 작업도 평소보다 세심하게 신경 쓰며 오랫동안 준비했는데, 정말 쏜살같이 지나간 시간이었어요. 노래를 만드는 건 익숙하지만 그걸 무대에서 자신 있게 선보이기까진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웃음).

Q : 〈쇼미10〉이 끝나고 당신의 어떤 행보를 기대하면 좋을까요

A : 너무 늦지 않게 앨범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에요. 아마 여러 아티스트를 초대하겠지만 제대로 선보이는 첫 솔로 앨범인 만큼 제 취향이 여실히 드러나도록 만들려고요. 이후에는 각각의 음악적 색채가 분명한 앨범에 도전하고 싶어요. 물론 지금은 생각도 못 하고 있고, 내년 1월쯤부터….

Q : 내년은 30대로 맞이하겠네요

A : 딱히 의식하진 않아요. 위아래 다섯 살까지는 전부 친구라고 생각해서요. 다 같이 나이 먹어가는 것이니 그렇게 세상이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느낌도 아니에요. 일단 이번 연말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어요. 제 생일도 있고, 크리스마스도 있고, 기분 좋은 모임도 많은 달이라 12월을 좀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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