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갈등 불똥 튈라..SK하이닉스 협력사도 '노심초사'
韓기업 '샌드위치' 우려..용인 클러스터 투자 확대할 수도
전문가들 "기업 노력만으로 역부족..민관 공동 대응해야"
[아시아경제 이준형 기자] 미국의 반대로 SK하이닉스의 중국 반도체 공장 첨단화 계획이 차질을 빚자 국내 반도체 중소·중견기업들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다툼이 격화하자 SK하이닉스에 이어 국내 협력사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반도체 공급망 최상단에 있는 SK하이닉스는 물론 국내 협력사들까지 미중 갈등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1~2차 협력사들은 미중 갈등이 국내 반도체 생태계에 미칠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으로 한국 기업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한 까닭이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SK하이닉스가 반도체 미세공정의 핵심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중국 우시 공장에 도입하려는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중국이 반도체 첨단장비를 군사력 강화에 활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코트라(KOTRA) 현지 무역관도 SK하이닉스와 소통하며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단기적 여파 불가피"…中 투자 위축 우려도
협력사 관계자들은 “SK하이닉스의 중국 투자가 지연되면 단기적 여파는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생산능력 확대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 첨단화 목표 중 하나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협력사들에게 발주할 반도체 장비까지 줄어들 수 있다. SK하이닉스 협력사인 반도체 장비업체 A사 관계자는 “SK하이닉스를 고객사로 둔 회사 입장에서 당장은 긍정적 신호로 볼 수 없다”면서 “생산 캐파(Capacity) 확장이 늦어질수록 협력사가 가져갈 공급계약도 지연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중국 투자 기피현상이 SK하이닉스는 물론 국내 반도체 업계로 확산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중 갈등 자체가 이미 투자 리스크로 자리 잡은 영향이다. 또한 중국 정부 대응에 따라 패권 다툼의 여파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소장은 “미국이 중국에서 D램 메모리 첨단화가 진전되는 걸 막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중국 대신 미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라는 메시지도 담겨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소장은 “중국은 화웨이, 샤오미 등의 D램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많아 자체 공급망을 갖추지 못하면 대응에 나설 것”이라며 “국내 기업에 제공하던 혜택을 줄이거나 추가 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반도체 기업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 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있다. 미국이나 중국이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국내 기업을 볼모로 상대국을 압박할 수 있다는 우려다. 로이터통신도 관련 보도를 통해 “D램 메모리칩의 세계 최대 공급업체인 SK하이닉스가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분쟁에서 다음 차례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U턴 본격화할 수도…"정부 개입 필요해"
반면 국내 반도체 생태계가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SK하이닉스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용인 반도체클러스터를 중심으로 국내 공급망을 강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SK하이닉스 협력사인 반도체 장비업체 B사는 “SK하이닉스가 계획했던 생산량을 중국에서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어디선가 생산능력을 늘려야 한다”면서 “당초 용인 반도체클러스터를 전공정 작업의 중심으로 삼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만큼 국내 투자가 가속화하거나 확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소재업체 C사 관계자는 “생산공장을 여러 곳에 지을수록 유지관리 비용이나 기술유출 위험이 커진다”면서 “SK하이닉스가 미중 갈등이 길어질 것으로 판단하면 국내 U턴을 본격화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단일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은 “미중 갈등은 패권 문제 등 경제적, 외교적 사안이 복잡하게 얽힌 이슈”라며 “정책적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민·관이 공동으로 대응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준형 기자 gil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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