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알아주는 친구를 가지고 있어라 - 관포지교

김용길 2021. 11. 2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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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중국인이다 23]

[김용길 기자]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를 가지고 있어라.
 
어떤 사람의 품격을 알려면,
첫째 그 사람이 읽는 글을 볼 것이요,
둘째는 그 사람이 사귀는 벗을 볼 것이다.
- 관중
  
진정한 친구란?

어떤 친구가 내게 친구가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바로 당신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와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는 바가 많았고 상당히 자주 만나고 있었으므로 절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안하게도 그 친구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나는 아직 우리가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요."

나는 집에 와서도 친구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사로 잡혔다. 어린시절부터 우리는 많은 또래의 사람들을 만난다. 동네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취미가 같아서, 뜻이 같아서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헤어지고 또 만난다.

그동안 내가 만난 친구들의 얼굴이 무수히 떠올랐다. 그런데 그 중에 나는 과연 몇 명이나 진정한 친구를 가지고 있을까? 진정한 친구란 어떻게 정의 할 수 있는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친구란 끝까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아직 우리가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그런 뜻에서였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나의 뇌리에는 관포지교(管鮑之交)란 고사로 유명한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우정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들이 평생 나눈 관포지교의 우정은 중국 역사를 통해서도 가장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관포지교(管鮑之交)

춘추시대 제(齊) 나라에 관중과 포숙아가 있었다. 둘은 죽마고우였다. 관중은 젊었을 때에 집이 가난하여 포숙아와 함께 장사를 했는데 언제나 돈을 많이 가져갔다. 그러나 포숙아는 이를 알고도 관중을 탓하지 않았다. 관중이 가난하고 생활이 어려워서 그러는 것이라고 이해해주었다. 관중이 전장에 나갔다가 도망쳐 왔을 때도 비록 다른 사람들이 모두 관중을 손가락질할 때도 포숙아는 관중이 홀어머니를 모셔야 하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 무렵 제나라에서는 소백(小白)과 규(糾)라는 두 왕자 사이에 정권 다툼이 있었다. 그런데 운명적으로 관중은 규의 밑에 들어가 일했고, 포숙아는 소백을 섬기고 있었다. 두 왕자가 싸움을 벌이는 통에, 관중과 포숙아는 어쩔 수 없이 적이 되었다. 한 번은 관중이 소백을 겨누어 활을 쏘았는데, 다행히 허리띠 장식에 맞아서 소백이 목숨을 건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소백은 그 싸움에 이겨서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환공(桓公)이다.

환공은 자기를 죽이려고 한 관중을 잡아들여 당장 사형에 처하라고 했다. 그때 포숙아가 목숨을 걸고 나서서 환공을 말렸다.

"왕께서는 제나라 하나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臣)으로도 충분할 것이나, 천하의 패자가 되시려면 관중을 기용하십시오."

포숙아는 관중은 유능한 인재이니 절대 죽이지 말고 오히려 재상의 자리에 임명해달라고 간청했다. 도량이 넓고 식견이 높은 환공은 신뢰하는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을 중용하고 정사를 맡겼다. 그렇게 포숙아는 자기가 차지할 수 있었던 재상의 자리를 관중에게 양보했다. 훗날 관중은 죽마고우인 포숙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이렇게 말했다.

"일찍이 내가 젊어서 포숙과 장사를 할 때 늘 이익금을 내가 더 많이 차지했으나 그는 나를 욕심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를 위해 한 어떤 일을 실패하여 그를 궁지에 빠뜨린 일이 있었지만 나를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세상일에는 성패의 운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또 벼슬길에 나갔다가는 물러나곤 했었지만 그는 나를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게 운이 따르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나는 싸움터에서도 도망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나를 겁쟁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게 늙은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진실로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也)"

후세 사람들은 이러한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을 일컬어 관포지교라 하여 칭찬해 마지 않았다. 관중과 포숙아의 이야기는 참된 친구가 어떤 권력이나 부를 얻는 것보다 값진 것임을 깨우쳐준다.

제나라 환공이 천하의 패자로 군림하게 된 것은, 그를 보좌하는 재상 관중이 있었기 때문이고, 관중이 제나라 재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능력을 알아준 친구 포숙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재능보다 오히려 친구를 잘 이해해준 포숙아의 인간성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들은 때로 정치적인 입장이 달랐으나 죽는 날가지 그들의 우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들의 우정을 중국의 시성(詩聖) 두보(杜甫)는 이렇게 읊었다.
 
손을 젖히면 구름 일고
손을 엎치면 비 내리니
우글거리는 경박한 무리 어찌 구태여 헤리오.
그대는 관중포숙(管仲鮑叔)의 가난할 때 사귐을 보지 않았는가.
이 도리를 지금 사람은 버리기를 흙같이 하누나.
- 두보, 빈교행(貧交行)
 
 
관중은 환공을 도와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로 군림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아주 친밀한 사이가 되어 대화에 막힘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왕으로서가 아니라 친구 같은 마음으로

관중의 도움으로 천하를 재패한 환공이 관중과 한 자리에 있을 때의 일이다. 마침 기러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환공이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중부(仲父)! 저 기러기는 때로 남쪽으로 가기도 하고 북쪽으로 가기도 하는구려. 어느 곳이고 가고 싶으면 가는 것이 기러기의 자랑이겠지. 비록 날개가 있어 그렇게 날아가는 것이지만 나는 날개가 없어도 그렇게 날 수가 있소. 그것은 오직 중보가 곁에 있기 때문이오."

중보란 관중을 지칭하는 말인데, 환공은 왕으로서가 아니라 친구 같은 마음으로 관중을 의지하며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진정한 친구 셋만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관중은 환공에게도 친구 같은 신하가 되어서 위기와 시련에 처했을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든든한 힘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진정한 친구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가령 부(富)를 쌓아서 영광되고 행복하더라도, 그대 자신과 같이 그것을 마음으로부터 기뻐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그 곳에 큰 기쁨이 있겠는가. 또 역경에 처해서 싸울 때에도, 그대보다 더욱 그것을 무거운 짐으로 생각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더욱더 참고 견디기가 어려울 것이다.
- 키에르케고르, 우정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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