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역시 유오성'..변화 시도한 韓 누아르
이는 조폭 누아르가 주는 장르적 한계와 연결된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한국의 조직폭력배는 이미 현실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게다가 건달들 사이에 사적인 은원이 혈겁을 이룬다는 이야기는 이미 지겹도록 반복돼왔다.
이제 ‘한국형 누아르’는 두 개의 기로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양자택일을 요구받고 있다. 장르적 한계를 인정하되 그 안의 완성도를 ‘친구’ 이상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이 장르를 해체하고 발전시키는 혁신을 시도해보는 것이다.
이 시점에 ‘강릉(2021년)’이 나왔다. 강릉 출신 윤영빈 감독의 장편 데뷔작. 유오성과 장혁을 전면에 내세웠다.
주인공 길석(유오성 분)은 아름다운 강릉의 토착 조직폭력배다. 길석은 지역민을 보살피고 마약에 손대지 않는 등 자기 나름의 규칙을 준수하는, ‘낭만형 건달’이다. 조직 2인자 길석은 보스인 오 회장(김세준 분)으로부터 리조트 사업을 맡으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런 길석의 앞에 나타난 것은, 서울에서 채권추심업체를 운영하는 조직의 우두머리 민석(장혁 분)이다. 민석의 등장에 길석이 지닌 규칙은 흔들리고, 길석의 조직은 최대 위기를 맞이한다.
새로운 시도가 엿보이기는 한다. 특히 과한 욕설, 성 상품화 등 한국형 누아르의 ‘독소’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시도가 인상적이다. 유오성의 연기 역시 여전히 훌륭하다. 반복되는 조직폭력배 역할에 물릴 때도 됐지만, 그는 한결 깊어진 표현으로 길석의 캐릭터를 안정적으로 그려냈다.
하지만 그뿐. 지금 이 시점에 조폭의 ‘낭만’을 말하는 것은 너무 늦은 감이 없잖다. 조폭이지만 칼을 쓰지 않는 낭만형 건달의 이야기는 ‘장군의 아들(1990년)’ 시절에나 통할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낭만형 건달과 대비되는 민석의 잔혹한 살인 행위는 기존 조폭 영화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영화는 뒤로 진행할수록 점차 많은 허점을 드러낸다. 그래도 IPTV용 오락 영화로는 즐길 만하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34호 (2021.11.17~2021.11.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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