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규의 7전8기] 채무자의 회생절차남용

2021. 11. 1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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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 서울회생법원 제1호 법정. 파산사건의 채권자집회가 개최되고 있었다. 파산사건의 경우 일반적으로 채권자집회에 채권자들이 거의 오지 않지만 이날 한 사건에는 법정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왔다. 절차 진행에 불만을 가진 채권자들이었다. 이 사건은 2년 전 채무자가 회생절차개시신청을 했지만 기각됐다. 이후 채권자들이 신속한 채권회수를 위해 파산신청을 했다. 그러자 채무자가 다시 회생절차개시신청을 했고, 법원은 회생절차개시결정을 했다. 그로 인해 채권자들이 신청한 파산절차는 중지됐다. 이후 회생절차는 폐지됐고, 중지된 파산절차가 속행되어 파산선고가 됐다. 그러는 동안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절차 지연으로 당연히 채권자들은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회생절차에서 채권신고를 하였는데, 다시 파산절차에서 채권신고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에서부터 회생절차 진행 기간 내부 운용자금의 상당 부분이 사용됐다는 것까지. 파산절차 지연에 따른 하소연이 다수를 이루었다. 채권자들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회생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최근 들어 채무자들의 회생절차 남용 사례가 가끔 눈에 띈다. 먼저 채권자의 파산신청에 대항하기 위한 채무자의 회생절차개시신청이다. 채권자는 채무자가 변제를 하지 않거나 재산 은닉의 의심이 드는 경우 책임재산을 채무자의 관리로부터 박탈하여 파산관재인에게 이전시켜 신속, 적정하게 청산을 도모하려고 파산을 신청한다. 또한 채무자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파산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파산절차보다 회생절차가 우선한다는 원칙에 따라 회생절차개시신청 또는 회생절차개시결정은 파산선고의 장애사유가 될 수 있다. 파산선고에 대한 심리중이건 파산선고 후이건 회생절차개시신청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회생절차개시신청에 대한 결정이 있을 때까지 법원은 직권으로 채무자에 대한 파산절차의 중지를 명할 수 있고.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으면 파산절차는 중지된다.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채권자의 파산신청에 대해 채무자가 회생절차개시신청을 하는 경우가 있다.

파산신청에 대항하기 위한 회생절차개시신청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악용되는 부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실무적으로 파산신청 이후에 회생절차개시신청이 있는 경우 조사위원을 선임하여 청산가치보장원칙이 지켜질 수 있는지, 회생계획안의 작성이 가능한지 및 중요 채권자들의 의견을 듣는 방법으로 회생절차개시신청 기각 사유가 없는지를 조사하게 한다(이를 ‘개시전조사’라 한다). 파산절차와 회생절차가 경합하는 경우 회생절차가 우선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법원에 파산절차가 계속 중이고, 그 절차에 의하는 것이 채권자의 일반의 이익에 부합한 경우에는 회생절차개시신청을 기각하여야 할 것이다. 앞에서 본 사례가 경우에 따라 회생절차 남용사례로 볼 여지가 있다. 회생의 가능성이 없는 사건에 대해 회생절차개시신청을 함으로써 채권자들에게 배당돼야 할 금원이 회생절차 진행에 사용됐다고 판단된다는 전제에서다.

다음으로 부정수표단속법위반죄를 피하기 위한 회생절차개시신청이다. 회생절차가 개시되면 채무자는 지급권한이 없으므로 수표가 부도나더라도 부정수표단속법위반죄로 처벌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근로기준법위반죄를 벗어나기 위한 회생절차개시신청이다. 대표자는 근로자가 퇴직 후 14일 이내에 임금 등을 지급하지 않으면 근로기준법위반죄로 처벌받지만, 14일 이전에 회생절차가 개시되면 형사처벌을 면한다. 지급권한이 관리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회생절차가 채무자의 효율적인 회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만, 경우에 따라 파산절차의 회피나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악용되는 경우가 있다. 최근 파산절차를 피하기 위한 회생절차개시신청이 늘고 있는 것은 회생절차에 대하여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전대규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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