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청국장은 끓이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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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민 기자]
냉장칸 구석에 숨어있던 청국장을 발견했습니다. 비닐팩에 넓게 펴서 담긴 청국장은 한 번씩 끓여 먹기에 알맞은 크기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청국장 끓이기를 검색했습니다. 동영상으로 음식 만들기를 검색할 때는 조리시간이 가장 짧은 동영상을 우선 검색하는 게 제 나름의 철학입니다.
된장찌개를 끓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저녁 메뉴로 청국장을 선택합니다. 3분가량의 유튜브를 유심히 시청한 후, 청국장에 넣을 재료를 냉장고에서 찾았습니다. 야채 칸에 굴러다니는 버섯들과 먹다 남긴 김치를 넣을 계획입니다.
생각보다 쉬웠습니다.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만들고 김치를 넣고 끓인 후, 마지막에 청국장을 잘 풀어서 넣으면 끝납니다. 청국장을 마지막에 넣어야 하는 이유는 청국장에 있는 건강한 유산균이 파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어느 유튜버의 설명을 따랐습니다.
냄새는 맛있는데, 국물은 맛이 밋밋합니다. 검색한 동영상을 다시 확인해 보니 김칫국물을 넣으면 맛이 더 좋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다행히 김치를 비운 그릇에는 국물이 남았습니다. 눈대중으로 국물을 넣고 끓였습니다. 김치찌개인지 청국장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정체성이 모호합니다.
기대했던 청국장 맛이 아닙니다. 다시 검색했습니다. 동영상에서는 취향에 따라서 소금이나 간장으로 간을 맞추라며 자기만의 요리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나는 소금으로 간을 맞췄습니다. 아직도 김치찌개와 청국장 사이에서 짭짤하게 우러나는 묘한 맛입니다.
더 이상 건드리면 망칠 것 같아서 여기서 멈추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진 마늘과 간장을 조금 넣고 기대했던 맛이 만들어지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몇 분을 더 끓였습니다.
아이들은 청국장을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집과 가까이 지내다 보니 할머니께서 음식을 자주 만들어주셨습니다. 아이들은 할머니 덕분에 입맛이 토속적입니다. 찌게나 국에는 청양고추를 넣어서 칼칼하게 매운맛을 좋아하고, 쌉쌀한 고들빼기나 향이 짙은 갓김치를 좋아합니다.
아빠의 첫 청국장 냄새를 맛은 아이들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청국장찌개의 완성을 기다렸습니다. 처음 맛을 본 큰아들은 김치찌개라고 생각하며 먹게 된다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작은아들은 맛이 조금 짜다며 두어 번 떠먹곤 먹지 않았습니다.
식사가 끝났지만 청국장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조금 식은 청국장을 한 숟가락 떠먹어보니, 짠맛이 전부였습니다. 버리기에는 양이 너무 많아서 아깝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국물을 조금 덜어내고 물을 넣어서 다시 끓였습니다. 확실히 짠맛은 조금 덜합니다. 아침식사에 올려진 청국장은 어제의 맛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가족들은 청국장을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점심엔 물을 더 넣고 약간의 채소를 넣고서 다시 끓였습니다. 이번엔 정말 맛있는 청국장의 맛과 비슷합니다. 식사를 차리는데 작은아들이 점심때 찌개가 혹시 또 청국장이냐고 투덜거립니다. 이번에 진짜 맛있는 청국장이라며 자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작은아들은 아침을 많이 먹었다며 점심은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진작에 말하지 왜 지금 말하냐며 화를 냈지만, 죄송하다는 작은아들의 말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청국장찌개를 맛있게 만들지 못해서 미안은 한데, 갑작스러운 식사 거부는 예의가 아니라고 말하곤, 식탁으로 돌아왔습니다.
식탁에는 큰아들이 앉았습니다. 나는 청국장에 밥까지 말아가며 오버스럽게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며 먹습니다. 콩자반을 싫어하는 큰아들은 오늘따라 콩자반 하고만 밥을 먹습니다. 아직도 청국장은 절반이나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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