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人 이야기]경기도극단 <위대한 뼈>로 사투(死鬪) 벌이는 연출가 한태숙

2021. 11. 2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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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숙(72) 예술감독 체제에서 변화를 주고 있는 경기도극단에서 창작 희곡 공모 선정 작품인 <위대한 뼈>(작, 박진희, 11월18일~28일) 무대 리허설을 마치고 예술감독 방으로 들어선 선생은 100세 시대에 고희(古稀)를 넘겼어도 문학소녀 같았다. 방 한 켠에는 아이를 형상화 하고 있는 오브제가 놓여 있었다.

“남들은 <파묻힌 아이> 오브제 인형을 사무실에 왜 들여 놓냐고 하던데, 이상하게 저런 게 좋아요”

소녀의 이미지에서 무대에서 발화되는 전투적인 힘이나 한태숙 표(表) 무대의 강렬한 장면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가 구현해 내는 무대를 보아온 나는 예술 감독 방이 좁아 보였다. 액자나 사무 탁자, 의자들이 예술 감독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연극적인 오브제로 느껴졌다.

“제가 사교적이질 못해요.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질 못하는 성격이고, 외골수적인 면이 있어요. 여럿이 어울려야 하는 연극과 작품을 하게 된 게 성격하고는 좀 안 맞죠. 예술에 대해 비판도 있을 수 있지만 제 작품을 좋게들 봐주시니 관객들한테 늘 고마워요”

겸손했고, 말은 에둘러 표현했다.

| 텍스트의 언어를 최대의 상상력으로 무대에 밀어 넣고 정밀한 장면으로 타격해 무대를 견고하게 구현시키는 연출가.

한태숙 연출 작품 연구논문이 대략 40여 편이 되었다. 대체적으로 “치밀하게 작품을 풀어내는 연출가. 화려한 연출의 상상력으로 완벽하게 무대를 구현해 내는 연출가. 희곡의 언어를 연출의 상상력으로 무대의 한계점까지 작품으로 용해시키는 독창적인 연출가. 오브제와 무대의 물질을 한태숙 연극언어로 그 미학을 그려내는 연출가”로 평가하고 있었다.

특히 한태숙의 텍스트 읽기는 공연이 끝날 때 까지 집요하게 발열된 창작극은 원작이 된다. <오이디푸스>, <안티고네>에서 각색으로 참여한 김민정 작가는 “작가에게 연습과정까지도 개방되어 있는 연출가다. 무대에서 형상화 되어야 하는 이미지들을 그려 놓고, 문제들을 집요하게 파고 드신다. 작가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으셔도 작품을 수 십 차례 고치고 손실하면서 그 자체가 공부가 되고 텍스트는 더 견고해 진다”라고 말했다.

-물었다. “한태숙 연출가는 텍스트의 상상력을 무한대로 끌어올려 한태숙 무대 미학으로 구현시켜내는 독창적인 연출가로 평가하던데.” 1m정도 되는 테이블 사이로 마주 앉은 연출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고 시선은 날카로워 보였다. 얼굴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동안(童顔)이었다.

“낚시를 하는데 온몸을 걸고 무대로 끌어 올려야 하잖아요. 가끔 무대가 ‘논’과 ‘바다’로 비유 될 때가 있어요.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무엇을 건져 냈을까 생각해 보면, 연출로 상상한 것보다 덜 할 때가 있어요. 제 메소드가 배우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나, 연극적인 호흡이 장면으로 과하게 표현되고 드러날 때 관객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선생은 연출가가 무대에서 상상할 수 있는 한계 지점들을 끌어 올려내야 하는 낚시꾼으로 비유를 했다. “연극은 공동 작업이잖아요. 사람들 마음이 다 맞을 수 없고 그 과정에서 상처도 받기도 하고 그런 겁니다. 제가 생각한 연출적 상상하고 무대가 어긋나면 힘 들면서도 극복해 내야 하는 게 연극이기도 한거죠. 공연을 그만둘까 싶어서 그만둔 적도 있어요”
“인간의 한계를 견디고 극복해야 하는 연극이 무서웠군요”라고 묻자 “무서운 것 보다 연출도, 연극도 작업의 과정이고요. 연출은 무대를 완성해 나가는 작업이라 힘들 때 있죠”라고 한다.

70년대 연출 데뷔 이후 뮤지컬 <영원한 디올라>(1978),<고독이라는 이름의 여인>(1979)을 삼일창고극장에서 올린 후 1981년 창작희곡<자장 자장 자...>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이후 연극연출로는 80년대 후반까지 한 5년 여의 공백기가 있었다.

“남편도 연세대에서 연극을 했는데 연대 연극반을 졸업했다고 말해요(웃음). 박정자 선생 남편이 유명한 CF감독인 이지송씨인데, 남편도 그쪽 일을 좀 했고, 저도 인연이 되어서 잠시 방송 일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러다가 정복근 작가께서 연극을 못하고 있는 게 안쓰러웠는지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작품을 하자고 하셨고, 김민기 씨가 제작해 주셔서 학전 소극장에서 공연을 하게 된 게 이제는 무대를 도망칠 수 없게 만든 거죠”

-나무를 깎아 내는 명장도 작품 세계에 만족 할 수 없잖아요. 예술가로 자신의 한계까지 끌어 올리고 싶고 작품으로 표현시킬 수 없을 때 갈증이 오는 것 아닐까요.

“연출가로 무대로 전진 하고 있을 때 길이 막힐 때가 있어요. 무대라는 어둡고 깜깜한 곳에서 작품을 더듬거리고 짚어가는 느낌이 들 때 내가 ‘가짜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한태숙 선생은 연극연출자로 무대로 그려나가는 전 단계를 어두운 빛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그 빛을 무대 언어로 발화 시키고 생명력 있는 무대로 구현해 나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 치열한 무대의 세계를 섬기고 대하는 것은 90년대 보다 더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연극학교(현 서울예술대학교) 극작과 출신으로 재학시절 쓰고 연출한 <늙은 쥐>를 학교 무대에 올리면서 연극무대에 시동을 건 그녀는 70년대 후반 <터치맨>(1966)으로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연출로 데뷔한 후 50여 편이 넘는 작품을 해왔다. 90년대에는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1994))로 한태숙을 연출로 알리기 시작했고 <첼로>(1994)로 제31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연출상을 수상했다.

극단 물리의 창작 작품< 레이디 맥베스>(1998)가 극단과 연출 미학을 응집(凝集)시키는 작품이 되었다. 독창적인 한태숙 무대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이듬해 제23회 서울연극제에서 연출상을 수상한다. <서안화차>(2003)로 제40회 동아연극상과 김상열 연극상을 수상했고 <꼽추, 리처드 3세>(2004), <이아고와 오셀로>(2006), <오이디푸스>(2011), <안티고네>(2013), <하나꼬>(2015), <세일즈맨의 죽음>(2016) 과 몇 작품을 선보이고 이후 경기도극단 예술 감독으로 자리를 옮겨 정복근 작가의 <저물도록 너, 어디있었니>(2020)와 <파묻힌 아이>(2021)를 선보였다. 요즘은 <위대한 뼈>(2021)를 준비하면서 고희(古稀)를 넘긴 선생은 90년대와 2000년대 그녀의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 “주제는 무대로 강렬하게 보이고 싶어요. 그 장면을 구현해 내는 극적인 효과를 배우를 통해서 그려졌으면 좋겠어요” 오브제는 무대에서 또 다른 언어다.

-한태숙 연출의 무대는 텍스트의 언어를 무대로 발화시키는 미장센의 에너지는 강렬하고, 인간의 내면과 심리를 무대로 증폭시키는데 무대의 한계점까지 끌어올리는데 탁월하다. 물체극 < 레이디 맥베스>이후 오브제와 무대로 구현할 수 있는 연극적인 장치들을 한태숙 작품으로 용해시켜 텍스트의 언어를 무대미학의 정점까지 끌어 올려낸다.

“서주희라는 배우와 오브제로 물체극을 하는 이영란이라는 무서운 아이들을 만나게 행운이었죠. 배우로는 논리적으로 무대에서 용납이 안 되면 움직이지 않는 배우였고, 오브제 하나를 집고 찌르는 극적인 장면에서도 빛과 장면의 섬세함 등을 계산을 하고 극중 인물로 움직이는 배우였어요. 이영란씨는 오브제를 하나도 언어로 표현하는데 탁월한 예술가죠”

-오브제를 극중에 이미지화시켜 이야기로 연결해 무대의 전경화를 이루는 탁월한 연출가로 평가하던데.

“글쎄요. 사람한테 탈을 쓴 것도 가면을 씌운 것도 오브제가 될 수 있어요. 연극에서 사람만 등장하는 것보다는 그 극중 인물(사람) 만큼 역량을 가지고 있는 물체가 무대에서 진동과 파장을 일으켜서 오브제화 시키면 무대에서 또 다른 언어로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어요. 연극에서 오브제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그 오브제가 극 속에, 이야기로 관통되어야 한다는 거죠”

-<해무>의 김민정 작가는 선생님하고 작가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18번 이상의 탈고를 거치면서 작품의 색깔이 바뀌고 희곡의 구조가 바뀌어도 서사는 더 탄탄해 진다고 말하더군요.

“손 하나 움직여도 그 당위성이 작품에 녹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대본은 제가 연출로 설득될 때 까지 작가에게 질문을 던져요. 첫 희곡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요. 제 인생은 엉터리 인데, 무대작업 만큼은 세밀하고 정확하게 하고 싶은 거죠. 궁금한 것을 잘 참지 못하고 당위성과 희곡의 논리를 이해를 못할 때 물어 보고 싶은 거죠. “내가 쓸게 할 수는 없잖아요” (웃음) 작가한테 끊임없이 질문과 얘기를 던지는 겁니다”

김민정 작가는 “한태숙 연출과 작업 과정에서 이미 희곡의 언어를 이미지화시키고 전경화 시켜 그 과정을 연습 과정에서 찾아나가는 치열한 시간 같다. 작가에게 특정한 것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텍스트의 언어가 무대언어로 말하고 표현 될 수 있도록 하는 연출가”로 스승의 작업 스타일을 말했다.

-연출은 희곡의 텍스트를 잘 구현해 내는 연출가가 있고요. 어떤 분은 배우 중심일수도 있고, 연극을 형식 중심으로 연출을 하는 분들도 있는데. 한 선생님은 어떤 쪽인가.

“주제는 무대로 강렬하게 보이고 싶어요. 그 장면을 구현해 내는 극적인 효과를 배우를 통해서 그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공연이 끝난 뒤에 “제 작품에 어떤 배우가 굉장히 좋아다는 얘기”는 큰 격려가 돼서 매 공연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배우와 무대를 연출로 바라보게 됩니다”

-무대가 비어 있으면서도 뭔가 꽉 차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무대가 꽉 차 있는 것 같다고 생각되면, 무대의 여백이 보이고요. 그 차이의 균형이 미학적으로 드러날 때가 있으면서도 실험적으로 보여질 때도 있는데.

“제가 무대에서 그렇게 표현하고 들어내고 싶은데 그걸 김 선생께서 말씀해 주신 거고요. 그 지점 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것 같아요. 그 경계를 넘어서려고 새로운 작품을 발견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거죠. 그래서 늘 새로운 작품을 하고 싶어요”

고희를 넘겼어도 선생은 여전히 무대를 바라보며 실험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무대로 말을 걸고 그 의미가 연극 언어로 용해될 때까지 치열하게 싸우는 것 같았다. 작지만 단아한 체구에서 흘러나오는 말투는 확신보다는 자신을 낮추고 작품이 드러날 때까지 연출의 내면을 치열하게 대하는 연구생 같아 보였다. 자신이 그려낸 연출의 이미지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이미 평가를 받은 작품들도 재창작, 재공연을 하면서 작품은 현재의 시간을 따라 무대로 포개지고 그 장면의 열기와 무대의 이미지는 강렬하게 드러난다. 한태숙 연극을 보게 되는 이유다.

-몸을 만이 써야 하고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극중 인물로 분 할 수 없는 한태숙 선생 작품에서 배우들한테 요구하는 메소드는요.

“뻔한 얘기인데 배우한테 성격창조는 매우 중요하죠. 그 배우한테서만 표현해 낼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 낼 때 연극이 완성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작품 <위대한 뼈>에서도 몸 쓰는 움직임들이 많이 나오는데, 배우들이 몸을 써서 작품을 표현하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어요. 요즘 젊은 창작자들이 몸 쓰는 것을 정말 잘해요. 배우의 몸과 움직임 그리고 몸 쓰는 배우라는 것이 구태의연한 얘기일 수 있지만, 그 구태의연함도 연극의 미학(美學)인거죠”

-극단 물리와 자유로운 작업과 연출을 해오시다 경기아트센터 경기도극단에서 연출을 한다는 게 어떤지요.

“경기도 극단에 오기 전에 사장께서 와서 하고 싶은 작업을 다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하셨고 국·공립 극단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뒷배는 단체에서 도와줄 테니 작품만 만들어 달라고 말이죠” 경기도 극단이 굉장히 의욕이 있는 단체입니다. 연출자가 작업 의지만 있으면 작품을 개발하고 만들 수 있도록 인력과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어요. 배우들도 상임 단원 외 탄력적으로 외부 배우들을 캐스팅하기도 하고요. 배우들도 그런 지점에서 서로 자극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조연출이 꼭 필요한 연출가인데 김정 연출을 상임연출로, 조연출(근종천)을 제가 작업했던 방식대로 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죠. 특히 근종천 조연출은 김정 보다도 무서운 아이입니다”

-선생은 <위대한 뼈> 조연출과 김정연출을 동반자 표현했다. 무대를 통해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가.

“촌스럽게 인간의 ‘연민’이 아닐까 생각해요. 아무리 강렬하게 보이려고 했어도 결국에는 ‘인간의 연민’을 말하고 싶었던 거죠. 이번 작품도 그렀고요. 이 나이가 되니까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무대에서 코미디가 안돼요. 제가 뭘 하려고 표현하면 무섭다고 해요. 그런데 강렬함 안에는 한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함이 깔려있고 그걸 말하고 싶은 거예요. 인간을 동정(同情)만 가지고 보는 것 은 아니고요. 쇠해져 가는 것들이 결국에는 살아있는 것들의 종말이잖아요. 뭘 봐도 이제는 끝이 있는데 하는 부정적인 부분도 보이고요. 그런 지점들도 작품에 그대로 들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극이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것이고, 또 그 안에 메시지가 현실 밖으로 전달될 때 건강해질 수 있잖아요. 국가나 사회가 양극화로 벌어지는 ‘인간의 연민’을 고민하고 정책과 사회가 움직여지는 것 같은가요. 무대를 통해 인간의 연민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다고 현실 밖을 보면.

“저는 늘 정치와 권력에는 반대쪽에 있었던 것 같아요. 수원하면 정조가 생각날 수밖에 없고요”

정조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새로운 조선의 변화를 꿈꾸며 지은 성곽인 수원 화성(華城) 안에는 화성행궁(華城行宮)이 있다. 그 성벽의 둘레를 잇고 있는 장소에는 경기도아트센터가 들어서 있다. 한 선생은 작품과 현실 정치에 거리를 두면서도 뒤주(𠤰)에 갇혀 처참하게 죽어가는 사도세자(아버지)의 숨결을 느끼며 파란만장한 정조의 삶에서 인간적인 연민과 정조시대 조선의 정치사를 에둘러 질문에 말하는 것 같았다.

-대표 작품이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첼로> <레이디 맥베스>,<서안화차> 등 많은 작품들이 있는데, 연출로 한계점까지 끌고 나간 대표작품은.

“아직 대표 작품이 안 나온 것 같고요. 앞으로 대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진을 빼고 했던 작품들이 많아서 요즘 생각하면 제 작품이 ‘관객한테 부담되기도 했겠구나’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 연극 <위대한 뼈>로 “인간의 연민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경기도극단은 올해 하반기 첫 장막희곡 공모를 냈다. 수상작 상금은 3000만원이었다. 모두 111편이 응모를 했고 최종 당선작품으로 <위대한 뼈>(박진희 작)를 선정했다. <위대한 뼈>는 작가의 만화적 허구의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주인공 병태는 자신이 마치 거대한 수족관에서 헤엄치며 살아가는 아가미가 몸으로 터져 나오는 물고기가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형태로 둔갑한 물고기 화석이 발견된 ‘그란데 위소’(Grande hueso) 라는 허구의 섬으로 인간화가 되어 고대화석으로 발견된 신화에서 인간의 유전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메일 한통을 남기도 에콰도르로 떠난다. 병태가 살아가고 바라보는 현실은 거대한 수족관에 갇혀 의문의 사회적 죽음이 일어나고, 지옥 같은 입시의 현실은 자살로 내몰리는 사회이며, 인간은 수족관에 갇혀 물고기 아가미로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이다. 박스 공장의 노동자들은 기계적인 동작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세상이고 죽어가는 인간을 구원하고 치료할 수 있는 의사는 기계음으로 작동되는 인간으로 형상화 된다. 마치 한국사회에서 처참히 쓰러져간 사회적 죽음들과 노동자의 현실은 넓은 바다로 더 이상 전진하고 나아갈 수 없는 수족관의 물고기들처럼. 타인의 지느러미를 삼키고 뜯으면서 견디면서도 죽음을 기다리는 세계다.

-최종 선정된 <위대한 뼈>는 한태숙 선생을 만족 시킬만한 작품이었군요.

“희곡 평가 심사위원들이 선정해주신 작품이죠. 우선 작품 제목부터 확 끌렸어요. 원작의 이야기는 바이러스가 도래한 세상 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바이러스가 없어져 가는 상황이 됐잖아요. 작업 과정에서 고민을 많이 했죠. 요즘 세상은 바이러스로 인한 죽음의 공포가 있어도 우리 스스로 항체를 만들기도 하고 신약도 개발되고요. 현실에는 바이러스로 어두워지는 지옥 같은 세상이 안 그려져서 대본 재 작업을 작가와 작업자하고 굉장히 많이 한 작품입니다. 원작은 바이러스가 배경이 됐지만 근본적으로 우리가 이 시대에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말해야 되질 않을까 생각하게 됐고요. ‘왜 인간은 물고기가 되고 싶었는지 묻고 싶었던 거죠’ 인간이 물고기가 되어 간다는 게 매력적이고 서사가 복잡한 것 보다는 단순하면서도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 이 사회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위대한 뼈>는 병태의 임상 실험으로 자신의 유전학 개념을 증명하고 신약을 개발하려는 장면에서 황우석 박사가 떠오르고, 세상의 불법과 비리에 맞서 진실을 파헤치는 전직 PD 출신 유투버 송PD를 통해 진실은 ‘좋아요’, ‘구독 버튼’을 외치며 자본으로 흡수되는 소리로 들린다. 무대는 파편적으로 장면화를 이루면서도 후면을 거대한 수족관처럼 둘러싸고 있는 무대구조에서 한 인간의 내면과 무의식이 마치 거대한 수족관을 헤엄치는 그로테스트한 전경화를 이루어내고, 마지막 장면에서 수족관을 뚫고 나오려는 인간의 물고기를 배우들의 탁월한 움직임으로 형상화했다. 이 장면에서 여전히 죽음에서 꺼낼 수 없는 사회적 죽음과 과열된 입시, 노동 문제 그리고 여전히 진실은 수족관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며, 그 수족관 해수면 밑바닥으로 인간은 죽어가는 물고기가 되어간다.

다소 이야기가 파편적으로 흘러가고 한태숙의 강렬한 이미지가 무대로 우직하게 그려나가고 송 피디를 중심으로 장면의 완급을 조절하면서 “왜 인간이 수족관에서 헤엄치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물고기 인가”라는 은유적인 메시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다소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텍스트를 한태숙 연출은 이야기의 살점에 장면의 구조를 만들고 이미지로 전경화를 시켜내며 시각적인 역동성을 드러냈고 그 사이에서 오는 메시지의 파열음은 강렬했다. 그러나 첫 공연에서는 장면과 장면의 흐름이 다소 매끄럽지 않아 전체적인 서사를 이해하는데 부담이 됐다.

-<파묻힌 아이>는 배우들의 연기적인 앙상블도 좋았고, 전체적으로 공연 평가가 좋더군요., 그런데 한 선생님 연출다운 강렬함을 작품에서 느끼지 못했어요. 텍스트를 무대로 잘 배치해서 장면과 흐름들을 무대 언어로 잘 구현했다는 정도였습니다. 무대에서 쓴맛을 기대한 것 보다는 좀 심심했다고 할까요.(웃음)

“<파묻힌 아이> 샘 셰퍼드 작가가 방송, 연극, 영화 등 작가와 연출을 하는 사람이어서 굉장히 치밀해요. 무대에서의 연출적인 선 들을 다 알고 치밀한 계산으로 등장인물과 장면들을 배치해 놓고 있어요. 한국공연 라이센스 계약 과정도 연출이 작품에 개입할 수 없다는 점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 안에서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자고 생각했는데, 그 신호가 김 선생한테 까지는 못 갔나 봐요”

-그런데, 목화 출신의 두 배우 정지영과 손병호 배우와 예수정씨 연기 앙상블이 좋았고, 아이의 오브제는 하나의 공포로 느껴질 만한 분위기가 돼서 섬뜩했습니다.

무대에서 정말 좋은 배우들이죠. 특히 목화출신 정지영 배우는 정말 아까운 배우예요. ‘로미오와 줄리엣’ 등 출연하는 작품을 몇 번 본적이 있는데 무대에서 정말 야무진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번에 작업을 같이 하면서도 보통이 아니고 자기 색깔을 무대에서 그려내는 배우예요. 극단 목화에 문제가 없었다면 지금, 굉장히 좋은 배우가 되었을 겁니다.

-한 선생님은 공연의 마지막 까지 작품의 문제를 찾아 수정하고 연습하시는데 이번 <위대한 뼈> 작품도.

“서사도 물론 중요하지만 인간의 왜곡에 대해서도 말을 많이 하고 있어요, 배우들의 움직임과 이미지화도 중요한 작품이고요. 자신을 수족관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라고 느끼는 보통 남자가 갖고 있는 생각이 점점 파장을 일으켜 ‘인간은 거대한 수족관에서 살아가는 거다’라는 질문까지 그 서사가 이번 작품에서 보여 질지 걱정이 돼요. 그걸 만들어 보려고 애 쓴 작품입니다. 제가 자주 작업하는 이태섭(무대), 김창기(조명) 씨한테 항상 거침없이 얘기하면서 작품을 발전시키고 있죠”

40년 운전 경력의 한태숙 선생도 지난해부터 경기도 극단으로 출퇴근을 버스로 이동하고 퇴근 후 넥플리스 영화 한편을 하나씩 보고 잔다고 한다. “영화서사가 참 좋을 때가 많아요. 가끔은 연극이 못 따라 가고 있구나 생각을 하는데 결국에는 거대 자본의 힘을 영화를 보면서 느끼죠” 한태숙 선생에게 무대에서 느껴지는 강렬함처럼 집에서는 어떤 엄마, 아내 인가 물었다. “애들 다 결혼을 해서요.(웃음) 집에 가면 남편 밖에 없고요. 전형적인 엄마예요. 반찬은 사태가 많이 들어간 고깃국하고 떡볶이 그리고 취나물을 잘 만들죠”

인터뷰를 끝내고 간단한 식사를 하러 자리를 옮겼다. 조연출은 말이 없었고, 어색해서 파스타와 피자 몇 조각을 삼켰다. 커튼콜 연습을 해야 한다며 공연 2시간 전에 일어섰고 한태숙 선생과 일행들은 소극장 건물 무대 뒤로 빠르게 걸어갔다. 첫 공연인데도 1층 객석은 관객으로 꼭 차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 <위대한 뼈> 장면들을 복기(復碁)해서 입력을 했고 보내온 희곡으로 공연의 이미지를 그렸다. 문자로 “공연을 잘 봤다”고 보내자 다음날 “생각지도 못한 실수가 있어서 너무 허무했다”고 문자가 날아왔다. 관객은 눈치챌 수 없는데도 노장의 연출은 여전히 무대에서 완벽을 추구하고 있었다. <위대한 뼈>는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11월 28일까지 공연하는데 꼭 볼만한 연극이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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