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웅빈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리튼하우스 무죄' 들끓는 美.. 총기단체 '분열 마케팅'으로 기름

전웅빈 2021. 11. 22.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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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가 20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카일 리튼하우스에게 무죄 평결을 내린 법원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리튼하우스는 지난해 8월 위스콘신주 커노샤에서 인종차별 반대시위 참가자 2명을 살해하고 1명을 다치게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미국 수정헌법 2조)

전미총기협회(NRA)가 지난 19일(현지시간) 오후 올린 트윗이다. 트윗은 미국 보혁 갈등 상징으로 떠오른 카일 리튼하우스(18)에 대한 무죄 평결 발표 15분 뒤 올라왔다.

리튼하우스는 지난해 8월 위스콘신주 커노샤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 참가자 2명을 살해하고 1명을 다치게 했다. 살인 및 살인 미수 등 5가지 혐의로 기소됐는데, 커노샤 카운티 법원 배심원단은 그의 혐의 모두에 무죄 평결을 내렸다.

평결 이후 미국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인종 문제를 둘러싼 극심한 분열상이 다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갈등 현장 한가운데로 총기 이익 단체들이 발을 들이민 건 이번 사건이 규제 강화를 추진해 온 조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압박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여러 희생자가 나온 총격 사건이 최근 연이어 발생해 미국 사회에선 공격용 무기(Assault Weapon) 규제 목소리가 커졌는데, 이번 사건을 기화로 분위기 반전에 나서려는 것이다.

다시 주목받는 논란의 AR-15

지난해 8월 시위는 흑인 남성 제이컵 블레이크가 경찰 총격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사건 때문에 벌어졌다.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맞물리며 시위는 격화됐고, 일부에서 방화나 약탈 등의 과격 행태도 나타났다. 리튼하우스는 시위대에 맞선 백인 자경단에 합류해 도시를 순찰했고, 과격 시위자들의 위협을 받는 과정에서 총을 쐈다.

리튼하우스가 사용한 무기는 ‘스위스앤드웨슨 M&P15’, 바로 AR-15 스타일 반자동 소총이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많고 잘 팔리는 형태의 총이다. 총기업계 이익단체인 전미사격스포츠재단(NSSF)에 따르면 매년 판매되는 총기 5개 중 1개가 바로 이 스타일이다. 현재 1500만정 정도가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연방지방법원 로저 버니테즈 판사는 공격형 소총을 판매하지 못하게 한 주 법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려 논란이 됐는데, 당시 AR-15 소총에 대해 “스위스 군용 칼처럼, 가정용 방어 무기와 국토 방어 장비의 완벽한 조합”이라고 묘사했다. AR-15에 대한 미국 사회 인식을 반영한다.

AR-15는 항상 대규모 총격 사건 중심에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콜로라도 볼더의 식료품점 총격사건(희생자 10명), 피츠버그 회당 총격사건(희생자 11명), 텍사스 교회 총격(희생자 26명), 라스베이거스 콘서트 총격(희생자 58명), 플로리다 고등학교 총격(17명), 코네티컷 초등학교 총격(28명)에 모두 AR-15 형태의 총기가 사용됐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간 이런 공격용 무기 규제를 정면으로 겨냥해 왔다. 지난 3월 콜로라도 총격 사건 직후 “미래에 생명을 구할 상식적인 조치”라며 법안 추진을 강력히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도 소유를 제한한 엄격한 총기법과 공격용 무기 금지법에 광범위한 지지가 나타났다.

반격 나선 총기 단체

보수 세력들은 리튼하우스를 진보 세력과의 이념전쟁 영웅으로 묘사하며 치켜세우고 있다. 그로 인한 갈등과 분열의 확산은 총기 이익 단체들에 기회가 됐다.

미국총기보유자협회(GOA)는 20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리튼하우스를 ‘총기 소유와 자위권(정당방위)을 위한 전사’라고 표현하며 “총기 권리를 옹호한 그에게 AR-15를 수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살인에 사용된 총을 포상으로 주겠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는 리튼하우스를 지지하는 서명에 동참하라고 촉구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콜럼비아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욕설이나 공격적 표현이 담긴 AR-15 스타일 소총 부품까지 판매 중이다. 제품에는 보수단체들이 바이든 대통령을 모욕할 때 ‘밈’처럼 사용하는 ‘렛츠고 브랜든’ 등의 표현이 적혀 있다.

총기 이익단체들은 보수 성향의 연방대법원 구조를 겨냥한 소송전에도 나서고 있다. 현재 미연방대법원은 가정 외 공공장소에서 총기 소지를 제한한 뉴욕주 법이 위헌인지 심리 중이다. NRA가 제기한 소송이다. 현재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 당시 임명된 보수 성향 대법관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NRA가 이를 기회로 규제 철폐에 나선 것이다. 뉴욕주 법이 흔들리게 되면 다른 주에서도 파장이 계속될 여지가 크다.

바이든 행정부의 총기 규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주에서 총을 드러내 놓고 휴대하는 이른바 ‘오픈 캐리’(open carry)가 합법화됐다. 뉴욕타임스(NYT)는 “리튼하우스 평결 이후 총기 규제 지지자들은 훨씬 더 분명한 좌절에 직면해 있다”며 “보수가 다수인 대법원이 뉴욕주 총기법을 깨뜨리거나 약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에 직면한 것도 총기 옹호단체들에겐 도움이 됐다. NYT는 “상원이 교착 상태에 빠진 만큼 (총기 규제) 법안 통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백악관 관리들이 인정했다. 민주당도 이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확산과 그로 인한 증오범죄는 역설적으로 총기 구매 급증의 결과를 낳았다. NSSF에 따르면 생애 처음 총을 처음 구매한 사람이 지난해 840만명이나 됐다. 뉴욕주의 한 총포상은 “총기를 구매한 사람이 워낙 많고,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문제까지 겹쳤다. 사냥 시즌이 시작돼 구매자가 몰리지만 탄약이 부족한 상태”라고 말했다.

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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