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금융산업과 일자리 그리고 신용카드 수수료

이광호 2021. 11. 2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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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 전 여신금융협회 상무

팔순을 훌쩍 넘긴 노모는 아픈 다리에도 은행 가는 일만은 좀체 포기하지 않는다. 아파트 입구에 있던 지점이 사라져 1킬로가 넘는 길을 걸어 가야 한다고 볼멘 소리를 하면서도 말이다. ATM이용을 권해보지만 한사코 손사래를 치니 기계와 돈거래를 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 탓인 듯싶어 걷는 대신 버스 타시라 잔소리할 뿐이다. 이른바 '비대면 채널' 활성화 전략에 따른 은행점포 축소 상황은 곳곳에 깊은 그늘과 한숨을 만들어내고 있다.

노모의 노고뿐이면 점포축소가 아니라 무점포시대를 선언한들 대수이겠는가 만은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일자리문제가 너무 크고 또 중대하기에 탈점포전략의 재고를 주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점포축소는 이익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 은행의 생존적 전략이겠지만 작금의 상황은 브레이크가 사라진 폭주 기관차를 보는 느낌이다. 매년 영업점포 축소 규모가 커지더니 지난해에는 4대은행 기준 전년보다 무려 304곳이 줄었고 올해는 그 규모가 더 커질것이라고 한다. 울고 싶은데 코로나가 뺨을 때려 준 꼴이라고 할까. 평균 10억의 유지비용이 드는 오프라인 지점을 줄이는 대신 값싸고 빠른 모바일점포 전략에 속도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개별 은행이 수익을 쫓는 일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은행이 이익을 쫓는 사이 일자리가 줄고 격차가 확대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점당 인원을 10명만 잡아도 3000개의 일자리가 매년 사라지고, 지방과 노인들의 금융 후생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데 팔짱만 끼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말이다.

금융당국은 '광주형 일자리' 정책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업계와 노동계가 고용안정과 유연성을 주고받고 정부와 지방정부가지원으로 화답한 것이 광주형 일자리 성공의 열쇠다. 은행 노사의 합의로 점포 축소를 철회하는 대신 정부와 금융당국은 세제 지원을 넘는 파격적 인센티브 제공을 약속하면 되는 일이다. 싼값에 혹은 무상으로 영업공간을 제공하거나 새로이 고용되는 노동자에 대해지원금을 교부하는 것도 하나의 방도일 수 있다. 양질의 일자리 마련은 이처럼 먼 곳에 있지 않다. 역발상과 결단이면 충분하다.

일자리만큼은 신용카드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참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숫자가 줄었다. 출발은 신용카드가맹점수수료 체계가 전면적으로 개편된 2009년부터다. 민간서비스가격통제 논리의 다름 아닌 '적격비용'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수수료 인하가 단행되자 신용카드회사들은 앞다퉈 비용을 줄이기 시작했다. 신용카드회원에게 돌아갔던 혜택이 사라졌고 신용카드산업 내 다양한 가치사슬에 얽혀 있는 다수의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5년전 2만명이 넘었던 카드모집인 숫자가 올해 만명 이하로 줄었다지 않은가. 월 1000만원 파는 소상공인에게 10만원의 선물을 안기기 위해 만명이 넘는 모집인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얘기다. 신용카드 결제망의 한 축인 밴사와 가맹점 영업 인력의 축소 상황까지 감안한다면 가히 일자리 학살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지경이다.

줄어든 수수료 덕에 일자리를 늘렸다는 소상공인들 얘기는 듣지 못했으니 수수료 인하는 '마이너스썸(MINUS SUM)' 일자리 정책임이 분명하다 할 것이다. 10년의 세월 동안 정책을 추진했으면 최소한 한번 정도는 실효성에 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할텐 데 반성적 성찰은 고사하고 3년주기 신봉자들의 칼춤만 또 다시 목도하게 생겼다. 앞으로 3년간 지켜져야 할 수수료체계, 그 결과가 조만간 발표된다고 하니 하는 소리다.

언론은 벌써부터 추가 인하를 기정사실화 하고 카드사 노조는 총파업을 예고했다. 연매출 3억 이하 절대 다수 소상공인에게 0.8%라는 원가 이하의 수수료율이 적용되고 있고 전체 가맹점의 96%가 우대수수료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도대체 또 얼마를 내리겠다는 것인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더 늦기 전에 고장 난 브레이크를 고쳐야 한다. 금융관료들의 관성과 무신경만 탓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이제는 정치가 답을 낼 때다. 소상공인을 진정 위한다면 수수료 인하라는 단세포적 비용대책은 이제 멈추고 보다 근본적인 매출정책에 천착하길 바란다.

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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