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한미 증시 디커플링 왜?..美 혁신기업 즐비, 韓은 제조 중심

배준희 2021. 11. 21.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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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 증시가 서로 따로 노는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운 반면, 한국 증시는 올 들어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상장 기업이 속한 산업 특성과 증시 수급(수요와 공급) 등 구조적 요인이 디커플링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뉴욕 증시는 기술주 중심 나스닥을 비롯해 다우존스산업평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등 3대 지수 모두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불거지는 등의 이유로 소폭 하락할 때가 있지만 올 들어 지난 11월 17일까지 S&P500지수는 24%, 나스닥지수는 23% 올랐다. 반면, 2021년 첫 거래일(1월 4일) 2944로 거래를 마쳤던 코스피는 한때 3200을 돌파하는 등 맹위를 떨쳤으나 최근에는 3000선도 위태롭다.

‘해도 해도 너무한’ 한미 증시 간 디커플링의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거시적으로는 산업 구조 차이를 꼽는다.

미국은 소프트웨어 등 무형자산, 한국은 반도체와 자동차 등 유형자산 중심이다. 이베스트투자증권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 기업 중 경기민감 업종, 정보기술(IT), 자동차 등 업종 비중이 58.9%로 S&P500지수(28.9%)보다 훨씬 높다. 유형자산 중심 산업 구조는 공급망 병목 현상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에 취약하다. 선물 계약을 통한 헤지 등으로 매출 원가 상승분을 일정 수준 방어할 수 있지만 문제는 물류비라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IT업계 관계자는 “최근 매출은 괜찮은데 이익이 훼손된 경우가 많다. 이는 대부분 물류비가 지난해 대비 많게는 2배 이상 급등한 영향이 크다. 물류비에 일종의 프리미엄이 형성돼 이를 주고서라도 선박을 미리 잡아두지 않으면 매출을 일으킬 수가 없는 상황이다. 물류비는 매출 원가나 판관비 등에 반영되는데 이를 제품 가격에 즉각적으로 반영하기는 사실상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공급망 우려 부담 덜한 美

▷패시브 등 막대한 유동성 유입

미국 증시는 이런 우려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하이투자증권은 지난 3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 중 ‘지식재산생산물 투자(무형자산 투자 증가율)’와 ‘내구재 소비 증가율’ 지표의 방향성에 주목했다. 공급망 차질에 따른 자동차 판매 급감으로 3분기 미국 내구재 소비는 전기 대비 연율 26.2% 감소했다. 반면, 3분기 무형자산 투자는 전기 대비 연율 12.2%의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내구재 소비 급감과 무형자산 투자 호조가 주요 기업 주가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급 측면에서도 한국 증시는 여러모로 취약하다. 수급이 두껍고 탄탄한 미국과 달리 한국 증시는 ‘유리 수급’이라 불릴 정도로 변동성에 취약하다.

이런 차이는 무엇보다 패시브발 유동성 유입과 상관관계가 높다는 것이 전문가 분석이다. 패시브펀드는 상장지수펀드(ETF)나 인덱스펀드를 떠올리면 된다. 패시브펀드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는 구조다. 주요 국가 연기금이 MSCI를 비롯한 대표 지수를 추종하는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특히 FTSE와 S&P보다 MSCI를 추종하는 자금 규모가 압도적이다. 2014년 MSCI를 추종하는 세계 펀드 자금은 3조5000억달러였는데, 지난해 말 14조5000억달러(약 1경6453조1500억원)까지 늘어났다. 이 가운데 MSCI 선진국지수를 추종하는 자금이 신흥국지수보다 2배 이상 많다는 것이 금융투자업계 추정이다. 정리하면, 기술 혁신에 기반한 미국 경제의 선순환 구조, 기축통화국 등의 요소에 더해 마르지 않는 패시브 자금 유입이 미국 증시의 유동성 파이를 끊임없이 확장시키는 것이다.

반면, 한국 증시는 2014년 관찰대상국에서 탈락한 뒤 7년째 MSCI 신흥국지수에 머물렀다. 특히 MSCI 신흥국지수에서 중국 비중은 점차 커지고 있다. 달리 말하면, 중국 편입 비중이 변할 때마다 한국 증시 변동성도 커진다. 결국 패시브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신흥국 시장으로 묶여 있는 한국은 중국과 동조화 경향이 짙어진 반면, 선진국 시장인 미국과 탈동조화 현상이 심화했다는 진단이다.

비단 패시브뿐 아니라 펀드 시장 자체가 한국과 미국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증시 수급이 탄탄하려면 개인투자자의 직접 투자가 늘어나는 것보다 펀드를 통한 간접 투자가 활성화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펀드매니저 연봉만 비교해봐도 미국의 막강한 펀드 시장을 가늠할 수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스타 펀드매니저인 앨리스터 히버트는 지난해 기준 래리 핑크 CEO 연봉의 세 배, 약 1000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았다. 이외 미국 펀드업계에서 막대한 소득을 올린 인물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1위 이스라엘 잉글랜더 밀레니엄매니지먼트 CEO는 38억달러(약 4조원) 정도를 연봉으로 받았다. 2위는 메달리온펀드로 유명한 짐 시몬스 르네상스테크놀로지 CEO로 그는 26억달러(약 3조원)가량의 연봉을 받았다.

연말로 갈수록 반복되는 한국 증시만의 고질적인 수급 악재도 미국과 디커플링을 부추긴다. 다름 아닌 개인 대주주 양도세 이슈다. 내년 주식 양도세 대상이 되는 대주주 확정 시점은 12월 28일이다. 이날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는 올해 마지막 거래일인 12월 30일 종가 기준으로 본인과 배우자, 조·외조부모, 부모, 자녀, 손주 등 직계존비속의 보유분을 모두 합산해 한 종목당 10억원 이상이면 대주주로 결정된다. 대주주 요건을 충족한 개인투자자는 내년 4월 이후 주식을 매매하면 양도차익의 20%(3억원 초과분은 25%)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이 때문에 통상 ‘큰손’ 개인투자자들은 11~12월 집중적으로 주식을 판다.

연기금의 국내 주식 비중 축소도 악재다. 한 펀드매니저는 “최근 들어 연기금 매도세가 강화되고 있는데 이는 연말 북클로징을 앞두고 위탁펀드를 굴리는 매니저들이 사실상 올해 매매를 정리 중인 탓”이라며 “수익률 경쟁이 마무리돼야 매도세가 다소 진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근본적으로는 산업 구조를 무형자산 중심으로 재편하고 펀드 시장을 활성화해야 하지만 이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힘든 과제다. 당장 시급한 과제로 거론되는 것이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이다. 금융당국이 MSCI 선진국지수 편입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다 최근 기조가 바뀐 점은 그나마 긍정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과 유관 기관이 MSCI와 논의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은 문제다. 우리 증시를 질적으로 레벨업하기 위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35호 (2021.11.24~2021.11.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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