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의 넥스트 레벨, 리움미술관이 다시 열렸다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예술 작품들을 소장한 리움미술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기획전인 ‘인간, 일곱 개의 질문’ 전시와 함께 리움답게 새로 꾸민 리움의 공간도 화제가 되고 있다. 이전보다 문턱을 더 낮추고, 작품이 돋보이도록 리뉴얼을 마친 리움미술관으로 미술과 공간 여행을 떠나 보자.
리움미술관(이하 리움)이 2020년 3월 휴관 이후, 1년 7개월 동안 전시와 공간의 리뉴얼을 마치고 다시 문을 열었다. 2004년 서울 한남동에 개관한 이후 수준 높은 소장품 전시와 기획 전시 개최 등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사립 미술관으로 성장해 온 리움의 재개장에 대한 국내외 미술계의 관심은 대단했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후, 감정가 1조 원이 넘는 국보와 보물·문화재 60건 등 나라에 기증한 ‘이건희컬렉션’을 전시할 건물 부지가 오랜 논의 끝에 최근에 종로구 송현동으로 결정되는 등 삼성문화재단의 행보가 화제의 중심에 있다 보니 리움의 재개장에 국내외 미술계의 관심이 리움으로 쏠리는 건 당연했다.
한남동의 리움과 용인의 호암미술관 리뉴얼 작업을 총괄한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전 세계의 창의적인 작품들이 모여 있는 리움의 리뉴얼은 그 작품들이 돋보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리움 자체가 창의적인 공간이 되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전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리움이 리움했다’. 마리오 보타, 렘 쿨하스, 장 누벨 등 세계적 건축가 세 명이 세운 건물의 의도를 한껏 살려 다시 꾸민 공간 디자인은 로비부터 키즈 랩까지 새로우면서도 리움 스타일을 공고하게 했고, 기원전 고미술품부터 21세기의 미디어 아트까지 아우르는 콘셉트의 MI(Museum Identity)는 미술관 전체에 리움다운 일관성을 보여 준다. 자, 새 리움으로 들어가 보자.
▶광장이 된 로비
심볼의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듯 미술관에 들어서면 마치 신전 같은 느낌의 로비가 나온다. 리움의 로비는
세 건축가가 디자인한 미술관의 세 건물을 이어 주는 공간이다. 미술관의 입구로서 상징적 역할을 하면서 세 건물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공간이기에 마리오 보타가 디자인한 로톤다(원형 건축물)의 역할은 미술관의 심장과도 같다. 2층부터는 나선형 계단으로 이뤄졌지만 로비에서는 둥근 천창과 중간 창문들만 보인다. 지금은 김수자 작가의 ‘호흡’을 설치해 햇빛이 비치면 로톤다 안팎으로 무지개 스펙트럼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이 로톤다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노션아키텍처는 고대 종교 건축에서 착안해 공간을 정리하고, 구심점을 강조하기 위해 로톤다를 중심으로 검은색 기둥을 여러 개 세우고, 기둥마다 조약돌 모양의 벤치를 설치했다. 로톤다 천장으로부터 들어오는 자연 채광과 실내의 인공 조명이 조화를 이루면서 전시품들을 관람하는 데 조명이 도움이 되도록 한 ‘비츠로’의 작업으로 관람하는 내내 눈이 편안하다.
로비를 구경하다가 구수한 커피 향기에 끌려 로비 왼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벽감처럼 보이는 곳에 ‘챔프커피’가 있다. 각자 다른 일을 하던 삼형제가 뜻을 모아 만든 커피 브랜드로 공들여 커피를 내린다. 그 옆에 자리한 ‘리움스토어’는 단정한 공간 꾸밈부터 상품 기획까지 미술관 아트숍의 새로운 전범이 될 듯하다. 리움의 로고와 심볼로 장식한 리움 굿즈들도 있지만 전통 공예의 맥락에서 현대적 감성을 보탠 국내 공예가들의 소품들로 채워져 있다. 예술적 안목으로 세계적 파인 아트 수준으로 한껏 끌어올린 가성비 좋은 공예품을 구매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고미술과 현대 미술의 유연한 만남
고미술품 전시장은 동그랗게 설계된 동선을 따라 사면에서 관람할 수 있는 유리 케이스를 띄엄띄엄 설치해서 관람객이 많아도 전시품을 하나하나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특히 고려 청자실에는 바이런 김의 청자 빛깔 작품, 분청실에는 박서보의 작품, 고서화실에는 윤명로의 작품, 불교 유물실에는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 등을 교차 전시해 관람객에게 깊은 사유를 이끌어 내게 한 시도가 돋보였다.
고미술품 전시장을 나서면 계단에 올라퍼 엘리아슨의 ‘중력의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LED로 형상화된 태양계 행성들 천장과 벽면에 설치한 거울로 인해 착시 현상을 일으켜 완결된 구형으로 보이는 작품이다. 공간 전체가 노란 빛을 띠면서 거울로 공간이 무한 확대되는 듯 착시가 일어나 환상적인 작품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공간을 놓치지 말 것!
현대 미술 소장품들은 장 누벨이 디자인한 블랙 스테인리스 스틸 건물인 M2에 전시 중이다. 장 누벨은 먼저 남산 끝자락이라는 자연 환경을 반영시키기 위해 부지를 더 파서 지하 공간을 확보하고, 거기서 나온 돌은 쇠로 만든 망태에 채워 벽면을 정리했다. 덕분에 전시장에는 자연광이 들어오고 돌 망태 앞에 심은 자작나무들로 갤러리가 마치 숲 속 같은 느낌이 난다. 외부 벽면은 블랙 스테인리스 스틸을 부식시켜 검고 투박한 분위기를 냈고, 내부에는 기둥 없이 사각형 큐브를 여러 개 설치했다. 전시 내용에 따라 공간 구성을 바꿀 수 있다는 게 이 전시장의 특징이다.
이 공간의 힘을 살려 지금은 ‘검은 공백’, ‘중력의 역방향’, ‘이상한 행성’이란 제목으로 1910년대 이후의 한국 근현대 미술부터 동시대 국제 미술 작품들 중 리움의 안목으로 고른 작품들을 전시 중이다. 2층의 블랙 큐브들 안에는 윤형근, 서세옥, 정상화 등 단색화 화가들의 평면 작품들과 리처드 세라, 토니 스미스, 루이스 부르주아 등의 조각들이, 1층에는 로버트 어윈, 이불, 아니쉬 카푸어, 댄 플래빈 등의 소품들이, 지하 1층에는 올라퍼 엘리아슨, 살바도르 달리, 최우람 등의 대표작들이 전시 중이다.
▶자코메티, 곰리, 시걸로 입구부터 압도하는 기획전 ‘인간, 일곱 개의 질문’
1층에는 론 뮤익의 ‘마스크’를 시작으로 주명덕과 육명심의 흑백 초상 사진들, 이브 클랭의 몸으로 그린 ‘대격전’, 잔 다르크를 연상시키는 로버트 롱고의 작품과 데미안 허스트의 12사도 연작 중 일부, 21세기의 편견과 차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신디 셔먼의 작품, 관계에 대해 깊숙하게 파고드는 요안나 라이코프스카의 동영상 작품, 니키 리와 정연두의 사진들이 현재 우리의 모습과 관계를 보여 준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모든 미술관이 사전 예약제를 실시하고 있는 시점이고 무료 입장 기간이라서 매일 자정에 열리는 티켓 예약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매일 자정에 2주 후 날짜의 예약분이 열릴 때 예약에 성공해야 한다. 리움 멤버십에 가입하면 리움/호암미술관 방문 시 예약 없이 상시 입장과 함께 다양한 할인과 부가 혜택이 주어진다.
※ 리움 프렌즈: 연회비 10만 원, 본인만 무료 입장 / 리움 패밀리: 연회비 30~50만 원, 본인+3명 무료 입장
[글과 사진 신혜연(헤이컴 대표, 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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