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늙어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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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반, 15살.
지금으로 치면 중학생에 해당하는 나이다.
그 사내는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고 나이도 열 살이나 많았지만, 듬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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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반, 15살. 지금으로 치면 중학생에 해당하는 나이다. 그때 한 사내의 사랑 고백에 이끌려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 사내는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고 나이도 열 살이나 많았지만, 듬직했다. 본인도 가정 형편상 초등학교 1학년을 다닌 게 전부인지라 사내의 무학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그 사내는 독학으로 아는 게 많았다.
거의 무너져가는 초가집 방 한 칸을 얻어 살았다. 이듬해 첫째 딸을 낳았으나 이내 이름 모를 병으로 죽었다. 그리고 세 자녀를 더 낳았다. 그 사내는 처음의 약속과 달리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다. 가정 살림은 본인이 모두 해결해야 했다. 남의 농사일을 거들어주며 식량을 얻었다. 어린 자녀 하나는 업고 둘은 양손에 잡고서 남의 농사일을 하러 갔다. 그렇게 감자나 고구마, 우린 감을 얻어 방 한 켠에 저장하고 식량으로 삼았다.
이미 사내에 대한 기대는 접었으나, 아이들까지 본인처럼 살게 할 수는 없었다. 단출한 살림을 들고 무작정 도시로 나왔다. 사내는 도청 말단 임시직 직원으로, 본인은 병원 식당에 나가 일을 시작했다. 사내는 수입의 전부를 술값으로 지불하며 살았고, 부족하면 닦달했다. 병원 식당 월급으로는 생활비와 아이들 학비를 댈 수 없어서 투잡, 쓰리잡을 뛰었다.
악착같이 살아가던 어느 날, 사내가 술을 마시고 고향에 간다면서 길을 나섰다 변을 당했다. 그렇게 마흔 두 살에 홀로 되었다. 더 악착같이 살아야 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그렇게 해도 살림이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은 잘 커 줬다. 첫 째는 변호사로, 둘 째는 공무원으로, 셋 째는 학원 원장으로 단란한 가정을 이뤄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다.
오늘이 본인의 일흔 네 번째 생일이다. 결혼 아닌 결혼을 하고 60년을 숨가쁘게 살아왔다. 자식들이 마련한 생일 축하 식사 자리에서 큰 손자가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느냐’고 묻는다.
박경리는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 가고, 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라고 말했다.
박완서는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살아오면서 볼 꼴, 못 볼 꼴 충분히 봤다. 한 번 본 거 두 번 보고 싶지 않다. 한 겹 두 겹 책임을 벗고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소설도 써지면 쓰겠지만 안 써져도 그만”이라고.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두 여류 소설가처럼 현재의 늙음이, 현재의 편안함이 좋다. 늙어간다는 것은 더 편안해지는 것이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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