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대응 논란에 "경찰은 소모품 아냐"..'시보 경찰관이 올리는 글'

이정윤 2021. 11. 2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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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보 소개한 경찰관 내부망에 글 올려
"사회 분위기 때문 법집행 힘들어져"
"비난도 우리의 사명 꺾지 못할 것"
김창룡 경찰청장이 25일 오후 인천시 남동구 논현경찰서 앞에서 취재진에게 방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이정윤 기자]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과 서울 중구 스토킹 살해 등으로 경찰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을 순경이 정식 경찰공무원으로 임용되기 전인 시보라고 밝힌 현직 경찰관이 내부망을 통해 이번 사태의 원인과 개선 방향에 대해 적은 글이 올라와 관심을 받고 있다.

26일 경찰 내부망(폴넷) 현장활력소 게시판에는 '선배님들께 시보 경찰관이 올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게시글을 작성한 이는 "요 며칠 사이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라면서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이 있음에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은 제가 가장 싫어하는 '쫄보의 조건'에 해당되니 선배님들과 몇가지만 상의해보려고 여기에 글을 올린다"고 했다. 또 "순경의 순(巡)자가 '순할 순(順)'은 아니니까"라고 했다.

작성자는 인천 흉기난동 사건에 대해 "마음만으로는 이미 8년전부터 경찰이었기에, 오래된 식구들이 욕을 먹는 듯 해 마음이 편치 않다"라면서도 "하지만 그들의 의견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적었다. "약해진 공권력이 우리의 실력 발휘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라며 "사회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법집행이 힘들어졌다. 강하게 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현실인데, 사람들은 그 어려운 일을 당연하게 요구하고 못하면 또 욕한다"고도 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경찰과 국민이 직접 대립했다. 권력에 대한 반감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훨씬 클 수밖에 없다"라며 "결국 현 대한민국 사회에서 경찰의 공권력을 신장 시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작성자는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하자는 말은 절대 아니다"라며 삼단봉 등 경찰 장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지금 삼단봉은 강하게 내려치면 휘어지기도 한다고 들었다"라면서 "이런 '깡통' 삼단봉으로 칼 든 상대와 싸워야한다니 아찔하다. 사비로 새 봉을 마련해야 하나 생각해봤는데 이건 지급된 장비가 아니니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어 망설여진다"고 했다.

그는 또 "경찰 앞에서 칼을 꺼내들고 개기면서 욕지거리를 쏟아냄은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라며 "이 도전을 받아치지 못한다면 결국 공권력은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 제도는 '인권을 보호하겠다'라는 형식적인 명분을 앞세워 선량한 이들의 자유와 평등에 해를 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매뉴얼과 법률 등이 적극적인 행정을 가로막는다며 "비효율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제도에 대해 불만을 갖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오히려 시정과 개선을 위한 투쟁으로 봐야 한다. 그러니 자유로운 의견 표출과 건전한 의사소통에 기여하는 직장협의회 전국연대는 환영할 일이지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아울러 "경찰의 적극 행정을 가로막는 여러 가지 제도들 탓에, 언제부턴가 '경찰 서비스'의 의미는 '서비스 업종의 그것'으로 변질 됐다. 그리고 이제 많은 경찰관들이 서비스라는 단어 그 자체에 혐오감을 갖게 됐다"고 썼다.

작성자는 끝으로 "이 글을 통해 '경찰은 소모품이 아니라는 점. 우리의 불만이 '어린 아이 투정'과 다르다는 점. 몇 가지 실수와 대중들의 비난도 결코 우리의 사명감을 꺾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다"라면서 "오늘도 가족과 국가를 위해 희생하시는 선배 경찰분들게 감사 인사를 올린다"고 했다.

한편, 해당 게시글은 이날 오후 2시 30분 기준 2만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17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한 경찰관은 댓글을 통해 "지휘부가 모든 직원들의 든든한 뒷배가 되주면 좋겠다"고 적었다. 다른 경찰관은 "공감한다. 주저하지 않고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제도 등이 뒷받침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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