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재수 없기 바랍니다

2021. 11. 24.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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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 '무운(武運)을 빈다'고 말했다.

한 방송사 기자가 이를 '무운(無運)을 빈다', 다시 말해 '운이 없기 바란다'고 해석하는 바람에 비난이 쇄도했다.

실컷 욕을 먹었을 불쌍한 기자를 위해 한마디 보태자면 젊은 세대에게는 '무운을 빈다'는 말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황군(皇軍)의 무운장구(武運長久)'를 기원하는 기사로 신문이 도배되다시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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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승 (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 ‘무운(武運)을 빈다’고 말했다. 한 방송사 기자가 이를 ‘무운(無運)을 빈다’, 다시 말해 ‘운이 없기 바란다’고 해석하는 바람에 비난이 쇄도했다. 하지만 포털에서도 ‘무운’의 검색량이 급증했다고 하니 기자만 모르는 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실컷 욕을 먹었을 불쌍한 기자를 위해 한마디 보태자면 젊은 세대에게는 ‘무운을 빈다’는 말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수입된 일본식 표현이기 때문이다.

원래 한국과 중국에는 ‘무운’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 3000종이 넘는 한국 문헌이 탑재된 한국고전종합 데이터베이스에도, 중국 문헌을 집대성한 ‘사고전서’에도 ‘무운’이 하나의 단어로 쓰인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전쟁터로 나가는 사람에게 행운을 빌어주고 싶은 마음이야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한국과 중국은 문인 중심 사회였다. 무예를 숭상하는 풍조도 없었고, 무인의 사회적 지위도 낮은 편이었다.

일본은 반대다. 무인이 지배계급이었고, 이들 간에 크고 작은 전쟁이 빈번했다. 무인의 선전과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문화도 발달했다. ‘무운’은 14세기 초 편찬된 ‘다이헤이키(太平記)’에 처음 보이며, 이후 한 세기가 넘는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무운을 빈다’는 일상용어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널리 쓰인다. 일본 영화나 만화에도 흔히 나온다. 시대극에만 나오는 게 아니다. 전투가 벌어지는 장면이 나오는 이상 ‘무운을 빈다’는 대사가 빠지지 않는다. ‘진격의 거인’에도 나오고 ‘귀멸의 칼날’에도 나온다. ‘무운을 빈다’는 일본말이다.

‘무운을 빈다’가 우리 일상으로 파고든 것은 일제 강점기다. 1931년 만주사변을 기점으로 일본의 대륙 침략이 본격화하면서 ‘무운을 빈다’는 말이 신문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황군(皇軍)의 무운장구(武運長久)’를 기원하는 기사로 신문이 도배되다시피 한다. 광복을 맞이한 뒤로도 우리는 여전히 전쟁터로 나가는 사람들의 행운을 빌어야 하는 운명이었다. 6·25 때는 국군의 승리를 기원하며 무운을 빌었고, 베트남전쟁 때는 파월 장병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무운을 빌었다. 박정희의 국군의 날 축사에는 ‘국군 장병 여러분의 무운을 빈다’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무운을 빈다’가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올해 36세인 이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게 오히려 의외다. 일찌감치 정계에 입문한 그가 기성 정치인들에게 듣고 배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일본 만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생소한 표현임에 분명하다.

일각에서는 부실한 한자 교육을 탓한다. 한자를 알아두면 쓸모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한자를 읽는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맥락을 읽는 능력이다. 명색이 제1야당 대표가 공개 석상에서 다른 당 대통령 후보에게 ‘재수 없기 바란다’고 말할 리가 있겠는가. 발언의 맥락을 놓친 오해다. 한때 앙숙 관계였던 두 사람 사이에 아직도 앙금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확증편향이 이런 오해를 빚어낸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몰라서 빚어진 오해가 아니라 너무 많이 알아서 빚어진 오해다.

선거철이라 그런지 맥락을 무시한 말꼬리 잡기로 상대를 공격하는 일이 빈번하다. 악의적 곡해는 말할 것도 없고, 확증편향에 빠진 나머지 발언의 맥락을 잘못 파악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후보와 그 주변 정치인들의 실언도 따지고 보면 잠재된 확증편향이 불거져 나온 것이다. 뒤늦게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지만 발언의 맥락을 벗어난 해명이 통할 리 없다. 유권자를 바보 취급하면 곤란하다.

장유승 (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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