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밤 한 대로 헤어진 연인.. '고작' 그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준목 2021. 11. 2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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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KBS 단막극 <딱밤 한 대가 이별에 미치는 영향>

[이준목 기자]

KBS 드라마 스페셜 2021 단막극 <딱밤 한 대가 이별에 미치는 영향>(연출 구성준,  극본 김미경)이 요즘 연인들의 현실적인 갈등과 이별을 보여주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19일 방송된 <딱밤>에서 중학교 보건교사인 오진(신예은)은 잘생기고 능력있는 회사 CEO인 차민재(강태오)와 오래된 연인 사이였다. 오진은 소소한 공감대를 공유할 수 있는 연애를 원하지만, 차민재는 그런 오진의 속내에 무심하고 둔감하기만 하다.

차민재는 집을 찾아온 오진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스킨십을 퍼붓는가 하면, 오진이 하려는 이야기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축구 중계에만 집중한다. 축구를 보다가 내기를 걸었던 두 사람은 차민재가 승리하자 인정사정 없이 딱밤을 때리자, 순간적으로 폭발한 오진은 집을 그대로 나와버린다. 차민재는 오진이 삐졌다고 생각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고 다시 TV로 시선을 돌린다.

오진은 '딱밤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 않겠다. 딱밤 때문이다. 딱밤 때문에 이 관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고 독백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진은 버스정류장에 앉아 지나간 추억들을 회상한다.

학교에서 제자와의 연애고민 상담 도중 "남친이 소중하게 여겨주냐"는 질문을 받자 오진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주저하다가 겨우 "적어도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서로를 챙겨주는 연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오진은 차민재와 함께 비오는 날 카페를 찾았다가 함께 사용하던 우산을 제대로 씌워주지 않아 혼자만 비에 흠뻑 젖어 떨고 있던 모습, 오진에게 주문을 맡기고 혼자 무심하게 먼저 자리로 들어가버린 차민재의 모습을 떠올리며 "함부로였네"라고 독백하고 착잡해한다.

차민재는 회사에서 자신의 회사 직원이자 오진의 친구이기도 한 정윤정(하윤경)에게 일을 핑계로 히스테리를 부리다가 결국 오진으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았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정윤정은 오진을 만나 이별의 이유를 물었다. 오진은 "차민재가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딱밤을 너무 세게 때린다"고 고백하여 정윤정을 황당하게 한다.

사실 오진에게는 어머니의 추억과 관련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오진은 자신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항상 무시하고 배려하지 않았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자신과 차민재의 관계도 결국 똑같은 모습이 될까봐 두려웠던 것.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진을 찾아온 차민재는 그녀가 여전히 필요하다며 이별을 받아들일수 없다고 설득한다. 오진은 "우리 아빠에게도 엄마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엄마도 그걸 알아서 지금까지 아빠 곁에 있는 거다.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너랑 있으면 행복하지 않다"고 속내를 고백한다. 급기야 차민재는 구원빈과의 관계를 의심하며 "정리하지않으면 나쁜 놈, 졸렬한 놈, 무서운 놈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오진은 "넌 이미 나쁘고 졸렬한 놈"이라고 분노하며 자리를 떠난다.

오진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왜 아빠와 헤어지지 않느냐"며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묻는다. 오진의 엄마는 "사는 것 만큼이나 헤어지는 것도 쉽지않다. 헤어지는 것은 누군가의 바닥을 봐야하는 것이다. 엄마는 아빠의 바닥을 보는 것도, 엄마의 바닥을 보여주는 것도 싫었다. 겁이 나서"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오진에게는 "살아보니 그게 무서워서 이별을 미루는 건 바보같은 것이다. 엄마는 후회 안 하지만 너는 그렇게 살지말라"며 격려한다.

오진은 이별의 상처를 가슴에 묻고 묵묵히 평범한 일상을 이어간다. 오진은 "우리는 삶속에서 웃어야한다. 마치 내게 사랑이 지속되고있는 것처럼, 그게 가능한 것은 사랑이 끝났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믿었던 관계 때문이 아닐까. 사랑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는데 그걸 외면하고 끌고온 댓가로 이별의 슬픔을 웃음으로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독백한다.

오진은 구원빈과 맥주를 마시면서 둘만의 대화를 통하여 조금씩 가까워진다. 마침 차민재와 정윤정이 지나치다가 두 사람을 목격한다. 분노한 차민재는 오진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딱밤을 날린다. 연인 시절에 두 사람은 누구든 상대방이 서로를 기만했을 때 딱밤 세대를 먹여주기로 약속했었다.

아직도 이별의 이유를 납득하지못하는 차민재는 오진과 구원빈의 관계를 의심하며 "이건 기만"이라고 남은 딱밤을 마저 때리려한다. 딱밤을 맞고라도 이별을 마무리지으려는 오진에게 구원빈이 흑기사로 나서서 대신 딱밤 두 대를 맞는다. 오진은 구원빈의 손을 잡아끌고 자리를 떠난다. 집으로 돌아와 생각에 잠긴 오진은 창피함 속에서도 이별의 이유가 차민재 때문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되돌아보게 된다.

다음날 오진은 차민재에게 연락하여 다시 마주한다. 오진은 "나는 나만 사랑받지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사랑 안하고 있더라. 함께 있는 시간이 재밌고 좋아서 사랑이 식은줄도 모르고 습관처럼 만난 거다. 이해 못하더라도 정식으로 말하고 싶었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며 진심으로 이별을 통보했다.

차민재는 자리를 떠나려는 오진에게 "넌 아닐지 몰라도 난 사랑 맞다. 네 이야기는 딴 남자 생겨서 버리고 떠나면서 우린 사랑이 아니었다고 자기 합리화 시키는 걸로밖에 안들린다. 고상한 척 하지마라. 헤어지는 마당에 그게 더 추하다"고 비난한다.

분노한 오진은 "넌 방금 내가 뭘 마실지 물어봤냐, 데이트할 때 너보다 나를 먼저 챙겨준 일이 있냐. 내가 보고싶다고 할 때 우리 집앞으로 달려와준 적이 있냐"며 그간의 서운했던 감정을 폭발시킨다. 이어 오진은 "결정적으로 누가 사랑하는 여자 딱밤을 그렇게 세게 때리냐"며 끝내 눈물을 흘린다. 오진은 "장담하는데 사랑하면 봐주고 싶다. 아프게 하기 싫다. 나중에 그런 사람 만나면 내 생각 하라"고 일침을 날리고 돌아선다.

하지만 가려다가 다시 돌아선 오진은 "네 잘못만이 아니라고, 미안하다고 그말이 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다. 그런데 너는 꼭 그래야했냐"며 서러움을 토해낸다. 차민재는 고개를 숙이고 오진의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며칠후 차민재는 비오는 날 우산도 없이 오진을 찾아온다. 차민재는 달라지겠다고 약속하며 오진을 붙잡으려 하지만, 오진은 "미워하고 싶지않다. 섭섭함과 외로움이 쌓여서 너를 원망하게 될까봐. 우리 그러지 말자"며 차민재를 설득한다. 생각에 잠긴 차민재는 오진이 받쳐주던 우산을 처음으로 오진 쪽으로 향하게 해준 다음 비로소 이별을 받아들이고 조용히 발길을 돌린다.

오진은 엄마와 만나 대화를 나눈다. 오진의 선택을 존중해줬던 엄마도 영향을 받아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엄마는 남편에게 메모를 남겨 '당신과 떨어져있고 싶어서 언니네로 간다. 언제올지 모르니 기다리지말라'고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를 드러낸다.

차민재는 친구이자 직원인 정윤정에게 처음으로 "고맙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오진과의 이별 이후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는데 좀더 성숙해졌음을 드러낸다. 오진은 구원빈과의 통화를 통하여 "선생님이 저를 안 좋아한다면 조금은 섭섭할 것 같다"라며 "저는 아직은 (좋아하는 마음은)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면.."이라고 저녁 식사를 먼저 제안한다. 맞은 편에서 서로를 발견하고 두 사람은 미소를 지었고 오진을 향해 환 미소를 지으며 달려가는 구원빈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사랑의 시작을 암시하며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딱밤>은 2020 KBS 단막극 극본 공모 우수작으로, 딱밤 한 대로 인해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한 여자와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자의 성장을 다룬 멜로드라마다. 연인간의 흔한 장난처럼 보이던 딱밤 한 대지만, 그 안에는 소중한 사람들 사이일수록 소홀해지기 쉬운 존중과 배려가 꼭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오진을 사랑한다면서도 시종일관 그녀가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는 시종일관 무심한 차민재와 달리, 구원빈은 오진이 그저 걷는 모습만 보고도 구두굽을 바꿔야한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작은 관심과 존중의 차이는 인물들의 감정에 큰 나비효과를 불러온다.

오진 역시 차민재에게 이별을 통보한 이후 자신의 사랑 역시 일방적이고 이기적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드라마는 실제 연인들 사이에서 벌어질수 있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에피소드들을 기발하게 재구성하면서 남녀문제를 넘어 인간관계의 본질까지 파고든다.

다만 오진의 입장과 감정에 치우쳐, 상대인 차민재의 관점과 반론, 성숙한 심경변화의 과정이 제대로 그려지지 못한 것은 이야기의 몰입도를 다소 떨어뜨린다. 또한 차민재의 안티테제로 등장하여 오직 오진만 바라보는 순수하고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묘사된 구원빈의 캐릭터는 너무 비현실적인 '흑기사' 클리셰의 전형에 가깝다.

더구나 오진과 구원빈의 '환승연애'를 암시하는 듯한 결말은 오히려 오진이라는 인물이 드라마 내내 보여주던 자주적인 성장이나 자기 반성의 메시지를 퇴색시킨다. 캐릭터의 일관성과 공감대를 떨어뜨리는 옥의 티였다.

오진과 차민재의 마지막 대화에서, 오진은 "사랑이란 시켜서 하는게 아니라 마음이 내켜서 진심으로 상대를 아껴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드라마의 메시지를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바로 서로에 대한 진심어린 소통과 공감이 결핍된 관계는 행복할수 없고, 배려없는 무심한 언행들이 언제든 상대에 대한 정신적-물리적 '폭력'으로까지 이어질수 있다는 위험성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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