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이 플랫폼돼야".. 각자도생 시대에 연극공동체 꿈 꾼다

장지영 2021. 11. 27.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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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 극작가 겸 연출가 김재엽
극작가 겸 연출가 김재엽이 지난 17일 서울 대학로 예술청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드림플레이 테제21의 ‘제1회 두드림 페스티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번 페스티벌에선 극단 단원들이 창작 워크숍 등을 통해 완성한 7편의 연극을 선보인다. 권현구 기자


극작가 겸 연출가 김재엽(48·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이 이끄는 드림플레이 테제21이 축제를 개최한다. 25일부터 다음 달 19일까지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열리는 ‘제1회 두드림 페스티벌’은 극단 단원들이 창작 워크숍 등을 통해 완성한 7편의 연극을 선보이는 자리다.

드림플레이 테제21은 2003년 극단 드림플레이란 이름으로 창단한 이후 지금까지 단원 모두가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지는 동인제 극단을 표방해 왔다. 올해는 두드림 페스티벌을 통해 연극공동체로서 꿈을 펼쳐낸다. 공동체 감각이 마비된 각자도생의 코로나19 시대에 무모해 보이는 축제를 기획한 이유는 뭘까.

“극단이 20년 가까이 되다 보니 단원이 단체 대화방 기준으로 50명쯤 됩니다. 연극 중심으로 활동하는 단원 20~25명은 늘 삼선동 극단 스튜디오에 모여 놀거나 토론 또는 연습을 해요. 이런 과정을 통해 작품이 만들어지는데, 극단이 이제는 작품을 소개하는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축제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프로페셔널하게 만든 작품만 살아남는 게 아니라 커뮤니티에서 소박하게 만든 작품도 존재한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어떤 작품이든 첫 아이디어는 아마추어 상태에서 나오거든요.”

대학로 연우 소극장에서 열리는 제1회 두드림 페스티벌 포스터.


이번 축제에선 유종연의 ‘쌍욕’을 시작으로 김재엽의 ‘깐돌이와 나’, 백운철의 ‘인사할게요, 마하마씨!’, 이다혜의 ‘위드 베이비’, 박예슬의 ‘이상 소견이 있습니다’, 현림의 ‘숫’, 김본이의 ‘토란국이란’이 차례로 이어진다. 작품의 출연진도 주로 극단 단원들이다.

“가능하면 매년 두드림 페스티벌을 개최하려고 합니다. 극장 대관비를 극단 수입에서 내면 크게 비용이 들지는 않을 거예요. 무대 세트나 소품도 작품에서 사용한 뒤 보관하던 것들을 활용할 거고요.”

2002년 신춘문예로 데뷔한 김재엽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연극계의 주목을 받았다.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합쳐놓은 듯한 ‘유령을 기다리며’로 2005년 거창국제연극제 대상과 연출상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연세대 앞 사회과학서점을 모티브로 91학번들의 후일담을 담은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차세대 예술가로 선정됐다.

연출가로서 ‘조선형사 홍윤식’(2007년) ‘꿈의 연극’(2009년) ‘마호로바’(2011년) ‘풍찬노숙’(2012년) 등을 선보이는 한편 극작과 연출을 겸한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2008년) ‘타인의 고통’(2010년) ‘여기 사람이 있다’(2011년) 등의 작품도 무대에 올렸다.

김재엽이 직접 쓰고 연출한 작품들은 짙은 사회성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대학로에서 20대의 고민과 분노를 가감 없이 담아내거나 2009년 발생한 용산 참사를 직접 다루는 작품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러티브 중심의 기존 글쓰기에 한계를 느낀 그는 새로운 연극 형식을 고민했다.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를 쓰고나서 30대인 제가 20대 이야기를 하는 게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여기 사람이 있다’(‘타인의 고통’을 새롭게 구성)는 용산 참사로부터 20년 후의 미래를 극중 배경으로 했는데, 소재만 빌려오고 저 스스로 체화되진 않았음을 느꼈습니다. 공연을 보러 온 용산 유족들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러웠어요. 그때 내가 경험한 것을 갖고 내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년간의 고민 끝에 나온 작품이 그에게 수많은 상을 가져다준 ‘알리바이 연대기’다. 그는 아버지와 형 그리고 자신의 개인사에 개입된 한국현대사의 순간들을 조명함으로써 국가권력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해 내는 알리바이를 고발했다.

자기 서사 다큐멘터리 드라마 형식으로 김재엽에게 많은 연극상을 안긴 ‘알리바이 연대기’의 한 장면. 국립극단 제공


“‘알리바이 연대기’에서 처음으로 저 자신 ‘재엽’이 등장하는 자기 서사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선보였습니다. 박근혜정부 때의 시대 분위기가 제게 직설적이고 집요하게 역사를 다루도록 만들었죠.”

그는 ‘알리바이 연대기’ 초연을 계기로 자신이 이끌던 극단 이름을 바꿨다. 2003년부터 창단 당시 지은 ‘극단 드림플레이’에서 ‘극단’을 빼고 ‘테제21’을 추가한 ‘드림플레이 테제21’로 변경했다. ‘연극이 아니어도 좋은 연극’은 드림플레이 테제21의 모토다. 다큐멘터리성, 동시대성, 테제(정치적·사회적 운동의 기본 방침이 되는 강령)가 선행하는 작품에 천착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있는 드림플레이 테제21의 스튜디오 모습. 드림플레이 테제21 제공


2015년 안식년을 얻어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 방문교수로 떠난 그는 ‘연극이 화두가 되고, 극장이 토론장이 되는 모습’을 현지 극장에서 확인했다. 하지만 그가 독일에 있을 때 한국에서는 블랙리스트와 검열 문제가 불거졌다. 2016년 젊은 연극인들이 검열에 저항하기 위해 만든 ‘권리장전 페스티벌-검열각하’의 개막작을 맡은 그는 국정감사 녹취록을 재구성한 독특한 형식의 연극 ‘검열 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을 선보였다. 이듬해 초 촛불시위가 한창인 광화문에서 블랙텐트 기획공연을 하는 등 한국 사회를 향한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냈다. 그는 “광화문 광장에서 많은 활동가와 예술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런 시대에 예술가는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모색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독일에서 경험은 2017년 두 편의 작품으로 나왔다. 그가 베를린에서 경험한 일상과 극장 풍경을 담은 ‘생각은 자유’, 파독 간호사와 광부의 이야기인 ‘병동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다. 두 작품 모두 ‘재엽’이 나오는 자기 서사 다큐멘터리다. 하지만 2018년 단원들이 겪었던 노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포스트 자본주의 시대의 자본을 다룬 연극 ‘자본1: We Are The 99%!’부터 ‘재엽’은 빠졌다. 그는 “자기 서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역사 문제를 다뤄왔지만 경제 문제에선 다큐멘터리 형식만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연극계에서 자기 서사나 다큐멘터리 형식의 연극이 붐을 이루지만 그는 다시 내러티브 연극으로 돌아올 채비를 하고 있다.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이자 중국 조선족 문단의 거목이었던 김학철(1916~2001)의 삶을 무대에 그려내려고 한다.

그는 “그동안 사회적인 책임감으로 넘치지만, 보편적인 이야기를 끄집어내지 못한다는 지적을 듣곤 했다. 이번엔 김학철 선생님의 삶의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작품 스타일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면서 “이번 작품은 김학철 선생님에 대한 리서치를 마치고 희곡 집필을 막 시작한 상태”라고 귀띔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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