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음식 추억 말할 때 맛보다 중요한 '이것'

한재동 2021. 11. 24. 14: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오래] 한재동의 아빠는 밀키트를 좋아해(2)


밀키트를 만들어 먹는 상황은 매우 다양하다. 혼밥을 해도 이왕이면 제대로 된 요리를 먹고 싶을 때, 밀키트에 나오는 유명 레스토랑에 가고 싶지만 시간도 돈도 여의치 않을 때, 정해진 양의 재료만 구매해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 않을 때. 그리고 나의 목적은 요리실력은 없지만 다양한 음식을 가족과 함께 만들어 먹으려는 것이다. 다양한 제조사에서 다양한 음식의 밀키트가 쏟아지고 있다. 밀키트로 만들려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와 그걸 만들어 먹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으려고 한다. 〈편집자〉

감바스 알 아히요

스페인 음식을 처음 먹어본 것은 서른 살이 넘은 이후였다. 그때까지 스페인에 대해 들어본 것이라고는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FC’ 그리고 패션 브랜드 ‘ZARA’ 정도였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다는 스페인 음식점에 아내와 함께 가봤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빠에야라는 볶음밥이 맛있다고 해서 시키려 했는데, 삼만 원이 넘는 가격이었다. (알고 보니 2인분이었다) 그나마 시켜볼 만한 가격대로 눈이 내려가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감바스 알 아히요’였다.

채소에 새우를 볶은 것이니 무조건 중간은 하겠지 싶어서 시켰다. 첫 느낌은 생각보다 맛있고 매우 양이 적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식당 직원이 애피타이저에 가까운 요리라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올리브유가 짭짤한 것이 허락한다면 사이드 메뉴인 빵을 몇 번이고 추가하고 싶었다. 첫 만남 덕에 내게 스페인 요리는 비싸고 양이 적은 음식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스페인 요리 감바스 알 아히요. [사진 Unsplash]


비싼 스페인 요리지만 밀키트로 저렴하게 해 먹을 수 있다. 마감 세일은 밀키트 구매의 최고의 타이밍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밀키트의 경우 당일 소진은 아니기 때문에 저녁 무렵의 타임세일은 없지만, 유통기한에 따른 할인이 가능하다. 하루 이틀 남겨둔 제품의 경우 20~40%까지 할인율이 적용된다. 사실 밀키트를 쟁여두는 경우는 많지 않다. 거의 바로 조리하거나 길어도 3일을 넘기진 않는다. 그래서 나는 할인하는 밀키트를 보면 잘 지나치지 못한다. 사실 감바스 알 아히요 밀키트를 발견한 것도 할인 덕분이다. 유통기한이 임박해 40% 할인을 하니 만원도 되지 않는 가격이었다.

밀키트 내용물을 보면 시즈닝과 로즈마리 정도를 제외하면 쉽게 접하던 재료들이다. 밀키트치고는 정가가 비싼 편인데, 알이 통통한 중새우 13마리가 들어있는 걸 보면 비싼 가격이 수긍되는 면도 있다. 바게트의 경우 동네빵집에서 구매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크기가 작을뿐더러 얇게 빵을 써는 일이 쉽지 않다. 집에 빵칼이 없어 식칼로 시도하다 도저히 안 돼서 가위로 비스듬히 잘랐더니 모양이 내가 알던 바게트가 아니었다.

■ 레시피

① 새우를 깨끗이 씻고 꼬리를 제거한 다음 키친타월로 물기를 제거한다.
② 바게트를 먹기 좋게 썰어 마른 팬에 굽거나(2분) 전자레인지에 돌린다(30초).
③ 파우치에 있는 올리브유를 넣고 마늘을 중불에 2분간 볶는다.
④ 새우 및 새송이버섯, 브로콜리, 로즈마리, 베트남 고추를 넣고 중불에서 2분간 볶는다.
⑤ 준비된 시즈닝을 넣고 중불로 2분간 더 조리하고 마지막에 엑스트라버진오일과 레몬을 넣는다.

조리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러나 걸리는 게 있다. 바로 새우다. 새우를 어디까지 손질할 것인가? 밀키트에 들어있는 중새우는 껍질은 제거되어 있고 설명서에는 꼬리 쪽 물총을 제거하고 조리하라고 한다. ‘꼬리 제거’만이면 손질 과정이 매우 간단하다. 그러나 인터넷을 찾아보니 배 쪽 내장을 제거하고 먹는 사람이 많다. 쓴맛이 나고 배탈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에도 권위 있는 전문가의 지침은 없으나 뭔가 꺼림칙해 이쑤시개로 제거했다. 여기서 품이 많이 들었다. 조리설명서에는 별도로 내장 제거에 대한 말은 없다. 그대로 한다면 설명서 대로 15분 내 요리 완성이 가능하다. 내장 제거를 한다면 딱 2배 더 걸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포장 속 요리와는 살짝 다르게 나온 결과물. [사진 한재동]


어린 딸에게 주기에는 밀키트에 든 시즈닝이 상당히 매콤했다. 딸에게는 나이에 맞는 저염 반찬을 주고 감바스는 아내와 둘이서 먹게 되었다. 결혼 전 스페인 식당에서 같은 음식을 두고 마주 앉았던 장면이 겹쳤다. 데이트한다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처녀, 총각에서 지금은 한 지붕 아래 편안한 차림의 엄마, 아빠다. 무엇보다 이제는 둘이 아니라 셋이다. VIP가 우리 부부 가운데 앉아계신다.

가끔 이렇게 음식을 계기로 추억이 꺼내어질 때가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맛’은 그다지 중요한 추억 요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예전 식당에서 먹었던 값비싼 감바스의 맛은 솔직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맛보다는 오히려 그때의 기분과 분위기, 사소하지만 재미있던 해프닝이 더 또렷이 기억난다. 다음에 또 감바스 알 아히요를 먹을 때는 아내는 오늘의 어떤 것을 기억할까? 아마도 어설프게 새우 내장 제거하던 남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직장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