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그때 '녹색 눈' 소녀..36년 지나도 비극 끝나지 않았다
빨간 스카프로 머리를 감싼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남루한 행색은 전쟁의 처절함을 고스란히 드러냈지만, 소녀의 에메랄드 빛 눈동자만은 강렬하게 불타 올랐다.
1985년 6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표지를 장식한 ‘아프간 소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난민들을 상징하는 사진이 됐다. 당시 10대였던 소녀의 이름은 사르바트 굴라. ‘제3세계(냉전 시기 개발도상국을 이르던 말) 모나리자’, ‘불멸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굴라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었다.
로이터ㆍAP통신은 25일(현지시간) ‘아프간 소녀’로 알려진 굴라가 탈레반 정권을 피해 최근 이탈리아에 정착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마리오 드라기 총리실은 이날 “굴라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했다”며 “아프간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통합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따른 것”이라고 확인했다.
앞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 작가 스티브 맥커리는 1984년 12월 아프간 접경 지대의 파키스탄 난민 캠프에서 파슈툰족 10대 소녀의 사진을 촬영했다. 당시 소련의 침공으로 아프간에서는 수년째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듬해 ‘아프간 소녀’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표지에 실린 사진은 전세계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비참함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드러낸 굴라의 모습은 분쟁 지역 난민과 어린이들의 실상을 한 장으로 압축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각종 국제 인권 단체의 캠페인의 보고서, 홍보물에 그의 사진이 인용됐다.
맥커리는 2002년 수소문 한 끝에 성인이 된 사르바트 굴라를 찾아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미 연방수사국(FBI) 분석가와 홍채 인식 전문가 등의 협조를 얻어 신원을 검증했다고 밝혔다.
분쟁 지역의 참상을 렌즈에 담아 온 맥커리는 ‘아프간 소녀’로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 했다. 정작 모델인 굴라의 삶은 평탄치 못 했다. 많은 아프간 난민들이 그랬듯 파키스탄의 난민촌에서 어렵게 살았다.
열세 살에 결혼한 그는 여섯 아이의 엄마가 됐지만, 두 아이와 남편을 일찍 잃었다. 2016년 파키스탄의 페샤와르 지역에서 적법한 주거증을 소지하고 있지 않다는 혐의로 체포 됐고, 아이들과 추방이 결정됐다.
굴라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아프간의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고향에서 존엄성을 갖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하겠다”며 그에게 수도 카불의 아파트를 내줬다.
굴라는 아프간 정착 후인 2017년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가난한 사람들, 고아와 남편을 잃은 여성들을 치료하는 자선 단체나 병원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이 나라에 평화가 찾아와 사람들이 거리로 나앉지 않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그의 꿈은 또다시 미뤄지게 됐다. 올해 8월 15일 여성 탄압 정책을 펴는 탈레반이 카불을 접수하면서, 굴라는 다시 난민의 길을 택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아프간 비영리기구(NGO) 등의 도움으로 굴라와 가족들이 이탈리아로 피신해 재정착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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