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매릴린 먼로 선인장

2021. 11. 24.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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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선인장을 기른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 꽃까지 피워볼 계획으로 선인장과 대화도 시도하며 정성스레 애정을 쏟았다.

집에 놀러 오는 손님마다 먼로 선인장을 보고 한마디씩 건넨다.

밖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먼로 선인장 이야기를 들려주면 흥미를 갖고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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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하 시인


난 선인장을 기른다. 뾰족한 가시와 느리게 자라는 속도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친구가 선물해줘서 기르고 있다. 선인장은 참 심심한 식물이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아무런 변화가 없다. 봄이라는 이유로 꽃 피우지 않고 가을이라는 이유로 색이 바래지 않는다. 그저 무던히 창가를 지킬 뿐이다. 태양이 뜨거운 제주도에 데려가 기르면 조금이라도 달라질까 싶어서 제주도로 이사하던 날 데리고 갔었다. 영화 ‘레옹’의 마틸다처럼 화분을 옆구리에 끼고 비행기 탔던 날을 못 잊는다.

동쪽 햇살이 강렬하게 들어오는 창가에 선인장을 두고 열심히 지켜봤다. 더 굵어지게 만들 계획이었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 꽃까지 피워볼 계획으로 선인장과 대화도 시도하며 정성스레 애정을 쏟았다. 계획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굵어지기는커녕 점점 가늘어지고 있었다. 시들어버리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새로 자라나는 부분이 점점 가늘어졌다. 원래 선인장은 이런 건가 싶어서 방치했는데 섬에서 육지로 돌아온 지금은 다시금 굵어지고 있다. 제주도에서 자란 부분만 가느다래서 모양새가 숫자 ‘8’과 같아졌다. 허리가 가느다란 여인처럼 보이기도 해서 ‘매릴린 먼로’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더 굵고 튼튼하게 만들겠다는 계획은 무산됐으나 그 덕분에 독특한 모양새를 갖춘 선인장이 됐다. 집에 놀러 오는 손님마다 먼로 선인장을 보고 한마디씩 건넨다. 밖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먼로 선인장 이야기를 들려주면 흥미를 갖고 듣는다. 계획대로 선인장이 굵어졌다면 아무도 흥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계획이 틀어지면서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 돼버린 것. 나의 인생도 그렇다. 올해 초 세운 계획 중에서 반만 이뤄지고 반은 틀어졌다. 계획이 틀어지는 바람에 오히려 좋은 결과를 불러일으킨 일이 많다. 선인장 인생이 그랬듯이 계획한 일들이 틀어지더라도 꿋꿋이 버티면 결과적으로 좋은 일들이 완성되는 것 같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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