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톤 김주택의 도전은 '팬텀싱어' 이후에도 계속된다

장지영 2021. 11. 21.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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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에 걸쳐 '뮤직 라이브러리' 콘서트.. 27일 첫 무대는 오페라 아리아에 집중
바리톤 김주택이 지난 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국민일보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지난 2017년 크로스오버 남성 사중창단을 뽑는 JTBC 예능 ‘팬텀싱어’ 시즌2에서 바리톤 김주택의 출연은 성악계를 놀라게 했다. 이탈리아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 출신으로 유럽의 주요 오페라극장에서 활동하던 김주택에겐 오디션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많은 관심 속에 막을 내린 시즌2에서 김주택이 속한 ‘미라클라스’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김주택의 유럽 활동 때문에 국내 활동이 어렵지 않겠냐는 우려와 달리 미라클라스는 꾸준히 공연을 이어갔다. 김주택이 유럽과 한국을 부지런히 오간 덕분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유럽 오페라하우스가 문을 닫자 김주택은 아예 2년 가까이 미라클라스를 중심으로 국내 무대에 집중했다. 지난달엔 MBC ‘복면가왕’에 출연해 다양한 스펙트럼의 가요들을 선보여 또다시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한동안 크로스오버 공연에 집중했던 김주택이 오는 27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정통 오페라 아리아로만 채운 무대를 준비했다. ‘뮤직 라이브러리 Act1. The Classic’이란 타이틀의 이번 콘서트를 시작으로 내년 상반기까지 Act2와 Act3까지 3차례 콘서트를 연다. 2022~2023시즌 오페라 복귀를 앞두고 김주택의 음악적 행보와 가치관을 보여주는 시리즈로 김재원이 지휘하는 WE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함께 한다. 첫 번째 콘서트에는 스페셜 게스트로 크로스오버 그룹 ‘안단테’의 리더인 베이스 구본수가 출연한다.

록발라더에서 성악가로 꿈 바뀐 뒤 이탈리아 유학

“바리톤 김주택이 누구인지 확실히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Act1에선 저의 본질과도 같은 오페라의 아리아, Act2에선 팬텀싱어를 통해 도전한 크로스오버 그리고 Act3에선 무대 장치는 없지만, 오페라 한 편을 보여주는 콘서트 오페라를 각각 선보이려고 합니다. 그동안 국내에서 개인 콘서트를 여러 차례 했지만 60인조의 풀 편성 오케스트라와의 함께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김주택(오른쪽), 박강현, 정필립, 한태인으로 구성된 미라클라스. 아트앤아티스트 제공

지난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김주택은 여느 성악가와 다른 행보를 걸어가는 것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 대신 호기심과 기대로 가득 찬 모습이었다. 그는 “클래식계에선 한 우물을 파듯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하지만 세상은 변화하고 있고, 우리 클래식도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김주택은 팬텀싱어 출연 이전부터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원래 중학교 때까지 록발라드 가수가 꿈이었던 그는 성악을 전공한 어머니의 권유로 선화예고에 진학했다. 그런데, 예고 2학년 여름방학 때 오페라의 종주국인 이탈리아로 간 성악 캠프가 그를 뒤흔들어놓았다. 귀국하자마자 이탈리아에 유학 가고 싶다며 조르는 그에게 어머니는 “콩쿠르에서 입상하면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고, 그는 당시 여러 국내 콩쿠르 고등부 1위를 휩쓰는 것으로 실력을 증명했다. 예고 3학년에 올라가면서 유학을 떠난 그는 세계 최고의 성악 명문 학교인 베르디 음악원에 당당히 입학했다.

“이탈리아에 한국인 성악 유학생의 수가 수천 명인데요. 제가 워낙 일찍 유학을 갔기 때문에 유학생 가운데 가장 어렸어요. 혼자 유학 생활을 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한국인 선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 성격이 붙임성 좋고 사교적인 편이라 언어도 빨리 늘었어요.”

커리어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 준 만남

그에게 2009년은 특별한 해다. 이탈리아 오페라계의 거물인 두 사람을 만나 커리어에 터닝 포인트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캐스팅 디렉터인 잔니 탕구치와 지휘자 정명훈이다. 탕구치는 잔도나이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왔다가 당시 2위를 차지했던 김주택을 발탁해 그해 예지 페르골레시 극장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주역인 피가로 역으로 데뷔시켰다. 오페라의 본고장에서 ‘줄리안 킴’으로 불리는 김주택이 이름을 알린 출발점이다. 탕구치는 이후 스칼라 극장, 피렌체 극장, 베니스 페니치아 라 페니체 극장, 나폴리 산 카를로 극장 등에서 자신이 캐스팅을 맡은 작품에 그를 자주 캐스팅했다. 또 ‘오페라의 종가’로 불리는 스칼라 극장의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 오디션에 심사위원으로 온 정명훈도 그를 눈여겨보고는 이듬해 자신이 예술감독을 맡고 있던 서울시향의 ‘광복 65주년 기념 음악회’에 불렀다. 그리고 2012년 국립오페라단의 ‘라보엠’ 등 정명훈이 국내외에서 지휘를 맡은 오페라와 콘서트에서 그는 단골 출연자가 됐다.
지난 2012년 국립오페라단의 '라보엠'의 한 장면. 음악가 쇼나르 역으로 출연한 김주택(맨왼쪽). 국립오페라단 제공

“독일 오페라극장은 재정적 여유도 있고 합창단은 물론 전속 솔리스트를 두는 시스템이라 한국 성악가들이 많이 활동해요. 이에 비해 이탈리아 오페라극장은 합창단이 있어도 외국인을 거의 뽑지 않는 데다 전속 솔리스트 제도가 없습니다. 저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자유롭게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게 잘 맞았습니다. 이제 좀 더 나이를 먹으면 베르디 작품들의 매력적인 바리톤 역할을 보다 많이 소화할 수 있을 거예요.”

남자 성악가들은 음역에 따라서 테너, 바리톤, 베이스로 나뉜다. 고음의 테너와 저음의 베이스 사이에 있는 바리톤은 테너의 화려함과 베이스의 중후함을 모두 가졌다. 하지만 바리톤이 오페라에서 제대로 자리 잡은 것은 19세기 후반 이탈리아와 독일 오페라를 각각 대표하는 베르디와 바그너가 나오면서부터다. 특히 베르디의 작품에는 매력적인 바리톤 역이 많다.

“베르디 오페라를 많이 부르는 바리톤을 ‘베르디아노’라고 해요. 성악을 시작할 때부터 베르디아노가 되고 싶었어요. 바리톤은 젊은 시절엔 테너와 경쟁하는 악역이 많고, 나이 먹어서는 현명한 아버지나 왕 같은 역할이 많은데요. 테너의 경우 (무대에 설 수 있는) 수명이 짧지만, 바리톤은 수명이 긴 것도 좋아요. 바리톤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40세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들 말하는데, 제가 점점 그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클래식도 변해야 한다”

오페라에 대한 애정이 크지만, 현재 오페라가 처한 상황은 그를 고민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바로 전 세계적인 관객 노령화와 감소 추세로 미래가 그다지 밝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가 팬텀싱어에 출연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달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 '백전무패'라는 이름으로 출연한 김주택. MBC

“오페라든 대중음악이든 관객이 없으면 존재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오페라의 경우 이탈리아에서조차도 젊은 사람들이 보러오지 않는 등 쇠퇴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오페라극장의 상당수가 재정난을 겪기도 하고요. 따라서 이제는 성악가들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등 다양한 매체의 발달로 높아진 사람들의 감각을 충족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봐요. 실제로 팬텀싱어처럼 크로스오버를 통해 사람들이 그동안 몰랐던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가지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저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성악가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팬텀싱어 시즌1 방영 이후 국내 성악계에서 젊은 성악가들의 출연을 놓고 여러 뒷말이 나왔었다. 몇몇 출연자는 대학 지도교수들에게 크게 꾸지람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그러다가 김주택이 시즌2에 나오면서 이런 뒷말이 사라진 것은 물론 후배 성악가들이 망설임 없이 시즌3에 지원하도록 만들었다.

“제가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았던 것도 팬텀싱어 출연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캐스팅 디렉터인 탕구치 씨도 저의 크로스오버 도전에 대해 ‘매우 잘하고 있다. 요즘에는 이런 것도 중요하다’고 칭찬해줬습니다. 탕구치 씨의 이런 반응은 ‘성악가의 최종 목표는 교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통해 먹고 사는 것’이라는 확신을 제게 줬어요. 국내에서 공연계의 주류로 자리 잡은 뮤지컬의 사례를 참고하면 오페라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끊임없이 자신의 길을 돌아보면서 미래를 고민하는 김주택은 앞으로도 도전을 쉬지 않을 듯하다. “사랑하는 음악을 많은 관객과 나누고 싶다”는 그가 어떤 길을 만들어갈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듯하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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