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진짜 정책 대결"..어른도 봐야할 '아동 대통령' 선거

구자창 2021. 11. 27.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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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 아동 대통령선거, 제페토서 진행
"미래 주인공은 아동" 관심 호소하고
대선 후보 향해 "모범 보여달라" 당부도
아동안전위원회가 주최하고 행정안전부가 후원한 제1대 아동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이주원(14)군과 이채원(14)양이 지난 6일 네이버 '제페토'에서 아바타로 나와 토론하고 있다. 아동안전위원회 제공


“우리가 실패하더라도 도전할 기회를 만들어주세요.”(제1대 아동 대통령 당선자 이채원)
“미래의 주인공인 아동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세요.”(최종 2위 후보 이주원)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온 사회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대한민국 최초의 아동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조용히 치러졌다. 이번 선거에서 최종 후보 2인에 올랐던 이채원(14)양과 이주원(14)군은 “아동은 미래의 유권자이고 어른과 마찬가지로 정치의 주체”라며 정당의 대선 후보들 못지않게 열정과 패기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비영리 사단법인 아동안전위원회(위원장 이제복)가 주최하고 행정안전부가 후원한 제1대 아동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지난 8월 3일 선거 공고가 있었고, 지난 10~19일 투표를 거쳐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당선자가 발표됐다.

선거에는 전국 각지에서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48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출마 나이는 아동을 만 18세 미만으로 규정한 아동복지법에 따랐다. 153명의 아동 정책평가단 심사를 거쳐 결선 후보를 추렸다. 아동의 교육·인권·안전 3가지 분야에서 각 후보가 제안한 정책에 대한 정밀한 평가가 이뤄졌다.

최종 결선에는 2007년생 동갑내기 중학교 2학년 학생 두 명이 올랐다. 출마 선언과 토론회는 미성년자에 대한 인신공격을 방지하고, ‘Z세대’가 가상 공간에 친숙한 점을 고려해 메타버스 플랫폼인 네이버 ‘제페토’에서 진행했다. 투표에 682명이 참여했고 이양은 458표(67.15%), 이군은 224표(32.84%)를 최종 득표했다.

제1대 아동 대통령 선거에 최종 당선된 이채원(14·왼쪽)양과 최종 2위 후보에 오른 이주원(14)군. 이군은 아동안전위원회 명예이사로 위촉돼 향후에도 아동 정책 관련 활동을 할 계획이다. 아동안전위원회 제공


국민일보는 아동 대통령에 최종 당선된 이양과 2위에 오른 이군을 지난 23~25일 이메일 및 전화로 인터뷰했다. 아동 정책평가단 우수활동자로 선정된 초등학교 6학년 김예원(12)양과도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장애 감수성·아동 청원…뜨거웠던 정책 대결

이양은 출마자 중 유일하게 지적장애 아동의 차별 문제에 대한 정책을 낸 후보였다. 이양은 초등학생 시절 지적장애 아동과 같은 반이 됐는데 다른 친구들이 괴롭히는 것을 보고도 도와주지 못한 아픈 기억이 있었다. 이양은 인터뷰에서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 마음의 빚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 경험을 반성하면서 아동뿐만 아니라 교사를 대상으로 지적장애 아동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실질적인 교육의 도입을 공약했다.
이채원(14)양이 지난 6일 메타버스 플랫폼 네이버 '제페토'에서 열린 제1대 아동 대통령 선거 토론회에 참석해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아동안전위원회 제공


구체적으로는 토론과 퀴즈 중심의 참여형 교육으로 장애 감수성을 높이고, 심리치료 로봇을 활용해 학생들의 흥미를 높이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양은 “어릴 때는 하얀 도화지 상태잖아요”라며 “미리 지적장애에 대해 교육을 받으면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군은 청와대 국민청원처럼 ‘아동 정책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공약으로 지지를 받았다. 정책 제안뿐만 아니라 아동끼리 여론을 형성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그는 정책제안서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선거권이 있는 자’만을 대상으로 실현되는 것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주원(14)군이 지난 6일 메타버스 플랫폼 네이버 '제페토'에서 열린 제1대 아동 대통령 선거 토론회에 참석해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아동안전위원회 제공


이군은 “아동이 정치에 참여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그는 3·1운동 당시 유관순 열사가 만 17세로 학생 신분이었던 점을 언급하며 “아동이 정치에 참여했을 때, 우리는 역사를 바꿨다”고 강조했다. 군부 독재에 대한 항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끌어낸 촛불 집회에도 아동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양이냐 질이냐…자유학기제 논란

학생답게 교육 문제를 두고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이양은 현재 중학교 과정에 도입된 ‘자유학기(학년)제’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유학기제는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토론·실습이나 체험 활동을 통해 진로를 찾도록 돕는 게 목적이지만, 실제로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이채원(14)양이 지난 6일 메타버스 플랫폼 네이버 '제페토'에서 열린 제1대 아동 대통령 선거 토론회에 참석해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아동안전위원회 제공


이양은 정책제안서에서 “몇몇 학생은 수업에 집중했지만, 그 외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걸 봤다”며 수업 방식의 질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가 제안한 것은 학생들이 짝을 이뤄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유대인의 전통 학습방법 ‘하브루타’ 도입이었다. 이양은 “지금 학교 교육의 문제는 ‘모든’ 학생에게 가장 공부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이군은 “양적인 문제가 더 크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단 1년은 진로 탐색에 너무 짧은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대안으로 중학교 3년 동안 자유학년제를 전면 실시하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를 구분 도입하고, 독일식의 전문 직업학교를 새로 만드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군은 “폭넓은 진로교육을 받지 못하고 획일화된 암기 위주 교육을 받고 있다”며 “보다 넓게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기 위해 진로교육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두순 사건’ 공포에 사형제 주장도

이주원(14)군이 지난 6일 메타버스 플랫폼 네이버 '제페토'에서 열린 제1대 아동 대통령 선거 토론회에 참석해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아동안전위원회 제공

이군은 아동 대상 강력범죄자에 한해 사형을 구형하고 집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1997년 이후 사형제가 실질적으로 폐지된 것과 다름없는 우리나라 현실과는 다소 맞지 않는 얘기였다. 그런데 이군이 이 같은 공약을 앞세운 이유가 있었다.

핵심적인 계기는 ‘조두순 사건’이었다. 조두순은 아동 성범죄로 징역 12년의 형기를 치르고 최근 출소했는데, 아동들은 조두순이 풀려난 것을 보고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군은 “친구들이 조두순 출소를 보면서 ‘우리도 언젠가 비슷한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했다. 그는 “사형은 반인륜적이라는 일부 아동 정책평가단의 지적이 있었다”면서도 “그만큼의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취지”라고 부연했다.

“아동은 미래 설계의 동반자”

아동안전위원회가 주최하고 행정안전부가 후원한 제1대 아동 대통령 선거의 당선증 교부식이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출마자들에게 멘토로 도움을 준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최종 2위에 오른 이주원(14) 군, 당선인 이채원(14)양, 홍보대사를 맡은 유튜브 '라임튜브'의 길라임(10)양, 아동 정책평가단 우수표창장을 받은 김예원(12)양, 이제복(34) 아동안전위원장. 아동안전위원회 제공

아동 대통령 선거는 출마 후보자들이 한층 성숙하는 계기가 됐다. 이양은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장애아동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엄연한 방관자 아니냐’고 아동 정책평가단 일부의 비판이 나왔을 때를 언급했다. 이양은 “그 말에 솔직히 상처를 받았는데, 출마한 이유를 고민하면서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고 답했다. 이양의 어머니는 평소 “목표의 수정은 실패가 아니다”는 말을 강조한다고 했다. 이양은 “‘실패하더라도 경험과 깨달음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어머니 말을 새겨 내성적인 성격인데도 선거에 출마할 용기를 냈다”고 밝혔다.

이군은 “이번 아동 대통령 선거까지 포함해 출마했던 선거에서 다섯 번 연속으로 지고 있다”면서도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2등을 했다고 다 끝난 게 아니지 않느냐”며 “앞으로도 아동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지역의 학생연합회 같은 곳에서 열심히 활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대선을 앞둔 기성세대와 대선 후보를 향한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이양은 어른들을 향해 “제1대 아동 대통령으로서 감히 말씀드린다면, 아동들이 뭔가 하고 싶다고 하면 끝까지 믿고 지지해달라”며 “아동이 도전하고 성공할 수 있는, 실패해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대선 후보들에게는 “서로 너무 비판만 하지 말고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여달라”며 “당선된다면 아동을 위한 정책을 더 많이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이군은 “아동을 단순히 보호 대상이 아닌 미래 설계의 동반자로 여겨 달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통령은 임기 5년 만이 아니라 향후 10년, 100년의 미래를 책임지고 설계하는 자리”라며 “대선 후보들은 미래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아동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달라”고 했다.

아동 정책평가단 활동에서 우수표창장을 받은 김예원(12)양은 ‘각 후보의 정책을 어떻게 봤느냐’는 질문에 “정말 아동을 위한 정책인지, 아동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것인지를 중요하게 봤다”고 말했다. 아울러 “최근 대통령 선거 분위기는 이념적인 부분에 치우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각 후보의 공약이 정말 실현 가능한 것인지, 그 공약으로 우리나라가 더 나아질 수 있는지 신중하게 따져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선거를 기획하고 주최한 이제복(34) 아동안전위원장은 “아동은 당사자로서 직접 아동 정책을 만들고, 스스로 평가하고, 더 나아가 제안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동은 투표권이 없지만 미래의 유권자이고, 가족은 당장의 유권자”라며 “기성 정치인들이 아이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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