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동 칼럼] 늙은 정치는 낡은 정치다

박현동 2021. 11. 23.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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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진 기업과 늙어가는 정치
불통만 있고 소통 보이지 않아
국민은 식상하고 짜증스러워

네거티브 양상의 대선 정국에
과거권력 눈치 보는 미래권력
두 노정객의 등장 불순해 보여

선거승패 결정 짓는 스윙보터
의문은 커지고 고민은 깊어져
등대 같은 정치원로는 없는가

네이버 이사회가 갓 마흔의 여성을 최고경영자로 선택한 지난 17일 정치권엔 ‘모색’과 ‘갈등’이 있었다. 박스권 지지율 탈피가 시급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이해찬 전 대표를 만났다. 두 사람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모른다. 짐작건대 선거 이야기를 나눴을 가능성이 크다. 같은 날 다수 언론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선거대책위 구성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는 뉴스를 전했다. 이 전 대표는 칠순을 목전에 뒀고, 김 전 위원장은 팔순을 넘겼다.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들은 우리 정치에 비중이 컸고, 산전수전 다 겪었다. 좋게 보면 ‘경륜’ 있는 정치인이고, 나쁘게 보면 ‘노회한’ 정치인이다.

누가 뭐래도 이 전 대표와 김 전 위원장은 ‘원로’다. 지역구 7선과 비례대표 5선의 경력이 말해준다. 또 선거 승리 경험이 많고, 조직 장악력이 뛰어난 카리스마도 있다. 여기에 행정경험도 있으니 나름 국가에 지대한 공을 세운 분들이다. 알려진 대로 이 전 대표는 민주당 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았고,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으로 거론된다. 두 사람의 정치 이력을 합하면 70년이 넘었으니 정치권은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빌릴 수 있다고 본다. 시각을 달리하면 이는 두 노정객의 책무이기도 하다. 안으로는 지지자들을 결집시킬 구심력이 필요하고, 그 구심력을 축으로 원심력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킹메이커’ 역할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만 생각할까. 이 질문에 ‘예’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이 전 대표로부터 오만의 느낌을, 김 전 위원장으로부터 독선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이는 치명적 결함이다. 불통과 분란, 갈등의 중심에 있었던 그들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이들에게 대화와 타협, 포용의 힘을 통한 확장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성정(性情)과 스타일을 보면 이 전 대표는 원심력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위원장은 구심력에 의문이 생긴다. 근본적으로는 미래권력이 과거권력에 기대는 형국은 식상하고 짜증난다. 정치발전 측면에서 보면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라고 감히 말한다. 너무 올드하다.

게다가 상대를 하수 취급하는 안하무인 태도는 거북하다. ‘상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정치원로로서의 역할이 아닌 칼 쥔 전사로서의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미 대선은 극도의 네거티브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부모 자식 사이에서도 권력은 나눌 수 없다고 한다. 그만큼 처절한 것이 정치이고, 그 중심엔 선거가 있다. 수많은 역사적 경험들이 증명하듯 권력은 피를 부르고, 피는 보복을 부른다. 백번 양보해 승자독식의 정치구도에서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노정객의 등장은 어찌 불순해 보인다. 이런 판국에 노정객에게 목매는 거대 정당에 마냥 박수만 칠 순 없다.

직설하면 늙은 정치는 곧 낡은 정치다. 굳이 거명하지는 않겠으나 이들 외에도 고색창연한 인물이 한둘이 아니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젊다고 생각마저 젊은 건 아니라는 반론도 충분히 가능하고,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단 한 번이라도 정치가 경제를 리드한 적이 있었는가마는 대선을 앞둔 거대 정당의 모습은 참으로 딱하다. 축적과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 미래를 밝히는 것이 정치일진대 퇴행적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와 경제는 다르다. 다만 쇄신을 통해 고객의 요구에 맞추고,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선 유사하다. 사정이 이러니 노정객의 등장을 두고 흘러간 옛 노래를 재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 아닌가. 일차적으로는 정당의 문제지만 당사자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겹다 못해 한심한 정치판이다. 차기 대선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스윙보터라는 중도층 표심이라고 하는데 스윙보터들은 이 장면을 어떻게 바라볼까.

어떤 시인은 깊은 밤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은 화려해 보이나 어둠이 가신 새벽녘 불 꺼진 오징어잡이 배는 비릿한 냄새만 가득하더라고 했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다를까. 한마디 보태자면 두 노정객은 오징어잡이 배가 아닌 어둠을 밝혀 길잡이가 되는 등대로 남을 수 없는가. 존재만으로도 정치권의 등불이 되는 어른은 없는가. 우리나라 정치, 특히 선거에서 이해찬과 김종인은 영원한 ‘상수(常數)’인가. 갈수록 의문은 커지고, 고민은 깊어진다.

박현동 편집인 hd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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