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 드러내는 이재명식 실용주의.."여론 나쁘면 접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요즘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 본인의 뜻과 달라도 “국민이 원하는 곳을 향해 날렵하게 가볍게 빠르게 달려가겠다”고 한다. 그간 “이재명은 합니다”라며 정면돌파만 내세우던 그가 유연함과 실용성을 앞세우며 기조를 전환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주 이 후보가 던진 두 가지 카드는 “이 후보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후보 측은 설명했다. 야당의 대장동 특검 요구를 ‘정치 공세’로 규정하던 그는 돌연 “조건을 붙이지 않고 아무 때나 여야 합의해서 특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청와대와 정부의 난색에도 밀어붙이던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역시 “지원의 대상과 방식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물러섰다.
“남북 관계, 실리적 접근하자”…文 정책 뒤집는 李
이후 ‘실용주의자 이재명’으로의 변신 속도는 거침없다. 20일 충남 아산 청년들과 만난 자리에서 “(남북) 통일을 지향하기는 이미 너무 늦었다”고 말하며 파장을 일으킨 게 대표적이다. “(남북 관계를) 너무 정치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실리적으로 접근했으면 좋겠다”며 한 말이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종전선언에 여전히 공을 들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와는 궤가 다른 입장을 보인 것이다. “통일을 위한 남북 공동체 기반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간다”는 민주당 강령은 물론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한다”는 헌법 조문(4조)과도 무게 중심이 다른 이야기다.
이 후보의 입장은 대의명분이 아닌 여론, 특히 2030세대의 여론에 부응한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7월 22일~8월 17일 전국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1 통일의식조사’에서 “통일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44.6%에 그쳤다. 2007년 조사 이래 최저 수치였다.
특히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20대(42.9%)와 30대(34.6%)에서 두드러지게 높았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게 연구원 측의 설명이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명분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시대 변화에 맞춰 국민이 원하는 실용 외교를 해야 한다는 게 이 후보의 통일·외교관”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같은 날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디씨)에도 직접 인증 글을 남겼다. “청년들이 기성세대보다 정치적 판단이 훨씬 기민하고 실용주의적”이라며 “(저의) 실용주의적인 관점이 2030 청년세대의 정치관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썼다. 이어 “여러분께서 저를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 써달라”고 덧붙였다.
21일 대전 현충원을 참배하는 자리에서 그는 전통적인 민주당 입장과 결이 다른 안보관을 강조했다. 그의 입에선 “어떤 경우에도, 북한의 도발을 용인하지 않겠다”, “민간인 지역에 대한 도발은 상응한 책임을 묻겠다”, “꽃다운 청년의 희생이 다신 생기지 않게 하겠다”는 등의 말이 연이어 나왔다.
“민심 따르는 리더십” vs “철학 없는 포퓰리즘”
이런 태도 변화는 한 달 넘게 30%대 박스권에 갇힌 지지율의 반등을 위한 승부수로 풀이된다. 신율 명지대 정외과 교수는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철회 등 상황과 여론에 맞춰 유연함을 보이는 건 중도층 공략을 위한 긍정적 변화”라고 평가했다.
당내에선 문재인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위한 시도라는 해석도 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출신의 한 재선 의원은 “문 대통령은 신념에 대해선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밀고 가야된다는 고집이 센 캐릭터”라며 “이 후보의 유연함은 그런 문 대통령과 대비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후보 선대위 핵심인사는 “의도적으로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과 차별화하려는 시도라기보다는 유연함 자체가 이 후보의 근본적 성향”이라며 “표현이 솔직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한 정치학 교수는 “이미 중도층 일각에서 ‘포퓰리스트’라고 지적받는 이 후보가 정책 수정을 계속할 경우, 국정 철학도 없이 여론만 뒤쫓는다는 비판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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