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교수'가 불붙인 집단면역 논쟁..유럽은 방역 '고삐'

이유정 2021. 11. 2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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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코로나 정책이 시행 중인 영국 런던의 시민들이 지난 9월 타워브리지 인근 템스강변에서 햇살을 즐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사실상 집단 면역에 이르렀다.” “코로나19는 집단 면역을 말하기엔 아직 정보가 부족하다.”

지난 7월 19일 코로나19 자유의 날“을 선포한 영국에서 집단 면역에 대한 논쟁이 과학자들 사이에서 다시 고개 들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19 초반부터 영국 정부의 정책 자문을 주도한 닐 퍼거슨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대 교수의 “영국은 집단 면역에 가까워졌다”는 발언이 발단이다.

퍼거슨 교수는 전날 국제 언론 간담회에서 오스트리아, 독일 등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있는 유럽 대륙 국가들과 비교해 “영국은 느린 확산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7월 봉쇄 해제 이후에 너무 많은 영국인들이 감염 돼 전체 인구가 더 큰 면역력을 갖게 됐다”며 “어떤 의미에서 집단 면역 상태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퍼거슨 교수는 지난해 초반 영국 정부의 코로나19 봉쇄 정책을 주도해 ‘락다운 교수(Professor Lockdown)’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같은 해 5월 봉쇄 기간 정작 외부 손님을 집에 초대해 방역 수칙을 어긴 사실이 드러나며 정부 자문역에서 사임했다. 그는 이후 정부의 비상사태를 위한 과학자문위(SAGE)에 복귀했으며, 여전히 정부 정책에 영향력을 끼치는 감염병 권위자로 꼽히고 있다.


“英확산세 느려, 집단 면역” VS “아직 아냐”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24일(현지시간) 마스크를 착용한 채 다우닝가를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반면 다른 전문가들은 영국의 높은 감염률은 곧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 면역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반박한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의 글로벌 공중 보건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데비 스리다르 교수는 NYT에 “(퍼거슨의 발언은) 과감한 발언”이라며 “‘집단 면역 신화’에 도달했는지를 평가할 만한 데이터가 충분치 않다”고 반박했다. 그는 “코로나는 아직까지 모든 사람이 감염돼 회복 혹은 사망했거나, 모든 사람이 백신을 맞았을 때가 아니면 집단 면역을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일축했다.

반면 퍼거슨 교수는 “집단 면역은 ‘모 아니면 도(all or nothing)’인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며, 감염자 수(그래프)를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미 미네소타주 로체스터의 메이오 클리닉에 따르면 집단 면역은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면역력을 가져 대인 전파력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면역력을 갖지 않은 사람까지 보호된다는 가설이다.

스리다르 교수는 “델타 변인의 급속한 확산세를 볼 때 영국에서 집단 면역 여부를 판단하려면 내년 2월까지는 가 봐야 알 수 있다”며 “그동안 영국의 병원 병상 수가 충분할 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집단 면역 기준 60%→85%→불가능?


올초 런던 킹스 칼리지 병원의 집중치료실인 크리스틴 브라운 병동에서 의료진들이 COVID-19 환자를 눕히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 정부가 7월 코로나19 제한 조치를 완전히 해제했을 때 한 쪽에선 “집단 면역 실험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가 있었다. 정부는 부인하고 있다.

코로나19 집단 면역 가설은 지난해 3월 영국 정부의 수석 과학 고문 패트릭 발란스 경이 처음 제시했다. 정부가 일정 수준의 확진자 규모(전체 인구의 약 60%)를 용인한다는 의미여서, 발란스와 영국 정부는 엄청난 비판 여론에 시달려야 했다. 이후 영국 정부는 적어도 공식 입장으로 집단 면역 전략을 취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고 있다.

집단 면역의 명확한 기준점을 잡기 어렵다는 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 팬데믹 초반 만해도 과학자들은 코로나19 백신이 출시 돼 인구의 60% 정도가 백신 접종을 하면 집단 면역이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에는 85% 혹은 그 이상으로 전망치를 수정하는 추세라고 NYT는 전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는 집단 면역이 불가능하다”는 비관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백신 맞아도 방역 수칙 지켜야”


프리티 파텔 영국 내무부 장관이 백신 접종을 받는 모습. [AP=연합뉴스]
과학자들이 코로나19와 관련해 간과했던 변수는 두 가지였다. 계속해서 얼굴을 바꾸는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과 백신의 효능이 시간이 갈 수록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코로나19 증상을 추적해 온 킹스 칼리지 런던의 팀 스펙터 유전 역학 교수는 “코로나19의 새로운 변인들은 정말 알 수가 없다”며 “백신은 부분적으로 효과가 있지만, 사람들마다 효능이 떨어지는 기간도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집단 면역에 관한 초기 예측은 완전히 잘못 됐으며, 전제 조건과 가정이 계속 수정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당분간은 백신과 방역 수칙 준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가져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와 관련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24일 “백신을 맞았어도 여전히 다른 사람을 감염 시킬 수 있다”며 “‘백신이 대유행을 종식시켰고, 접종 받은 사람들은 다른 예방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다’는 안전 불감증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WHO는 델타 변이가 출현하기 이전 백신 접종은 바이러스 전파를 60%까지 막을 수 있었지만, 델타 변이 이후 차단율이 40%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슬로바키아 전면 봉쇄, 이탈리아 '슈퍼 패스' 도입


지난 2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북부의 한 스키장에서 이용객들이 '그린 패스'를 보여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는 유럽 각국은 속속 방역 대책을 수정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 이어 슬로바키아 정부도 25일부터 전국적인 봉쇄 조치에 들어갔다.

이탈리아는 내달 6일부터 백신 미접종자의 공중 시설 출입을 막는 ‘수퍼 그린패스’를 도입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완치자나 백신 접종자만 식당·영화관·스키장 등에 들어갈 수 있고, 코로나19 음성테스트 증명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독일의 ‘2G 정책’과 유사한 방식이다.

사회민주당 주도의 ‘신호등 연정’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는 독일은 취약 계층을 돌보는 집단에 백신 접종을 의무화 하는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처럼 전면 봉쇄 조치를 시행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덴마크 역시 24일 대중교통 시설과 수퍼마켓 등 다중 시설에서 마스크 의무화를 다시 도입하겠다고 발표했고, 프랑스ㆍ네덜란드 정부는 조만간 새 방역 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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