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만 로맨스..가벼운 코미디 속에 담긴 묵직한 철학
하지만 관객의 이런 심리 이면에는 다른 의미도 숨어 있다. 작은 영화, 일상을 다룬 영화들이 영화관에서 점차 작고 편한 모바일 플랫폼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로맨스’는 TV 드라마에서 이제는 웹 드라마, 쇼트폼 콘텐츠라 불리는 곳으로까지 밀려났다. 영화관에서 잔잔한 감동에 빠지기에는 시대 변화가 퍽 억척스럽게 느껴진다.
이런 시대에 ‘장르만 로맨스’의 등장은 반갑다. 최근 한국 영화계가 쏟아낸 멜로나 로맨스 장르 영화들은 그야말로 처참할 정도의 혹평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장르만 로맨스’를 역작이나 수작이라고 말하는 것은 호들갑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가 한국 영화의 흐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장르만 로맨스는 배우 출신 조은지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한 상업 장편 영화다. ‘달콤, 살벌한 연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 출연하며, ‘생활 연기의 달인’이라는 평을 받았던 조은지는, 특유의 섬세한 시선과 짜임새 있는 연출로 준수한 데뷔작을 만들어냈다.
천재 소설가로 불렸으나 7년째 글을 단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있는 주인공 현(류승룡 분)은 대학에서 예비 작가들을 가르치며 살아가는 직장인이다. 어느덧 예술인이 아닌 직장인의 삶을 살게 된 그에게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사건이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건의 중심에 선 것은 유진(무진성 분)이라는 이름의 제자. 그의 사랑 고백 앞에 현은 두려움을 느낀다.
이 영화는 얽히고설킨 ‘관계’의 이야기다. 현의 전 부인인 미애(오나라 분)는 현의 친한 친구인 순모(김희원 분)와 사귀는 중이고, 현의 아들 성경(성유빈 분)은 유부녀와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사랑 앞에서 냉정하고 침착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사람이 지닌 감정, 질투와 욕망과 집착, 그리고 초라해지는 순간들을 포착해서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보다 넓은 공감대를 만들어낸다.
코미디를 거두고 보면 ‘참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특유의 재치와 유머로 그 무거움을, 불편함을 깨끗하게 제거하는 솜씨가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퀴어 영화’로서 이 영화가 동성애를 다루는 방식은 놀라움을 준다. 한국 상업 영화에서 이 정도로 세련되게 동성애를 다룬 작품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영화관에서도 충분히 볼 만한’ 로맨스 영화임에 틀림없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35호 (2021.11.24~2021.11.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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