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호 특별기고] 고도비만 수도권, 영양실조 지방..말뿐인 지역균형발전

2021. 11. 25.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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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된 마산 향토기업 ‘무학소주’의 절규


수도권 인구가 지난해 50%를 돌파하면서 ‘고도비만’ 증세를 보이고 있지만, 지방은 인구 이탈이 가속되면서 소멸 위기를 호소하고 있다. 공룡 수도권의 중심인 서울은 부동산값 폭등 등의 부작용으로 성장 동력이 떨어지고 있어 지역균형발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정상 체중 보유자를 ‘건강한 사람’으로 분류한다면, 지금 수도권은 고도 비만사회에서 초고도 비만사회로, 비수도권은 저체중에서 영양실조 단계에 이르고 있다 봐야 한다. 수도권 인구 집중이 극심해지면서 1990년 42.8%였던 수도권 인구 비중이 2015년엔 49.5%로 뛰었고, 2020년에는 50%를 넘어섰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당초 예측한 2040년을 20년이나 앞당겨 달성하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공룡 수도권의 몸집은 지금 이 순간에도 더 불어나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00대 기업의 본사 중에 753개(75.3%)가 수도권에 있다. 이들 기업의 매출액이 전체의 86.3%를 차지하고 있다. 지방 산업단지에 부과하는 각종 세제 혜택을 노릴 목적으로 본사만 지방에 두고 실질적인 경영과 영업 활동을 수도권에서 진행하는 기업까지 포함하면 90%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 1000대 기업 75%가 수도권 집중
수도권 규제 풀자 지방 소멸 가속
비수도권엔 소득세 차등할 필요
떠나간 청년, 지방 유턴 유도해야

생산-소비 모두 불균형 심각해져

기업뿐 아니라 인구도 50%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의 신용카드 사용액이 전 국민 사용액의 72.1%를 차지한다. 기업의 생산과 국민의 소비라는 두 측면에서 수도권의 집중 현상은 우려 수준을 넘어 매우 심각한 상태다. 이는 결국 지방소멸로 귀결되고 국가 경쟁력과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물론 수도권에 양질의 서비스가 몰려 있고 다양한 일자리와 문화 혜택이 널려 있어서 지방 청년들의 수도권 이동이 증가하는 현상을 비판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수도권 과밀과 지방 소멸의 폐해를 수수방관하면 안 된다.

신자유주의는 특정 지역과 특정 기업의 발전과 성장을 통해서 나타나는 파급효과와 낙수효과를 통해 모두 다 같이 잘살게 될 것이라고 역설해왔다. 하지만 수도권은 구직난과 인구과밀로 인한 비경제적 비용의 증가와 부동산값 폭등 같은 많은 사회적 문제점을 초래했다. 반면 비수도권은 구인난과 소비 위축으로 인한 지방소멸이 가속하고 있다. 이제는 국가적 폐해가 된 수도권 집중을 반드시 해결해야 할 상황이 됐다.

지역균형발전은 아주 기초적인 삶의 질을 마련해주면서도 지역의 특성을 충분히 살려 성장 경로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균형발전은 형평성과 효율성이라는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과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역대 정부 모두 균형발전이란 화두를 정책의 주요과제로 선정해 국토균형발전, 지역균형발전, 지역발전 등 단계별 전략을 수립해 실행해 오고 있다.

혁신도시 건설, 공공기관 지방 이전, 기업 유치와 창업 지원을 통해 지역인재의 채용을 확대하고 정주(定住) 여건을 개선하겠다는 거시적인 사업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지방이 처한 상황을 보면 외과적인 수술보다는 실질적인 세제 혜택과 즉시 실행 가능한 내과적인 수술의 병행이 시급하다.

2011년에 시행했던 수도권 공장 총량제, 대형건물 과밀 부담금제 등 수도권 팽창 억제 조치가 2018년에 폐지됐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사업 등이 2019년에 종료된 이후 수도권으로의 인구 이동이 더 빨라지고 있다.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49만4723명 중 56.3%가 20~30대다. 그만큼 지방 입장에서 보면 청년 인구의 유출이 더 심해지고 있다.

지방대 졸업생 60% 지방에 정착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자원은 인재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벗어나 이 정도로 잘사는 나라로, 그리고 선진국 문턱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부모 세대의 엄청난 교육열 덕분이다. 그런데 어렵게 키운 인재가 수도권으로만 집중된다면 지방은 머잖아 소멸할 것이다.

교육을 위해 수도권에 진학한 학생들의 대부분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지만, 지방 소재 대학 졸업자의 약 60%는 지방에 정착한다는 분석이 있다. 진학을 위해 지방 인구가 유출되면 지방대학의 경쟁력 약화와 지방기업의 인력난이 초래된다. 이는 다시 지방 인구가 감소로 이어져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런 측면에서 지방기업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통해 청년 인구가 지방으로 다시 유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책 당국은 지역균형발전과 청년의 지방 유치를 위해 비수도권 기업에 대한 파격적인 정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첫째, 지방에 기반을 두고 지방경제 발전의 초석으로 활동하고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활동 기간을 고려해 세제 혜택을 줘야 한다. 예컨대 기간별 법인세와 지방소비세 세율 차등 적용과 지역 장수기업에 대한 세액 감면 혜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행 법인세율(25%)에 따라 2020년 기준 지역별 법인세 징수액은 55조5132억원이다. 이 중 수도권이 39조 8240억원으로 71.7%를 차지하고 있다. 지방은 겨우 28.3%를 차지한다. 만약 지방기업의 법인세를 지금보다 5%만 감면해준다면 소요예산 비용은 7794억원이다. 2022년도 지역균형발전 예산편성액 52조원을 활용할 경우 재원확보도 충분할 것이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방의 각종 세제 혜택이나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을 목적으로 무늬만 본사를 지방에 두고 기업 규모에 걸맞은 지역사회 공헌 활동이 거의 없는 기업은 지원대상에서 배제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끝낼 게 아니다. 오랜 기간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공헌활동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온 지방 장수 기업에 대해서는 운영 기간별 법인세 및 지방세율을 추가로 감면해줘야 한다. 지방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지역의 대표기업으로 성장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비수도권 소재 기업 근로자에 대해서는 근로소득세 세율을 차등해 적용해 줘야 한다. 지방 기업의 장기근무자에게 세액 감면도 필요하다. 수도권 근로자보다 문화적 혜택이 적고 각종 사회 인프라의 이용 기회가 적은 이들이 치르는 기회비용을 고려해줘야 한다. 지방 거주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해 근로자의 지방 정착을 유도하면 가처분소득 증가를 통한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지방의 인구 유입과 출산율 제고 등 정책 목표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정부 조직에 가칭 ‘지역균형발전부’를 신설해 2003년 출범한 지역균형발전위원회를 실질적인 정책 입안과 집행이 가능하도록 조직을 재편해야 한다. 지방 기업의 경쟁력 확보와 청년 유치,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한 사업을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수도권 역차별 요소 살펴야

특히 상대적으로 비수도권에 있다는 이유로 발생하는 역차별과 비용의 증가요소 등이 있는지 잘 살펴 문제점을 발굴하고 시정하며 정책에 반영하는 등의 활동을 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지방 기업의 부담을 가중한 회계감사 규제를 손질해야 한다. 그동안 지방 기업은 기업 소재지 인근에 있는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아왔다. 하지만 투명성 제고와 견제 강화를 이유로 금융감독원이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함에 따라 지방 기업은 지방 회계법인의 감사 3년이 지나면 수도권 소재 회계법인의 지정 감사를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지방 기업은 체재비와 출장비 등을 종전보다 2~3배 이상 부담하게 돼 경쟁력이 약화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이나 환경 관련 측정·평가 등 조사연구기관과 시험기관 등이 대부분 수도권에 있다. 이 때문에 지방 기업들은 추가적인 출장비 부담 등으로 시간과 비용적인 측면에서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 이처럼 각종 인프라의 수도권 집중에 따른 문제점을 찾아내 지방 사무로 이관하는 행정적·제도적 개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역균형발전부는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위치해야 한다.

지방 사람들은 과거 수도권 집중화에 대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 시행했던 수도권 공장 총량제, 대형건물 과밀부담금 부과 등과 같은 제도의 부활도 필요하다. 전북 김제, 경북 상주의 경우 평균연령이 50세다. 이들 지역에서는 신생아가 하루에 한 명꼴도 태어나지 않고 있다. 서울은 주거 문제 등 여건이 충족되지 않아서, 지방은 청년이 없어서 인구절벽이 생기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지역균형발전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이해다툼과 투쟁으로 인식해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이 뉴노멀인 시대다. 수도권은 성장 동력이 많이 떨어져 있고, 특정 지역의 과도한 성장이 국가 전체의 성장을 견인하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도 이제는 지방과 연계하고 협력할 때 궁극적으로 지속적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

중앙과 지방정부, 정치권을 비롯해 경제계와 시민단체는 다시 한번 이런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수도권과 지방이 갈등하는 투쟁의 역사를 끝내고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수도권 공화국’이란 오명을 씻어내고 ‘다 함께 대한민국’으로 새롭게 태어나길 간절히 바란다.

최재호 (주)무학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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