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마와 제네시스..현대차 20년의 교훈

임상균 2021. 11. 2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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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균 칼럼
“한국에서는 이미 단종된 차량 아닙니까? 중국 시장을 무시하는 거 아니예요?”

2000년대 초, 현대차그룹은 기세 좋게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떠오르는 글로벌 메가 마켓인 중국 자동차 시장을 놓쳐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미 내로라하는 자동차 회사들이 중국 시장을 잠식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늦출 수 없었다.

2002년 기아가 베이징에서 첫 신차 발표회를 할 때 현지 취재에 동행했다. 대형 호텔을 빌려 중국 전역의 자동차 담당 기자들을 초대한 성대한 잔치였다. 당시 기아의 첫 차 이름은 ‘천리마’. 한국에서는 단종된 엑센트의 플랫폼을 그대로 가져다 현지 합작사인 둥펑위에다기아에서 생산한 차량이다.

발표회에 참석한 중국 기자들이 주변에 한국 자동차 담당 기자들이 있는 것을 눈치채더니 이런저런 말을 걸어왔다. 핵심은 중국 시장을 무시하지 말라는 요지였다. 천리마의 원형인 엑센트에 대해서는 한국 기자들보다도 더 소상하게 꿰뚫고 있었다. 이제 막 태동하는 자동차 초보국으로 여겼던 현대차 관계자나 동행했던 한국 기자들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단종 모델의 재활용’은 이미 널리 쓰이던 세계 시장 진출 전략이었다. 한국에서는 신생 업체 르노삼성이 일본 닛산의 세피로 2세대 모델을 거의 100% 조립 생산하는 형태로 SM5를 출시해 대박을 냈다. 일본 내수에서 별 인기를 끌지 못하다 1999년 단종된 모델이었다.

현대차는 이런 경험을 중국에 적용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행히 천리마는 중국 시장에 안착했다. 이듬해 중국 소형차 시장 판매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것이 되레 독이 됐는지 모른다. 현대차그룹의 중국 태평성대는 10여년에 그쳤다. 2016년부터 현대기아 중국 판매량은 급감하기 시작했다. ‘사드’ 도입이라는 한중 간 정치적 갈등이 있었지만 전문가들은 다른 데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다.

가격 경쟁력으로 밀어붙이는 중국 토종 브랜드와 아우디 같은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 속에 낀 어정쩡한 위치였다. 2010년대 들어 중국에 SUV 열풍이 불었지만 현대차는 5~6년이 지나서야 SUV 신차를 내놓을 정도로 중국 시장 변화에 둔감했다. 자동차 후진국인 줄 알고 내놓은 천리마가 순항하자 초기 진입 전략에 그대로 안주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중국에서의 실패는 좋은 교훈이 됐다. 중저가 대량 생산에서 모빌리티와 프리미엄 브랜드로의 대전환이다. 제네시스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를 향해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미국 럭셔리 세그먼트에서 점유율은 제네시스가 1.9%로 렉서스 13.4%에 비하면 아직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켈리블루북에 따르면 신차 평균 매매 가격은 올 9월 6만87달러로 렉서스 5만3315달러를 크게 앞선다. 전년 동기와 비교할 때 제네시스 평균 가격은 올 들어 9월까지 29.7%나 상승했다. 벤츠 25.8%, 렉서스 5.8%를 압도하는 수치다.

미래차 경쟁에서도 뒤처지지 않는다. 그룹 차원에서 2025년까지 미래차에 총 6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2030년에는 연 50만대 수소차 생산 체제를 갖추겠다고 한다. 특히 수소 상용차는 주요국 탈탄소화 전략의 핵심 수혜 산업이다. 현대차는 이 부분에서 경쟁 상대가 없는 압도적 위치에 있다.

20년 전 자동차 시장의 미래는 중국이었다. 현대차그룹은 천리마를 들고 갔다 10여년 만에 머쓱해지고 말았다. 다행히 또 다른 미래가 펼쳐진다. 이번에는 중국에서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주간국장 sky221@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35호 (2021.11.24~2021.11.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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