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서 팬데믹에 집세 밀린 세입자들 '사모펀드 집주인'과 전쟁

강창욱 2021. 11.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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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주택을 대거 임대한 외국 투자회사가 집세를 내지 못하는 세입자와의 임대차 계약을 취소하는 사례가 늘면서 이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퇴거를 통지받은 일부 세입자는 건물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임대료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바르셀로나 중심부 주택에서 퇴거를 거부하는 세입자 아나 마리아 바네가스의 사례를 22일(현지시간) 소개했다. 이 주택 소유주는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사모펀드 ‘케르베르스 파이낸셜 매니지먼트’다.

바네가스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살림이 어려워지면서 임대료를 제때 내지 못하게 되자 결국 퇴거 통보를 받았다 지난 4월부터 건물을 무단점거 중인 그는 “이 집에서 우리는 그들을 압박하는 것이 목표”라고 신문에 말했다.

케르베르스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스페인 곳곳에서 부동산을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경제가 정상궤도에 올랐을 때 임대로 공급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스페인 실업률이 15%까지 치솟는 등 경제가 다시 흔들리면서 올해 상반기 전국적으로 퇴거 사례가 급증했다.

주민들은 집주인인 투자회사가 전국 세입자에게 퇴거 통지서를 대량으로 발송하거나 임대료가 밀린 이들과의 임대차 계약을 취소했다고 하소연했다.

이후 바르셀로나에는 ‘케르베르스와의 전쟁’이라는 단체가 결성됐다. 주택 관련 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이 단체는 케르베르스 측이 경찰과 함께 세입자들을 집에서 내쫓으려 할 때 건물을 둘러싸고 진입을 막는다. 주민이 쫓겨나면 케르베르스가 소유한 다른 집으로 보내 그곳을 점유하도록 한다. 법적으로 불법 점거다.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 때로는 침입을 하기도 한다.

‘케르베르스와의 전쟁’은 바르셀로나에서 수십 가구가 케르베르스 소유 건물을 무단으로 점거 중이라고 설명했다. 바네가스가 그중 한 사례다. 이는 수년간의 법정 심리와 불법체류자들을 퇴거시키기 위한 수백만 달러의 소송 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NYT는 설명했다.

단체 대변인 미켈 에르난데스는 사모펀드들이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으로부터 이익을 챙기고 있다며 “그들은 그것(회사 소유 주택)들을 다른 자산들처럼 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좌파연합이 이끄는 스페인 정부는 투자기금과 기타 대규모 건물주를 대상으로 임대료 규제를 부과하는 법안을 제안한 상태다. 임대료 인상폭이 물가상승을 넘어서는 지역에서 부동산을 10채 이상 소유한 이들에 대해 임대료 상한을 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을 지지하는 주택문제 활동가 출신 아다 콜라우 바르셀로나 시장은 “팬데믹 전에도 나빴던 문제가 급격히 악화했다”며 “통제불능에 빠진 시장을 문명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퇴거 증가의 책임이 임대료가 밀린 세입자들과 합의하기를 거부한 투자회사에 있다고 본다. 투자회사가 임대료를 못 내는 세입자를 내쫓고 돈을 낼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찾기로 한 선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임대주택소유자협회는 주택 공급이 부족한 시기에 임대 규제가 새 임대 주택 공급을 방해한다고 반박한다.

스페인은 팬데믹 상황에서 퇴거 유예 방안을 도입했지만 편부모처럼 취약한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적용됐다. 법원으로 넘어간 사건에서 사법부는 대체로 임대인 편을 드는 것으로 비쳐졌다고 NYT는 전했다.

케르베르스는 NYT에 보낸 성명에서 “우리는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불법행위를 적절히 다루는 것이 모든 기업 시민의 책임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무단점거에는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스페인 내 임대주택을 둘러싼 갈등의 시발점은 금융위기다. 당시 수천 명이 집을 잃었고 그중 다수가 세입자가 됐다. 지난 10년간 스페인에서 세입자는 40% 이상 증가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민간 기업들이 4000채 넘는 부동산을 사들였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 중 하나인 블랙스톤은 2013년 유동성 부족 상태였던 마드리드 시정부로부터 아파트를 1800채 이상 구입했다. 이런 식의 부동산 인수는 팬데믹 전까지만 해도 논란거리가 아니었다.

임대주택을 운영하는 기업들이 욕먹기 시작한 건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집세를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퇴거 통지를 하면서다. 올해 1분기에 스페인의 세입자 퇴거는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했다. 올해 2분기를 포함하면 지난해 같은 기간의 8배까지 급증했다.

사모펀드 임대인에 대한 불만 중 하나는 소재지가 해외인 탓에 현지 집주인과 달리 합의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에르난데스 ‘케르베로스와의 전쟁’ 대변인은 “세입자들이 합리적인 월세를 내도록 하는 데 사모펀드가 동의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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