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 엄마 스트레스, 태아 '이곳'에 남는다

이슬비 헬스조선 기자 2021. 11. 25. 08: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산모 스트레스, 태아 뇌에 영향 줘
스트레스 전달됐는지, 젖니 성장선으로 확인 가능
임신 중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은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뇌 발달이 느려질 수 있다.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았는지는 젖니 성장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산모가 임신 중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그 흔적은 태아에게 평생 남는다. 유산 위험이 커지고, 발달이 덜 된 상태로 태어나기도 하며, 건강하게 태어났어도 신경학적 손상으로 다른 아이들보다 사회성이 떨어질 수 있다. 차후 우울증에 걸릴 위험도 크다. 그러나 호르몬 변화로 신체적, 정신적 변화가 일어나는 임신 중에 아예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산모의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전달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면, 전달된 아이에게 예방 치료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산모의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전달됐는지 확인할 방법이 나왔다. 산모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수록 태아의 젖니 성장선(growth lines)이 더 넓은 것으로 보고됐다. 치아 성장선은 마치 나무 나이테와 같은 것으로, 이전 법랑질과 새로 성장한 법랑질 사이 생긴 선이다. 넓은 젖니 성장선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 어떤 예방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엄마 스트레스, 아이 뇌에 흔적 남겨

예방 치료 얘기가 나올 만큼 산모 스트레스는 태아에게 큰 부작용을 준다. 가천대 길병원 산부인과 전해린 교수는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은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신체적, 정서적 변화를 겪는다”며 “뇌 발달 저해, 면역력 감소, 차후 우울증 발병 위험 증가, 조산 위험 증가 등 여러 합병증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국 에든버러 대학 연구팀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산모에게서 태어난 태아는 뇌 발달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뇌 MRI 영상 분석으로 증명했다. 임신 중 코르티솔 수치가 높은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기는 뇌 속 편도체 구조와 신경 연결망이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편도체는 사회 행동과 감정을 담당하는 뇌부위로, 아이의 행동 발달, 감정 조절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편도체 기능이 떨어진 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면, 자폐증, 조현병, 양극성 장애(조울증), 우울증 등 정신장애 발병 위험이 커진다. 산모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관련 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에, 아이에게 영향 가기 쉽다. 전해린 교수는 “임신 중 스트레스를 받으면 태반과 태아 세포가 자극받아 부신피질자극호르몬 분비호르몬(CRH) 생성이 증가한다”라며 “이 호르몬은 자궁수축을 유발할 수 있는 프로스타글란딘 생산을 향산해 조산 발생뿐 아니라, 태아의 호르몬 수치, 신체 발달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태아 치아 보면 산모 스트레스 보인다

A는 유치 주요 조직, B는 젖니 성장선, C는 현미경으로 확인한 젖니 성장선./사진=자마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

최근 미국 하버드대 의대 메사추세츠 제너럴 병원(MGH) 소아청소년과 에린 던(Erin Dunn) 박사 연구팀이 태아가 모체 내에서 스트레스를 전달받았다면, 그 흔적이 젖니 성장선으로 남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에이번 부모·자녀 종단 연구(ALSPAC)’에서 만 5~7세 아동 70명의 앞니를 지원받았다. 해당 치아는 부모가 저절로 빠진 자녀의 젖니를 연구용으로 기증한 것이다. 연구팀은 아동의 엄마에게 아동 발달에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4가지 요인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연구팀은 젖니의 성장선을 현미경으로 측정한 결과와 설문 조사 결과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임신 32주 차에 우울증 또는 불안증을 겪었거나, 우울증 등 정신 질환을 평생 심하게 앓았던 여성의 자녀는 젖니 성장선 폭이 그렇지 않은 여성의 자녀보다 넓었다. 반면, 임신 직후부터 사회적 지원을 많이 받은 여성의 자녀는 젖니 성장선 폭이 대체로 좁았다. 젖니 성장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요인인 임신 중 철분량, 잉태 연령(임신부터 출산까지 걸린 시간), 산모의 비만 여부 등을 고려해도 유의한 결과였다. 치아 성장선은 영양 부족이나 질병으로 신체적 스트레스가 치아의 법랑질(에나멜질) 형성에 영향을 미쳐 생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던 박사는 “아기를 가진 여성에게 우울증이나 불안증 등이 생기면 일명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코리티솔 분비가 늘어난다”며 “이 호르몬이 태아에 전달돼 태아 치아의 법랑질 생성 세포를 교란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유발하는 전신 염증 반응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번 연구는 젖니 성장선 너비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면, 차후 아동의 정신 건강 지표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던 박사는 "가능하면 이른 시기에 우울증 고위험군 어린이에게 치료적 개입을 해 정신 건강 질환이 생기는 걸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방 치료, 태아와 함께 엄마 먼저

젖니 성장선을 보고 실제로 예방 치료 효과를 낼 수는 있을까?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배승민 교수는 “젖니 성장선이 실제로 지표로 사용할 수 있을지 좀 더 대규모 실험으로 증명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면서도 “가능하다면 상담과 관리가 필요한 아이들을 조기 선별할 수 있는 도구로 치료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고위험군 아이를 선별하면, 부모에 대한 개입이 이뤄질 수 있다. 배승민 교수는 “임신 중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나 우울증을 겪은 엄마는 아이가 자랄 때 성장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엄마의 정신건강의학적 치료가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싱가포르 난양 공과대 연구팀에 따르면 스트레스가 적은 엄마일수록 자녀와 공감력이 뛰어나 관계 악화로 이어지는 비율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배승민 교수는 “소아 우울증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우울증 증상과 달라 알아채기 힘든데, 고위험군 아이를 볼 때 증상이 있는지 판단할 수 있게 보호자를 교육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아 우울증은 우울함, 불안함을 호소하는 성인 우울증과 달리 본인은 우울한지 모른 채 짜증이 늘거나 감정 조절이 불안정한 형태로 나타난다.

한편, 예방 치료는 최근 미국에서도 주목하는 분야다. 차후 의료기관 이용률과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 조기에 치료하는 도구들이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다.

◇산모, 임신 중 스트레스 관리법은?

무엇보다 산모의 정신건강이 결국 가장 중요하다. 산모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온몸이 붓고, 몸무게가 느는 등 겉모습의 변화가 나타나고, 소화가 잘 안 되거나 잦은 요의를 느끼는 등 신체 내부 변화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 생명이 태어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본인은 당연하고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서라도 스트레스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평소 명상, 이완, 음악 등으로 일시적인 스트레스 감소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요가나 가벼운 유산소 운동처럼 가능한 정도의 신체활동을 하는 것도 좋다. 전해린 교수는 “규칙적인 식습관 등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취미 생활을 적극적으로 찾는 것도 도움이 된다”며 “무엇보다 임산부와 함께 있는 보호자, 가족의 지지해주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스트레스 상태가 조절이 안 될 정도로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정신건강의학과를 비롯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며 “지자체별로 난임·우울 센터에서도 임신 중 상담은 물론, 산후까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 Copyrights 헬스조선 & HEALTH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헬스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