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제네시스..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등극하나

배준희 2021. 11. 2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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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가 첫 전용 전기차 GV60 출시를 계기로 제2의 도약을 노린다.

제네시스는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에 이어 전기차 등으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제네시스는 현대차그룹 이익 기여도를 끌어올려 올 들어 반도체 대란에도 불구하고 그룹 실적을 방어하는 데 제 몫을 다했다. 내연기관에서 모빌리티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면서 라이벌 토요타의 프리미엄 브랜드 렉서스를 맹추격할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다.

▶美서 훨훨 난 제네시스

▷수익성 방어 제 몫 다해

제네시스의 선전 덕분에 현대차는 반도체 공급망 대란 가운데서도 경쟁사 대비 양호한 실적을 올렸다.

지난 3분기 현대차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 늘었고 영업이익은 흑자로 돌아섰다. 이 기간 현대차 판매량이 감소했음에도 영업이익이 비교적 양호했던 것은 고부가가치 차량에 집중한 전략이 유효했다. 기업 이익은 ‘가격(P)×수량(Q)’으로 가늠할 수 있는데 공급망 대란에 따른 Q의 감소를 P의 증가로 만회했다. 이익이 많이 남는 고가 차량 판매 비중이 늘면 Q의 감소를 P의 상승분으로 만회할 수 있어 판매량의 절대 숫자를 늘리는 데 급급하지 않아도 된다.

실제 지난 3분기 현대차의 글로벌 판매량은 반도체 수급난 탓에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9.9% 줄어든 89만8906대였다. 하지만 제네시스와 SUV 등 하이엔드급 차종의 선전으로 수익성 둔화를 방어했다. 지난 3분기 제네시스는 현대차 글로벌 전체 판매량 가운데 5.1%(4만5849대)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3.2%)보다 1.9%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증가세가 뚜렷했다. GV70과 G80의 판매 호조로 올해 제네시스 누적 판매량은 1년 전보다 57% 증가한 14만4000대로 집계됐다. 구자용 현대차 IR담당 전무는 실적 관련 콘퍼런스콜에서 “판매 감소에도 제네시스, SUV 등 판매 비중 확대와 품질 비용 감소로 수익성이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제네시스는 3분기에 이어 10월에도 순항 중이다. 특히 자동차의 본고장 미국에서의 활약이 돋보인다. 제네시스는 지난 10월 미국 내 월간 최다 판매 기록을 갈아치웠다. 현대차에 따르면 지난 10월 미국 내 제네시스 판매량은 총 5300대로 1년 전(1054대)보다 5배 이상 늘었다. 제네시스의 브랜드 포트폴리오가 업그레이드된 덕분이다. 제네시스는 지난해 10월까지 미국에서 G70, G80, G90 등 세단 세 종류만 팔았지만 같은 해 11월부터 SUV인 GV80, 올 5월부터 GV70을 각각 추가했다. 브랜드 성장을 주도한 것은 SUV 차종이다. 10월 GV80과 GV70 모두 1500대 이상씩 팔려 주력 상품 노릇을 했다. GV70은 올 5월 미국 첫 출시 당시 2대 판매에 그쳤지만 10월에는 1869대로 제네시스 차종 가운데 가장 많이 팔렸다.

▶제네시스 vs 렉서스 성장 전략

▷품질 기반 저가 전략으로 침투율↑

제네시스가 브랜드 초반 미국 현지에서 우려 섞인 시선 속에 판매를 시작했던 것에 비춰 최근 성장세는 드라마틱하다. 2000년대 후반 현대차가 미국 본토에서 프리미엄 브랜드 시장에 뛰어들자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자사 브랜드의 평판만으로 상류층 구매자를 설득하려는 도박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제네시스가 벤치마킹하고 자극받았던 모델은 토요타 렉서스다. BMW와 벤츠 등은 그 자체로 프리미엄 브랜드로 평가받는 반면, 렉서스와 제네시스는 일반 브랜드를 기반으로 별도 프리미엄 브랜드를 독립시킨 경우다. 과거 토요타 역시 시장점유율과 매출 등 외형 성장을 중시한 일본 기업의 전형적인 성장 문법을 답습했으나 렉서스 성공으로 고수익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1990년대 초반 토요타 영업이익률은 고작 2%에 불과했으나 2003년 8%대로 도약한 뒤 최근에는 10%대를 기록 중이다. 토요타의 연간 영업이익은 약 25조원으로 글로벌 자동차 업계 1위다. 현대차 역시 고질적인 저마진 구조를 탈피하려 프리미엄 브랜드 시장에 뛰어들었다.

제네시스 성장 전략은 렉서스와 닮은 듯 다른 점이 적지 않다. 제네시스의 브랜드 전략은 모방과 학습을 통한 혁신 전략으로 압축된다.

우선, 렉서스는 철저히 단독 브랜드 전략으로 시장 침투율을 높이는 전략을 쓴 반면, 제네시스는 ‘징검다리 브랜드’를 앞세운 콤비네이션 브랜드 전략을 택했다. 콤비네이션 전략은 기존 익숙한 브랜드 네이밍 아래 새 브랜드를 내놓는 것이다. 기존 유통망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초기 투자비가 적게 든다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프리미엄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쉽지 않고 향후 브랜드 독립 과정에서 ‘카니발리제이션(신제품이 기존 주력 제품 시장을 잠식)’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게 단점이다. 제네시스는 렉서스의 아성이 확고했던 미국 시장에서 단독 브랜드로 포지셔닝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보고 고심 끝에 교두보 성격의 ‘징검다리 브랜드’를 앞세워 프리미엄 시장을 두드렸다.

‘현대 제네시스’로 판매를 시작한 현대차는 미국 대도시의 40~50대 기혼 남성 중 연평균 소득 10만달러 이상인 고소득 직장인을 타깃으로 삼았다. 렉서스가 판매를 시작한 1989년은 미국 베이비부머세대의 소득이 정점에 달한 시절이지만, 제네시스가 판매를 본격화했던 2008년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다. 이 때문에 미국 고소득층에서는 가격 대비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 문화가 확산했다. 이런 이유로 현대차는 준고급차(Near luxury car)로 브랜드를 포지셔닝했다. 하이엔드급 시장에 직진입하기보다 타깃 소비자 특성을 고려해 준고급차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성능과 품질, 가격 전략 등에서는 렉서스와 닮은 대목이 많다. 제네시스는 가격 대비 상대적으로 뛰어난 품질과 성능을 앞세워 기반 판매량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통상 프리미엄 브랜드 도입 초기 저가격을 설정하는 것은 고급차 시장에서 효율적인 침투 가격 전략의 하나로 평가된다. 렉서스 역시 초기 제품 가격을 경쟁 차종보다 1만~2만달러 낮게 책정했다. 저가격 전략으로 탁월한 초기 품질과 감성, 서비스 등에 관한 소비자 경험이 축적되면 이는 곧 브랜드 평판으로 전환된다. 렉서스는 탄탄한 브랜드 평판을 기반으로 저가에서 고가로 가격 전략을 전환했다.

제네시스 역시 이런 수순을 차근차근 밟았다. 뛰어난 품질에 기반한 저가 전략은 주효했다. 제네시스 출범 초반 준고급차보다 한 급 위인 중급 고급차 시장에서 상당수 소비자가 제네시스를 택했다. 덕분에 제네시스의 2009년 미국 상반기 판매량은 전년 하반기보다 17%가량 늘었다. 합리적인 가격과 성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은 제네시스의 프리미엄 전략이 불황기 미국 고소득층 소비자의 구매 심리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최근 제네시스는 저가에서 고가로 가격 전략을 수정 중이다. 미국 자동차평가기관 켈리블루북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제네시스의 평균 가격은 1년 만에 29.7% 올라 상승률 최상위권에 자리했다. 이는 고가 SUV가 라인업에 포함된 영향으로 보인다. 미국 현지에서는 주식, 주택 등 자산 가치가 급등한 데다 구인난으로 임금까지 오르면서 고급차 수요에 불이 붙었다는 분석이다.

제네시스가 SUV 모델을 앞세워 미국 판매량을 빠른 속도로 늘렸다. GV70은 지난 10월 미국에서 1869대가 나가 제네시스 차종 가운데 가장 많이 팔렸다. (현대차 제공)

▶제네시스, 현대차 이익 기여도↑

▷미래 모빌리티서 승부수

제네시스가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였지만 렉서스와 비교해 객관적으로 열세인 것은 사실이다.

미국 자동차산업통계집인 ‘와즈오토모티브 이어북(Ward's Automotive Yearbook)’과 하나금융투자 분석에 따르면 미국 럭셔리 세그먼트에서 제네시스의 점유율은 2016년 1.3%에서 2018년 0.4%까지 줄었다가 올 들어 지난 3분기 누적 기준 1.9%까지 올라왔다. 브랜드 자체 기준 최고 점유율을 기록했으나 아직 렉서스에 비할 바는 못 된다. 렉서스는 2016~2020년 평균적으로 13~14% 안팎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유지했다.

긍정적인 대목은 제네시스의 현대차 이익 기여도 향상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사업부 손익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지만 금융투자 업계는 지난해 제네시스의 현대차 자동차 부문 영업이익 기여도를 20%, 개별 기준 영업이익 기여도를 20% 이상으로 추정한다. 지난해 현대차 연결 기준 영업이익 기여도는 13% 이상으로 추정됐다. 2019년 제네시스의 현대차 자동차 부문 영업이익 기여도가 15%, 연결 영업이익 기여도가 11%로 계산된 것과 비교하면 성장세가 뚜렷하다.

제네시스는 내연기관 차량을 넘어 모빌리티 부문에서 공격적인 성장 전략을 펼 계획이다. 렉서스가 가솔린과 하이브리드 중심 브랜드 포트폴리오가 구축돼 있어 전기차 등 모빌리티 영역에서는 제네시스가 차별화된 전략으로 얼마든지 우위에 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제네시스는 지난 10월 첫 전용 전기차 GV60을 국내 시장에 선보였다. 올해 중국, 유럽 시장 진출을 공식화한 제네시스는 조만간 GV60과 G80 전기차를 유럽 시장에 출시해 고급 친환경차 시장 선점에 나선다. 제네시스는 2025년부터 신차는 전동화 모델만 출시하고 2030년부터 내연기관 판매를 완전히 중단한 뒤 전기차와 수소차만 내놓는다. 반면, 렉서스는 2025년까지 10대 이상의 전기차,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하이브리드(HEV)를 포함한 20대 이상의 신형 또는 개량 모델을 선보인다.

단, 우려 섞인 시선이 제기되는 대목은 제네시스가 렉서스와 달리 사실상 하이브리드 모델을 포기했다는 점이다. 전기차 선호도가 남다른 유럽에서도 실제 판매량은 여전히 하이브리드가 압도적으로 높다. 지난 3분기 유럽 전체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는 10%, 하이브리드차는 30%(플러그인하이브리드 포함)였다. 유럽에서는 2035년 하이브리드를 포함한 모든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할 계획을 세웠는데 실현 가능성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쪽에서는 자동차 산업 의존도가 높은 유럽이 하이브리드 기술력이 뛰어난 일본과 한국을 견제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외 오로지 제네시스 고객만을 위한 판매, 서비스 네트워크 확충과 모델 라인업을 강화하는 것도 급선무다. 고가 SUV 모델이 인기를 끌지만 제네시스 전체 모델 수가 부족해 판매량 확대에 한계가 있다. 적정 수준의 판매량 확대가 뒤따라야 자체 딜러망과 서비스 네트워크 확충을 통한 매출 증가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제네시스는 경쟁력 있는 모델로 고급차 시장에서 자리를 잘 잡았다”면서도 “해외 시장에서도 성공하려면 제네시스만의 별도 전시장, 서비스센터, 영업망을 갖춰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배준희 기자 / 그래픽 : 정윤정]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35호 (2021.11.24~2021.11.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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